"詩 쓰는 의사..진료도 詩도 인간사랑이 중심"

"시를 쓰고 환자를 돌본다는 것은 사람을 사랑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를 것이 없지요." (이상호 우리들의료재단 이사장)

"의사가 어떻게 시를 쓰게 됐느냐"는 우문에 현답이 돌아온다. 이상호 이사장에게는 어려서부터 2개의 꿈이 있었다. 의사가 그 중 하나고 다른 하나는 시인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그는 어머니의 아픈 허리를 고쳐드리겠다는 생각에 의사가 되는 꿈을 꿨다. 그 무렵 그의 부친이 자신의 방에 시화 한 점을 걸어줬다. 동백꽃 그림에 무명 시인의 사랑시가 적힌 시화였다.

이 이사장은 "아버지는 단지 가난한 시인을 동정해 그 시화를 사 주셨고, 마땅히 액자를 걸어 둘 곳이 없어 제 방에 걸어주셨다"며 "우연히 방 한쪽 벽에 걸리게 된 시화는 저의 삶을 시 쪽으로 이끌었다"고 말했다. 40여년이 지난 지금 그는 시인이고 의사다.

자신의 개인 홈페이지(//www.drsangholee.co.kr)에서 그는 스스로를 시인, 의료인, 경영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본업인 의료인보다 시인은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 "시를 쓰고 환자를 돌본다드는 것은 사람을 사랑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이상호 우리들의료재단 이사장

◇ "시는 바위에 손톱자국 새기는 것"= 그는 1968년에 '아름다운 생명'이라는 시집을 출간한 바 있다. 이 이사장은 1976년 미당 서정주 선생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등단 이후 그는 '안개 저편에 길이 있을 것이다'(1987년), '뉴욕 드라큘라'(1996년)를 출간했다. 그리고 지난 2005년에 아내인 김수경 우리들생명과학 (499원 ▼16 -3.11%) 회장과 함께 '우리는 함께 시간속을 걸어가네'라는 시집을 펴내기도 했다.

이 이사장은 "인생은 허무한 것이라 생각했고 죽기 전에 무언가 훌륭한 것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며 "그것은 바로 시를 쓰는 일이었고, 시를 쓰는 일은 바위에 손톱자국을 새기는 것과 같이 어려운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한때는 아픈 환자를 맞는 수술대에서 의사로 살아가며 좋은 시를 쓴다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도 가졌다. 하지만 그는 의사로서 살아가는 일이 바로 시를 쓰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환자를 치료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을 존중하는 마음인데,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치료를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애정이 있어야 합니다. 환자를 진단하고 시술하는 것을 시 쓰기 작업의 연장선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는 프랑스 유학시절 의사의 길과 시인의 길이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시를 문자로만 얘기하는 줄 알았다가 여러 작가들을 통해 사진 또는 몸동작으로도 나타낼 수 있음을 이해하게 됐다.

그래서 문자로 쓰는 시에 연연하지 않고 삶 자체로 보여주는 행위의 시를 쓰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시인이 하루 종일 시만 생각하고. 문학작품 속에서 살고 있을 때 저는 하루 종일 환자를 돌보았으니 환자에 관한 시를 쓰면 그것이 좋은 시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는 의료인이 환자들을 대할 때 하나의 사물이나 대상으로 대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환자를 병이니 질환으로 보지 않고 무의식과 같은 내면까지도 살펴야 한다는 것. 이 이사장은 "과학이나 의학만으로는 사람의 감정이나 정서를 치유해 줄 수 없다"며 "시를 쓰는 것은 환자의 내면과 대화하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도 시를 쓴다. 하지만 노래 작사나 영화로 시를 표현해보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제 시를 너무 안 읽어줘요(웃음).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시를 접할 수 있도록 노랫말도 만들고, 영화로도 시를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 아이폰, 트위터…환갑의 얼리어답터= 늘 새로운 시를 구상하는 것처럼 그는 '새로움'을 좋아하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 이사장은 아이폰을 쓰고, 트위터를 한다. 새로운 것이 나오면 먼저 접해보지 못해 안달하는 60세의 얼리어답터다. 세상은 변하는데 혼자만 뒤쳐지기 싫어서다. 변화를 따라가려면 그만큼의 노력을 해야 하지만, 그 수고로움이 오히려 즐겁다.

"헌 노래 부르는 것을 싫어하고, 흘러간 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싫어합니다. 새로운 노래를 부르려면 그 만큼의 고통을 이겨내야 하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70~80년대 노래를 부르는 것보다 최신 노래를 부르는 것을 좋아해요."

이 이시장에게 새로운 것은 곧 혹독한 훈련이나 노력을 의미한다. 이는 큰 의미에서 보면 이노베이션(혁신)의 첫 걸음이다. 새로움에 대한 집착은 의사라는 직업에서 비롯됐다. 새로운 지식이나 기술이 환자들을 더 잘 고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이 이사장은 "새로운 지식을 접해야만 척추암을 극복할 수 있고 환자들을 마비와 고통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며 "과거의 지식에 집착해서는 발전적인 의료기술을 접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도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 이 이사장은 지난 1991년 세계 최초로 내시경 레이저를 이용한 디스크 수술법을 개발했다. 그가 새로운 수술법을 내놓기 전까지 100년 동안 의료계는 척추뼈를 잘라내는 형태로 디스크수술을 해왔다.

최근에는 등받이가 앞으로 온 '가슴받이'가 달린 의자 '우리들체어'를 선보였다. 이 새로운 개념의 의자는 그가 세계 최초로 만들었다.


당신은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詩 이상호

고통을 알게 된 당신은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사랑을 알게 된 당신은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많은 돈
잘생긴 외모
뛰어난 능력
가지지 않은 당신은

두 발로 뛰는 즐거움은 바퀴 달린 의자에 나눠주고
계절이 바뀌는 신비로움을 보는 대신 살갗으로 느끼며
소리내어 말할 수 없는 깊은 마음을 두 손으로 고백할 수 있는 당신은

지금도 여전히
밤하늘 별에게
인사 나누는 당신은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주) 이상호 이사장은 이 시를 치매에 걸린 노모를 그리워하며 썼다고 설명했다. 치매로 기억이 희미해지고, 육신이 지쳐 휠체어에 의지해야하지만 어머니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는 것을 시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 이상호 이사장은 지금까지 5권의 시집을 발간했다. 그는 1976년 미당 서정주 선생의 추천으로 등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