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그릇의 추억,짜장면에 대한 소고小考

1960년, 코흘리개 아이들이 중국집 앞을 어슬렁대고 있다. 춘장을 기름에 볶으면 특유의 구수한 향이 퍼졌고 그때마다 온 동네는 허기졌다. 짜장면에는 분명히 힘이 있다.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짜장면을 기쁘고 행복한 날 특별음식으로 먹었다.


‘국민 음식’으로 아이들의 운동회나 생일에 가장 많이 먹는 메뉴였고 이사하거나 밤샘 작업을 할 때도 짜장면이 단연 1순위였다. 손으로 차지게 뽑은 면발에 검은 춘장으로 볶은 소스 조금이면 세상 더할 나위 없이 편하고 행복했다. 웃고 울던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짜장면을 찾아 떠나본다.
(*‘자장’으로 표기하는 것이 올바른 표기법이나 ‘짜장’으로 표기해 기자가 전하는 기사의 감성을 살렸다.)

◇ 중국 상인에 의해 시작된 중국 음식
1882(고종 19년)년 임오군란을 기점으로 청나라 군인들과 청군을 지원하기 위한 산둥山東지역의 청상들이 함께 건너왔다. 상인들은 주둔기간이 길어지면서 조선인을 상대로 장사를 시작했다.

1894년「청상보호규칙」을 통해 중국 상인들은 자유롭게 상업 활동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중 90%는 우리나라와 거리가 가까운 산동지역 출신의 화교였다. 1898년 중국 산동은 ‘의화단 운동’에 의해 극심한 혼란에 접어들었다.

1910년 영국을 비롯한 8개국 연합군에 의해 진압되고 내전이 계속되자 많은 산동사람들이 한국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1942년 화교들은 10만 명에 달했다.


해방 후 정부는 중국 상인들의 무역을 금지시켰다. 그때부터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던 대부분의 화교들이 생계 수단으로 음식점을 열기 시작했다. 이때 중국음식이 알려졌다.

일본 학자 소전내통민의 '취락과 지리(1927)'에서는 ‘조선의 내지를 여행한 사람은 화상의 활약이 결코 주요 도시에 머물지 않고, 군청 소재지인 소위 읍내조차도 많은 곳은 10수호, 적은 곳은 3, 4호의 상인이 반드시 잡화점이나 요리점을 경영하고 있는 것을 본다(1924:36)’고 한 증언이 이를 뒷받침한다.

◇ 인천항 개항으로 중식당 등장
1883년 인천항이 개항했다. 1884년에는 인천 차이나타운이 생겼다. 화교들이 건너와 그들의 주식인 중국음식을 먹다가 같은 중국인을 상대로 음식을 팔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다 부유층을 상대로 한 고급 중식당이 등장했다. 청인들의 거주지인 청관靑館 거리에 생겨 이곳을 ‘청요리집’이라 불렀다.

1907년대 우리나라 최초의 중국집인 '공화춘共和春'을 시작으로 '중화루', '동흥루' 등 많은 청요리집이 문을 열었다. 그때 당시 평균 봉급이 60원 정도였는데 청요리집의 코스가격이 12원 정도였다고 하니 중국음식은 부의 상징인 고급음식이었다.

1905년 '공화춘'이 한국 최초의 짜장면을 개발해 팔았고 한국 짜장면의 기원이라는 주장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많은 학자들의 건립 시점에 대한 의견은분분하다.

「공화춘기록화조사보고서(2007)」에서는 공화춘의 건립시점을 1907년 무렵이라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 2006년 문화재청은 폐허로 방치된 공화춘을 근대 문화유산 246호로 지정, 현재 ‘짜장면 박물관’으로 건립 중이다.

◇ 혼·분식 장려운동으로 수혜받아
6.25 전쟁이후 미국은 남아도는 밀을 대량으로 공급했다. 1955년 이승만 정부가 미국과 체결한‘ 미국 공법 제 480호’에 따라 우리는 약 8년간 70% 밀을 제공받았다. 하지만 쌀이 주식이던 우리나라의 식문화로 밀가루는 크게 확산되지 않았다.

원조 곡물이 쌓여가면서 정부는 혼·분식 장려 운동을 펼쳤다. 보리, 콩, 조 등 잡곡을 섞은 밥이 혼식이고 밀가루 음식이 분식이다. 그리고 ‘이 조치를 위반하거나 비방 시에는 영장 없이 엄벌에 처한다(1974년 1월 8일. 긴급조치 1호)’는 정책을 펼쳤다.

