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G20'…"끝나지 않은 국격 높이기"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를 통해 한국은 그간 ‘규칙을 따르는 자(rule follower)에서 ‘규칙을 만드는 자(rule maker)’로 국격을 크게 높였다. 개발의제 등 '코리아 이니셔티브'를 제시해 각국의 지지를 받았고 환율, 무역불균형 해소 등에서도 주도적으로 해법의 가닥을 잡아나갔다.

13~14일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등은 G20의 성공 개최를 이끌어낸 한국에 대해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자칫하면 일회성 이벤트를 잘 치른 것으로 끝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한국이 '의장국 이익(어드밴티지)'을 어느 정도 누리며 국제 사회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여러 도전 과제를 극복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충고하고 있다.

무엇보다 정부가 기존에 천명했던 대로 ‘G20’라는 협의체를 영속화시키기 위한 작업을 펼쳐야 한다는 지적이다. 아직 상설체로 확실히 자리매김하지 못한 G20를 정례화하기 위해서는 상설 사무국을 설치해야 하는데, 이 기구를 서울에 유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를 위해서는 ‘주요 7개국(G7)’ 체제를 선호하는 일본, 이탈리아 등의 반대를 뿌리쳐야 한다. 사실 G7 등 선진국들은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자신들만의 논의로 문제 해결이 여의치 않아 G20을 통해 신흥국을 끌어들였다. 상황에 따라 다시 G7 체제 중심으로 돌아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G2(미국, 중국) 뿐만 아니라 브라질 등이 가세해 벌어진 환율전쟁은 서울 정상회의를 통해 '소강 국면'을 맞이했지만 언제라도 재연될 수 있다. 선진국들은 위기에서 벗어날수록 'G20 공조틀'을 깰 수 있다.

게다가 내년에 개최될 G20 프랑스 정상회의에서 프랑스는 기축통화 개편을 주 의제로 올려놓았다. 주요 통화를 사용하는 선진국 중심으로 논의가 흘러갈 수 있어 신흥국 관점에서 여러 이슈를 제기해 온 한국의 노력이 묻힐 가능성도 있다.

이럴 경우 선진국과 신흥국의 가교 역할을 내세우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한국은 어정쩡한 처지에 놓일 수도 있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주도 역할을 이어가기 위해 활동 반경을 더욱 굳게 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경상수지 가이드라인과 실행방안에 대한 대안을 적극 제시하고 글로벌 금융안전망과 개발 의제를 더욱 부각시켜야 한다는 얘기다.

박복영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거시금융실장은 "서울 정상회의에서 확보한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환율과 경상수지 가이드라인을 구체화할 수 있는 기준과 실행 방안에 대해 각국 정상들이 수용할 수 있는 대안을 계속 제시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진행과정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프랑스 정상 회의에서도 중국, 독일 등 경상수지 흑자국과 미국 등 적자국이 날카롭게 맞설 것으로 예상되며 실질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은 상당한 갈등을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기존 성과에 도취되지 말고 한국이 서 있는 국제정치경제적 위치와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상회의가 끝난 직후 상황도 심상치 않다. 귀도 만테가 브라질 재무장관은 정상회의 직후 "G20 정상들은 자국 환율에 영향을 주는 정부에 대해 그저 '윤리적 규제'만을 가하기로 했다"며 환율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과 후 주석은 APEC에서 서울 정상회의 전 모드로 되돌아 갔다. 오바마 대통령은 “단순히 미국에 수출하는 것만으로는 어떤 나라도 번영을 보장할 수 없다"며 중국을 겨냥했고 후 주석은 위안화 환율을 점진적으로 개혁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한국은 내년에도 'G20 의장국 트로이카'(전직·현직·차기)로서 스티어링(조정)그룹 멤버로 활동하게 된다. G20 의제로 공식화된 개발과제나 글로벌 금융안전망 논의를 계속 이어가는 책임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 같은 ‘포스트 G20’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 정부는 G20정상회의 준비위원회를 해체한 이후의 대체 조직에 대한 윤곽을 빨리 그려야 할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이 같은 대체조직은 실무적이거나 행정적인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국가의 장기적인 외교적, 경제적 전략 차원에서 검토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형태의 G20기획단 구성, 재정부의 국제금융국을 국제금융실로 승격 등 여러 방안이 나오고 있지만 아이디어 차원에 머물고 있다.

G20 준비위원회 관계자는 "“아직 조직 문제에 대해 논의가 본격화되지 않았다”며 “내년에도 G20 관련 업무가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조직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G20의 모멘텀을 이어 가기 위해서는 다시 한번 범정부적 차원에서 국가의 인적 역량과 물적 기반을 결집시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