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속에 맞는 李대통령의 취임 3주년

이명박 대통령이 오는 25일 '조용한' 취임 3주년을 맞는다. 이 대통령은 이날 확대 비서관 회의를 열고 이어 세르게이 소뱌닌 모스크바 시장을 접견한다.


확대비서관 회의에는 참석 대상인 비서관 뿐 아니라 행정관 이상 대다수 청와대 직원들이 참여한다. 남은 2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한 의지를 다지는 자리가 될 것이라는 전언이다. 이밖에 공식 일정은 없다. 김희정 청와대 대변인은 "3주년을 특별한 날로 생각하기보다 평상시처럼 뚜벅뚜벅 일하겠다는 것이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조용한 3주년을 선택했지만 이 대통령을 둘러싼 국정 환경은 '소용돌이'쪽에 가깝다.

집권 후반기 국정 운영을 든든하게 뒷받침 해줘야할 여당은 대통령으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다. '개헌론'으로 '친이'계 결집이 시도되고 있지만 별반 효과가 없다. 지난 20일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 최고위원 만찬에서 모처럼 단합을 과시했지만 하루도 가지 못했다. 정두언 최고위원은 불과 하루만인 21일 개헌논의에 불만을 표시하며 "민심과 따로 가면 딴나라당 된다" "대통령과 밥 한번 먹었다고 입장이 바뀌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동남권 신공항, 과학비즈니스벨트 등 대규모 국책 지역개발 사업도 대통령에게 큰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가덕도에 신공항을 유치하려는 부산과 밀양을 지지하는 경북, 경남, 대구, 울산의 유치 경쟁이 과열되고 있다. 영남권이 두개로 쪼개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올 정도다.


과학비즈니스 벨트도 대선 공약을 지키라는 충청과 뒤늦게 유치전에 뛰어든 다른 지자체들이 일전을 불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법절차에 따라 합리적으로 처리하도록 했지만 자신의 '공약 사항'이라는 '원죄'까지 덮기는 벅차다.

믿을 언덕이던 측근들도 발목을 잡고 있다. 이 대통령의 친구로 막후 실세였던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이 지난해 말 구속되더니 올 들어서만 장수만 방위사업청장, 최영 강원랜드 사장, 배건기 청와대 감사팀장 등 최측근들이 비리로 구속되거나 현직에서 물러났다. 대통령의 '복심(腹心)' 중 복심으로 손꼽히는 원세훈 국정원장은 대통령이 극진히 모신 인도네시아 특사단의 호텔 객실을 국정원 직원들이 정보 수집을 위해 침입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임 압력에 시달라고 있다. 친형인 '이상득 의원'도 갈수록 부담이다.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22일 교섭단체대표 연설에서 이 의원의 정계 은퇴 촉구하면서 여야 간에 '설전'이 벌어졌다.

무엇보다 경제가 문제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경제 대통령'을 자임하며 경제를 최우선 과제로 챙겨왔다. '여의도 정치권'을 너무 멀리한다는 얘기를 들으면서까지 챙겼던 경제다. 취임 초 글로벌 금융 위기를 빠르게 극복하고, 지난해 G20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치르면서 50%에 육박하는 지지를 받는 든든한 배경이 됐다.

하지만 최근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 연초부터 물가가 들썩거리더니 '리비아 사태'로 중동지역 정세가 극도로 불안해졌다. 국제유가는 연일 치솟고 있다. 두바이유 가격은 30개월 만에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는데 중동사태가 악화될 경우 지난 2008년 7월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기준 역대 최고치인 배럴당 147.50달러를 넘어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유가상승은 전반적인 물가 인상 압박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물가는 체감경기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놓칠 수 없는 국정 과제다. 서민 주거를 위협하고 있는 전세대란도 여전하고 사상 초유의 구제역 사태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긍정적인 면도 있다. 집권 4년차를 맞았는데도 국정운영 지지도가 40%대로 과거 어느 정권보다 높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4년차 지지율은 20~30% 수준이었다. 국정 환경은 어렵지만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여지도 크다는 얘기다.

이 대통령은 지난 20일 출입기자단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산을 오르내리는 것이 아니라 평지를 뛰는 자세로 일하겠다"고 말했다. 레임덕(권력누수)을 개의치 않고 일관되게 일하겠다는 뜻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3주년 전날인 24일 중동 사태와 관련한 긴급 관계 장관회의를 소집했다. 이 대통령의 취임 4년차는 이렇게 숨 가쁘게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