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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친딸' 필리핀댁 순애보 남편, 피서지서 참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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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8.10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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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필리핀 ‘띠동갑 순애보’ 남편, 영월 가족 피서지서 급류에 빠진 딸 구하고 익사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 이동호(45·서울 연희동)씨의 장례식장이 차려져 있었다. 3일장(葬)의 둘째 날이었다. 동호씨의 아내는 ‘자스민 이(李)’(33)씨다. 그는 아들 승근이(14), 딸 승연이(11)와 함께 있었다. 자스민은 말을 붙이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울었다.

이동호씨는 8일 오전 10시10분쯤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진별리 인근 옥천동에서 급류에 휩쓸린 딸 승연이를 구하려고 뛰어들었다가 3m 깊이의 물에 빠져 숨졌다. 사인은 심장마비. 아내인 자스민은 필리핀 출신이다. 지난 지방선거 때 광역 비례대표로 거론될 정도로 재능 있는 여성이다. 본지는 그녀의 삶과 이주여성에 대한 편견을 두 차례에 걸쳐 다뤘다.

자스민은 올해 개명을 통해 남편과 같은 성(姓)인 이(李)씨를 얻었다. “성을 받으니 진짜 한국인이 된 것 같다”고 했었다. 남편과의 인연도 운명처럼 느껴졌다. 1994년 남편을 처음 만났다. 그녀는 민다나우 다바우 근처에 있는 아테네요 의대에 재학 중이었다. 재학 중 미스 필리핀 지역 예선 3위에 오르기도 했다. 학교밴드에선 리드 보컬이었다. 부족한 게 없는 아가씨였다.

남편은 2등 항해사였다. 다바우에 정박 중 우연히 자스민을 만났고, 첫눈에 사랑에 빠졌다. 인생을 걸었다. 직장과 돈을 정리해 필리핀으로 무작정 건너갔다. 남편의 진심을 느낀 자스민은 구애를 받아들였다. 아들 승근이를 임신한 뒤 공부를 그만둬야 했지만 그렇게 섭섭하진 않았다. 고향을 떠난 유일한 이유는 남편이었다.

↑ 자스민 가족의 단란한 한때. 왼쪽부터 아들 승근, 숨진 남편 이동호씨, 딸 승연, 자스민.
↑ 자스민 가족의 단란한 한때. 왼쪽부터 아들 승근, 숨진 남편 이동호씨, 딸 승연, 자스민.
할아버지·할머니·삼촌·사촌들까지 다 같이 놀러간 피서였다. 동호씨가 아내와 낚시용품을 사러 간 사이 딸이 계곡물에 빠졌다. 아빠가 멀리서 그 모습을 봤다. 온 힘을 다해 뛰었고, 딸을 향해 몸을 던졌다. 동호씨는 선장이다. 물이 두렵지 않은 뱃사람이다. 하지만 차가운 민물은 바닷물과 달랐다. 사건을 처리한 경찰관은 “바다에 자신 있는 분들이 민물에서 종종 화를 당한다”고 했다. 아빠는 심장마비를 일으킨 순간에도 딸의 몸을 밀어냈다고 한다. 딸은 주위에서 던져준 튜브를 통해 구조됐다.

남편이 그토록 사랑한 딸 승연이. 인생을 걸고 사랑했던 엄마의 눈과 목소리를 닮은 딸. 짙은 쌍커풀과 합창단의 유일한 솔로를 맡을 정도의 목소리를 가진 딸과, 그런 딸을 닮은 아내와, 아내의 귀와 코를 닮은 아들과, 동호씨는 영원히 작별했다. 남편은 떠났지만 그 흔적은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남아 있다.

상주는 맏아들 승근이다. 반장을 맡아놓고 한다는 의젓한 아들의 눈도 퉁퉁 부어 있었다. 승근이는 “우리 엄마 예쁘다”고 대놓고 말할 정도로 살가운 아들이다. 하지만 그 또래 남자애들이 그렇듯 아빠에겐 조금 까칠했다. 승근이는 그게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왜 그랬는지… 미치겠다”고 했다.

물에 빠졌던 승연이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몸은) 괜찮니?”라고 물으니 고개를 저었다. 승연이는 ‘마음이 괜찮니’로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딸은 크게 다친 곳이 없었다.

자스민은 코리안 드림을 일구고 있다. 방송의 패널이고 다큐멘터리의 전문 번역가다. 정치인과 배우를 꿈꾼다. 든든한 버팀목은 남편이었다. 남편은 어린 나이에 먼 타국으로 시집온 아내가 늘 안쓰러웠다. 재능을 숨기고 집에만 있어서 미안했다. 그래서 최근 활발한 바깥생활을 하는 아내가 보기 좋았다. 겉으론 “또 나가냐”고 쏘아붙이기도 했지만, 다른 사람에겐 “무조건 하자는 대로 하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며 웃어보이던 남편이었다.

보는 사람마다 승근이에게 “이젠 네가 엄마랑 동생 지켜줘야 해”라고 했다. 아들은 말없이 엄마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중앙일보 강인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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