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한국채권 연말 투매의 진실은?

지난 한해 줄기차게 국내 채권을 매수해 오던 외국인들이 12월 한 달간 매몰차게 매도공세를 펼쳤다. 이를 두고 '연말 북 클로징의 영향이다', '원화강세 베팅 매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재정거래 이익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등 여러 분석이 나왔다.


그동안 통계상 잡히는 일반적인 기관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동안 '외국인'이라고 지칭당하긴 했지만 이들 자금은 워낙 국적도 다양하고 자금 성격도 다양해 투자 성향을 일괄적으로 규정하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일단 국적별 매도규모로 따져보면 12월 외국인 채권 매도의 주된 주체는 유럽계 자금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이들이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동안한국채권을 집중적으로 팔아치운 배경은 무엇일까.

◇ 12월 한 달간 외국인 국내채권 보유 잔액 6조원 감소


1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외국인들의 채권 보유 잔액은 74조1923억원을 기록했다. 11월말 잔액이 80조1100억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한 달 새 6조원에 가까운 자금이 빠져나간 셈이다.

지난 2009년1월말 외국인의 국내채권 보유 잔액은 37조5000억원에 불과했다. 2009년 한 해 동안 20조원 가량 증가한 보유 잔액은 2010년11월 말 드디어 80조원을 넘어섰다. 시장상황에 따라 잔액이 감소한 달도 있었지만 감소규모는 1조원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던 외국인이 12월 한 달간 6조원 가량의 채권을 팔아치웠으니 시장 참가자들은 당황했다. 외국인 투자 패턴에 터닝포인트가 온 것인지, 일시적인 상황일 뿐인지 갈팡질팡했다.

6조원은 북 클로징의 영향이라고 보기엔 지나치게 큰 규모. 2009년12월에도 외국인 보유채권 잔액이 줄긴 했지만 1조원 규모에 불과했다.



◇ 홍콩·영국·싱가포르·대만·스위스·프랑스, 통안채 대거 매도

12월 외국인 보유 채권종류를 살펴보면 외국인들은 통안채를 대거 팔았다.

12월말 외국인이 보유한 통안채 잔액은 25조4201억원으로 11월말(30조4414억원)보다 5조원 가량 줄었다. 12월 국채 보유잔액(47조7450억원)이 전달(48조7054억원)에 비해 1조원 가량 줄어든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12월 외국인 현물채권 매도는 대부분이 통안채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국가별 순투자 규모로 살펴보면 12월 중 국내채권을 가장 많이 판 국가는 홍콩이다.

홍콩의 12월 한 달간 순투자 규모는-2조3938억원. 그 뒤를 영국(-1조2848억원), 싱가폴(-1조2576억원)이 이었다. 이밖에 대만, 스위스, 태국, 프랑스의 순투자도 마이너스를 보였다. 미국(5379억원)과 중국(4250억원)은 오히려 12월에도 국내채권을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12월 한 달간 홍콩·영국·싱가포르·대만·스위스·프랑스등이 통안채 위주로 국내채권을 팔았다고 정리할 수 있다. 홍콩과 싱가포르의 경우 외국계 금융회사들의 아시아 헤드가 주로 밀집해 있다. 때문에 이쪽으로 통계가 잡히더라도 실질적인 자금원천은 유럽이나 미국 등의 자금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 결국 12월 국내채권 매도는 유럽계 자금이 주체가 되어 단기물 위주로 이뤄진 셈이다.



◇ 12월 매도세, 유럽 재정위기·외국인 채권과세 영향

유럽계 자금이 12월 국내채권을 팔아치운 배경으로는 자국의 재정위기가 한몫을 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유럽계 금융기관들은 해외투자 이전에 만일의 사태에 대비, 일단 유동성을 확보해 놓는 것이 급선무였다는 설명이다.

금융시장 한 관계자는 "지난해 말 유럽계 기관위주로 포트폴리오를 보수적으로 가져가자는 내부적인 방침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며 " 한국 등 다른 국가 채권에 투자분 중 만기가 돌아오는 부분은 재투자 하지 않고 유동성으로 가져가는 경향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또 지난해 말 발표된 외국인 채권 과세제도도 일정부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금융시장에 따르면12월 매도분 중 2조원 가량은 유로클리어를 통한 투자자금이었다. 유로클리어는 투자자들이 세계 각국의 증권에 투자할 때 국가별로 별도의 자기계좌가 없어도 통합 계좌를 통해 거래할 수 있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제증권예탁결제기관이다.

외국인 채권 과세제도가 도입되면 유로클리어를 통한 투자의 경우과세주체가 분명치 않아 혼란이 예상되는 등 기술적인 문제가 있어 일단 이쪽을 통한 자금이 많이 빠져나갔다는 분석이다.

한편 태국의 경우 12월뿐만 아니라 지난해 지속적으로 한국채권 투자를 줄여오고 있다. 태국의 2010년12월말 채권 보유 잔액은 14조8732억원으로 지난 2009년말(16조7440억원)에 비해 2조원 가량 줄었다. 자국의 금리가 오르는 상황에서한국채권 투자보다 국내투자에 더 금리 메리트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알려졌다.

12월 한 달 새 6조원을 팔았지만 외국인들의 매수 시각이 아예 꺾였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 외국인들이 재정거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2009년 등 이전에 비해서는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상황이고 무엇보다도 국채 등 장기물 보유 잔액은 이전 수준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12월 현물채권을 매도했던 외국인들은 1월 들어 일주일간은 다시 채권을 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 7일 기준 외국인 채권 보유 잔액은 74조5297억원으로 지난해 말에 비해 3400억원 가량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