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예산안 처리는 정의"라더니…

한나라당이 새해 예산안 처리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예산안을 강행 처리한 직후 "예산안 처리가 정의"(8일 김무성 원내대표)라던 기세는 진작 사라졌고, 자중지란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여권 관계자는 13일 "당내에서도 이번 예산안 처리와 관련해 문제가 많다는 인식이 많다"며 "강행 처리는 둘째 치고, 일부 실세 의원의 지역구에 유난히 예산 증액이 많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불만이 점차 거세지고 있다"고 전했다.

당내 '경제통' 이한구 의원은 "국민여론이 나빠진 핵심 중 하나는 예산안 처리를 너무 서둘러서 고지를 점령하는 식, 즉 합의절차를 충분히 안 밟아서 생긴 것"이라며 "다른 하나는 속칭 실세예산을 늘려놓고 서민예산을 빠뜨린 부분"이라고 비판했다.

홍준표 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의에서 "의장석 몸싸움을 보면서 1996년 노동법 기습처리를 생각했다"며 "당시 승리했다고 축배를 들었지만 이는 김영삼(YS) 정권 몰락의 신호탄이었고, 이후 정권을 넘겨줘야만 했다"고 말했다. 이어 "서민예산을 삭감하고 실세들의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증액했다는 보도를 봤다"며 "이는 예산안 통과 정당성을 더욱 저하시키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청와대가 예산안 처리 강행을 지시했다는 지적을 언급하며 "근본적인 문제는 당이 독자성을 상실했다는 것이고 한나라당의 지지는 국민에게서 오는 것이지 청와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정두언 최고위원 역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심이 중요하고, 선거라는 큰 틀에서 이 문제를 봐야한다"며 당의 자성을 촉구했다.

고흥길 정책위의장의 사퇴와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의 유감 표명이라는 당 지도부의 카드는 오히려 역효과만 불러일으켰다. 여당 지도부와 청와대가 자신들의 잘못을 시인하지 않으면서 다른 곳으로 책임을 돌린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상황.

고 정책위의장은 지난 12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예산과 관련된 모든 책임을 진다"며 사퇴했고, 윤 장관은 13일 안상수 당 대표를 찾아와 예산안 관련 경위를 설명하고 유감을 표명했다. 안 대표는 윤 장관을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한구 의원은 "고 정책위의장 본인이 책임의식이 강하니까 그냥 사퇴를 한 것 같지만 책임을 묻는다고 하면 약간 엉뚱하다"고 꼬집었다. 홍 최고위원은 더 나아가 "언론 보도를 보면 청와대가 (사퇴를) 정한 것처럼 나오는데, 야당이 청와대를 물고 늘어지는 마당에 당청회동을 통해 사퇴한 것은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다른 여권 관계자는 "이번 사태의 원인이 100% 재정부에 있다고 보기 힘들고, 오히려 당이 실수한 부분이 크다"며 "안 대표가 윤 장관을 질책하는 것은 적반하장이라는 느낌을 준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야당은 한나라당에 대한 공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안을 빨리 만들어야 한다고 압박했고, 민주당의 장외투쟁도 계속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한나라당 지도부는 추가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하지만 당내 반발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여론까지 악화된 상태라 예산안 강행 처리에 따른 후폭풍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