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깐해진 거래소, 칼바람 맞은 IPO 시장

한 중소형증권사 기업공개(IPO)부는 최근 올해 상장 실무 업무를 사실상 마무리하고 내년을 위한 영업에만 주력키로 했다. 당장이라도 예비심사에 올릴 수 있는 기업이 1~2곳 있었지만 내년으로 미뤘다. 당분간은 '몸을 사려야 한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거래소가 상장 심사 과정에서 상당히 깐깐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최근 달아오르고 있는 상장 공모 시장의 열기가 꺾일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지난 11~12일 이틀간 있었던 한국거래소 상장 심사위원회의 후폭풍이 상당하다. 거래소는 이 기간 심사한 9개 기업 중 6곳에 미승인 혹은 재심의 판정을 내렸다. 심사 승인률은 33%로 평균 75%의 절반에 불과했다.

승인을 낙관하고 기업설명회(IR) 등 일정을 확정하는 데 분주하던 증권사들은 날벼락을 맞은 표정이었다. 예심 청구 전부터 거래소와 의견을 조율해왔고 경험상 통과에는 크게 지장이 없을 거라 판단했던 부분이 지적을 받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위원회는 물리적으로 연내 상장을 확정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기 때문에 충격이 더했다. 이번 심사에서 미승인을 받은 기업 4곳은 사실상 결산 등으로 인해 내년 2분기에나 상장이 가능하다. 일정이 5개월 이상 늦어지는 셈이다.

당초 올 12월 IPO 시장은 12곳 내외의 기업이 공모를 진행해 규모가 8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대한생명과 삼성생명이 상장한 지난 3월과 5월에 이어 올해 세 번째로 뜨거운 시장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무더기 심사 탈락으로 12월 시장 예상 규모가 3000억원대로 줄어 시장의 기대에 비해 반 토막 났다.

특히 올해 코스닥 시장 최대 상장 공모였던 TK케미칼이나 빅3 엔터기업인 YG엔터테인먼트의 예심 탈락으로 주목성 있는 거래가 사라졌다는 점이 가장 아쉽다는 평가다. 12월 IPO 시장에서 눈에 띄는 공모는 이제 현대HCN 정도다. 그나마도 2대 주주의 구주매출 불참으로 규모가 1000억원에 채 미치지 못한다.

깐깐해진 거래소의 입장을 확인한 증권사들은 내년 초 진행해야 할 거래를 미리 꺼내놓길 주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연초부터 시장이 달아올랐던 올해와는 달리 내년 1~2월엔 동한기(冬閑期)를 보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거래소의 입장도 이해할 만하다. 최근 일어난 중국원양자원의 늑장 공시 사태는 거래소의 예비심사 절차의 신뢰성을 무너뜨렸다. 등록된 최대주주가 단순 명의신탁자였는데 그것도 검증하지 않았냐는 비난이 빗발쳤다. 11일 옵션 쇼크로 인해 어지러워진 시장도 거래소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는 시각이 많다.

여기에 15일부터는 금융감독원이 예고한대로 거래소에 대한 종합 검사에 착수했다. 금감원은 특히 상장과 퇴출 업무를 면밀히 검토하겠다고 공언했다. 거래소로서는 행동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국내 자본시장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거래소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증권사가 거래소의 눈치를 보다 보면 국내 증시의 경쟁력 중 하나인 상장의 편의성과 신속성이 약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증권사 관계자는 "이번 일이 시장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되진 않을지, 가지고 있는 거래를 언제 꺼내야 할지 증권사들의 고민이 많아졌다"며 "평소 구호처럼 시장 친화적인 거래소의 모습이 아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