정부는 1969년부터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을‘분식의 날’로 정해 강력한 절미節米운동을 벌였다. 그 날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쌀로 만든 음식을 팔지못했다. 1977년까지 이어져 온 혼·분식 장려운동으로 쌀 중심이던 우리네 식습관이 변화하기 시작했고 중식당은 크게 성업했다.

◇ 사자표 춘장, 한국식 짜장면 탄생
춘장은 중국의 면장面醬의 다른 이름인 총장蔥醬에서 비롯되었다. 총장은 대파를 찍어먹는 장이다. 총장을 한국인이 발음하면서 춘장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중국의 면장을 만드는 방법은 된장과 비슷하다. 콩을 삶아 밀가루를 입힌 후 누룩을 넣어 발효시킨다.

시간이 지날수록 면장의 색은 진해지고 감칠맛도 더해진다. 기름에 볶은 퍽퍽한 면장을 조금씩 넣어 비벼먹는 ‘짜지앙미옌’은 산동지역의 향토음식이다. 한국에 상륙할 당시 된장에 익숙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짜지앙미옌을 쉽게 받아들였다.

1948년 중국 산둥성 출신의 화교 왕송산은 지금의 영화식품(주)을 열고 최초로 면장을 생산했다. 1950년 6.25 이후 춘장은 ‘사자표’라는 브랜드로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되었다. 처음 ‘사자표’춘장은 갈색이었다.

그러다 ‘색이 진할수록 맛과 영양이 좋다’는 경쟁회사의 마케팅 전략으로 색이 연한 ‘사자표’춘장의 점유율이 하락하자 캐러멜을 첨가한 검은색 춘장을 만들었다. 그 결과 단맛을 내는 한국식 묽은 짜장면이 탄생했다. 그 후 지금까지 ‘사자표’춘장은 80% 시장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짜장면은 현재 하루 약 600만 그릇이 판매되고 있다.

◇ 국민음식 짜장면
1996년대 한 영양사회가 서울 시내 9개 초등학교 학생 722명을 대상으로 식습관과 음식 기호도를 조사한 설문 조사 결과 89%가 짜장면을 좋아한다고 했다. 이 무렵 을지로의 '안동장'은 하루에 밀가루 20포대씩을 사용했다고 한다.

1970년대부터 중식당은 급증했지만 화교들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정부가 중국인을 상대로 차별정책을 펼쳤기 때문이다. 1971년‘외국인 토지 취득 및 관리에 관한 법’이 시행되면서 50평 이하의 점포만을 허용했고 '공화춘'을 비롯해 많은 청요리집이 문을 닫았다. 화교들이 정부의 규제에 다른 나라로 이주하면서 한국인이 중식당을 인수했다. 그리고 중국식당은 점차 한국식으로 변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중식당은 영업 전략으로 가격 경쟁을 펼쳤다. 점차 재료들은 단순화되기 시작했다. 수타면이었던 것이 기계면으로 보편화되었다.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춘장을 사용해 맛도 비슷했다.

그리고 1990년대 말 IMF이후 배달만을 전문으로 하는 중식당이 성업하게 된다. ‘한겨례신문 요리사X와 김중력의 음식잡답(2007.5.31)’의 기사에는 ‘짜장면 맛있는 집이 없는 건 당연한 거야. 좋은 춘장이 없으니까.

지금도 집에서 춘장을 만들어 먹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만약 그런 춘장을 상업적으로 만드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캐러멜 넣은 강력한 공장 춘장의 맛을 못 이겨…’라며 오늘날의 짜장면을 지적했다. 고급음식에서 추락한 짜장면의 모습이다.

국민들의 GNP가 3천 달러에 이르면서 우리 전통의 궁중요리와 반가요리를 포함해 외국의 고급음식이 보편화되었다. 이제는 건강음식 위주의 식단이 인기를 끌면서 짜장면의 위상은 급격히 무너졌다.

“짜장면 시키신 분~”이라는 유행어가 나올 정도로 배달의 대명사를 자청하던 짜장면은 수많은 업종이 배달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그 자리도 물려준 지 오래다. 화려했던 전적이 무색할 만큼 짜장면의 시대는 이제 저물어 가는 듯 보인다.

짜장면을 주제로 한 우수저작 공모전 당선작인「짜장면뎐(양세욱, 프로네시스, 2009)」에서는 짜장면을 ‘산업화의 전투식량’으로 우리네 ‘희노애락의 산증인’이라고 표현하면서 지금까지 이런 음식은 없었고 앞으로도 다시 있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 도움말 ; 식품 외식 프랜차이즈 전문 _ 월간 외식경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