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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50년 하춘화 "슈퍼스타K 보고 펑펑 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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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11.01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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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으로 노래 인생 50년을 맞이하는 가수 하춘화. “한국 대중가요가 세계적인 사랑을 받기 위해선 전통가요의 독창성과 세계 음악의 보편성을 함께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김성룡 기자]
↑내년으로 노래 인생 50년을 맞이하는 가수 하춘화. “한국 대중가요가 세계적인 사랑을 받기 위해선 전통가요의 독창성과 세계 음악의 보편성을 함께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김성룡 기자]
한 사람의 일생이 오롯이 역사책에 기록되기란 쉽지 않다. 한국 대중음악사엔 예외적인 인물이 있다. 가수 하춘화다. 올해로 쉰다섯. 여섯 살에 데뷔한 그는 반백년을 가수로 살았다. 유년기의 다섯 해를 제외한다면, 우리 대중음악사에 그의 일생이 통째로 기록돼 있는 셈이다. 자연인으로서의 세월과 가수로서의 세월이 그대로 포개지는 보기 드문 음악인이다.

 하씨가 내년 데뷔 50주년을 맞는다. 지난달 29일에는 한국가요작가협회가 선정한 ‘대한민국 가수 왕중왕 상’을 수상했다. 우리 가요 발전에 기여한 그의 공로를 기념하기 위해 작곡·작사가들이 건넨 상이다. 그는 “이제 노래가 뭔지 조금 알 것 같은데 벌써 반세기 동안 노래를 불렀다니 도무지 실감이 나질 않는다”고 했다.

 # 여섯 살 꼬마 가수로 데뷔

 하춘화는 여섯 살이던 1961년 ‘효녀 심청 되오리다’는 앨범으로 정식 가수로 데뷔했다. 이 앨범은 꼬마 하춘화의 인사말로 시작하는데 이런 내용이다.

 ‘나이 어린 제가 여러분의 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퍽 걱정이 됩니다. 아무튼 한번 불러보겠어요.’

 이 앙증맞은 인사말을 하며 노래를 시작했던 꼬마는 훗날 한국 대중가요사를 풍성하게 살찌운 대형 가수로 성장했다. 그렇게 반백년이 흘렀고, 여섯 살 꼬마 가수는 어느덧 50대 중턱을 넘고 있다.

 -50년을 꾸준히 가수로 살 수 있었던 원동력은 뭘까요.

 “감히 말씀 드린다면 피나는 노력이 첫째에요. 50년간 단 하루도 노래 연습을 빼먹은 적이 없어요. 대중은 냉정하거든요. 조금이라도 기대에 어긋날 경우 박수를 주지 않아요. 제가 노력하는 모습에 팬들이 성원해줘서 노래를 계속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가수로서 위태로웠던 순간은 없었나요.

 “인기인은 늘 위기를 겪으며 살아가죠. 인기란 게 어느 날 갑자기 내 옆에 있다가 또 갑자기 나를 떠나가기도 하거든요.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내적인 면을 충실하게 쌓으면서 순간순간의 위기를 잘 넘겼던 것 같아요.”

 # 가요계 여왕으로 우뚝 서다

 1970년 발표한 ‘물새 한 마리’는 하춘화에게 ‘인기 가수’ 타이틀을 달아준 첫 번째 앨범이다. 당시 그의 나이 열다섯. 중학교 3학년이었던 ‘하춘화양’은 성인 가수들과 어깨를 견주며 인기 가도를 달리게 됐다. 특히 동양방송(TBC)과의 인연은 가요계에서 숱한 화제를 낳았다. TBC는 ‘한 가수가 연속 수상할 수 없다’는 기존 방침을 깨고 하춘화에게 72년부터 4년 연속으로 여자 가수상을 건넸다.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 의견을 거스를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TBC 여자가수상을 4년 연속 수상한 대기록을 남기셨죠.

 “기존 방침까지 바꾸면서 상을 주셔서 너무나 영광이었죠. TBC 쇼 프로그램은 물론 드라마에도 출연하면서 인기를 많이 얻었죠. 저를 키워준 곳이나 다름 없어요.”

 - 1979년 TBC가 언론통폐합 조치로 문을 닫게 됐을 때 어떠셨나요.

 “한 쪽 팔이 떨어져 나가는 심정이었어요. 정말 가슴이 아팠죠. 중앙일보가 새로운 방송을 준비한다고 들었는데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다는 점에서 정말 다행스런 일이에요.”

 #“가수 하춘화는 아버지의 작품”

 올해로 구순에 이른 아버지는 여전히 그의 든든한 후원자다. “딴따라 시킨다”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도 여섯 살 꼬마를 끝내 가수로 성장시킨 아버지다. 고령의 몸이지만 요즘도 손수 딸의 홈페이지를 관리할 만큼 열정적이다. 무엇보다 “노래를 잘 부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중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사회에 되돌려주는 데 힘쓰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은 가수 하춘화의 나침반이었다. 그가 각종 사회봉사를 게을리 하지 않고, 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공부에 힘쓰는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하춘화는 2006년 성균관대에서 대중가요를 주제로 예술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 가수 하춘화에게 아버지는 어떤 의미입니까.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가수 하춘화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저의 재능을 발견하고 후원해주신 분이시죠. 가수 인생 50년간 저에 대한 자료를 하나도 빼먹지 않고 정리하고 계세요. 무조건 감싸는 게 아니라 노래가 엉망일 땐 엄하게 꾸짖기도 하시고요.”

 -사회 봉사에 관심이 많으시죠.

 “그것도 아버지의 가르침이죠. 저는 열악한 지역에 초청을 받아 가면 공연 수익금을 그 지역의 어려운 분들을 위해 써달라고 꼭 전달하고 와요. 대중의 사랑을 받은 만큼 사회에 되돌려주는 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 데뷔 50년차 가수의 꿈

 하춘화는 내년 1월 14~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50주년 기념 콘서트를 연다. 자신의 히트곡은 물론, 해방 이전 가요부터 소녀시대 등 최근 아이돌 가수의 노래까지 총망라한 일종의 ‘대중가요사 콘서트’를 준비 중이다. 그는 “한국 가요 80년사의 현장을 체험하는 무대가 될 것”이라고 했다.

 -아직도 이루고 싶은 꿈이 있을까요.

 “대중음악 전문 학교를 세우겠다는 평생의 꿈을 이루기 위해 슬슬 움직일 때가 된 것 같습니다.”

 - 가요계 대선배로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요즘은 진정한 스타가 부족한 것 같아요. 생명력이 긴 실력 있는 가수가 잘 안 나온다는 뜻이죠. 얼마 전 방영된 ‘슈퍼스타 K’를 보고 펑펑 울었거든요. 아무리 가요 시장이 기울고 있다고 해도 실력 있는 사람에겐 설 자리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숫자로 보는 하춘화

6 데뷔 당시 나이

133 발매 음반 개수

2500 발표 곡수

8000 국내외 공연 횟수

하춘화의 히트곡

-효녀 심청 되오리다(1961, 데뷔곡)

-물새 한 마리(1970)

-잘했군 잘했어(1971)

-강원도 아리랑(1972)

-영암 아리랑(1972)

-연포 아가씨(1972)

-난생 처음(1973)

-이슬비(1975)

-우리 사랑 가슴으로(1983)

-날 버린 남자(1990)

-인생(1995)

-연하의 남자(1999)

중앙일보 글=정강현 기자 foneo@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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