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는 왜 신공항 백지화를 택했나

동남권 신공항 사업이 결국 백지화 쪽으로 가닥을 잡으면서 이명박 대통령이 다시 한 번 주요 대선 공약 중 하나를 뒤집게 됐다. 이번 결정은 대통령에 대한 신뢰 추락, 부산과 대구경북 등 관련 지역 사회 및 지역 정치인들의 반발 등으로 이어지면서 국정 운영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집권 후반기 레임덕(권력누수)을 앞당길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공약 보다 경제 논리= 이런 부담에도 백지화 결정을 내린 데는 '경제 논리'를 최우선시하는 이 대통령의 국정 철학이 배경이 됐다는 분석이다. '경제 대통령'을 자임하는 이 대통령은 결단이 필요한 주요 정책 사안들을 다룰 때마다 '정치 논리'가 아닌 '경제와 효율'을 우선 고려했다.


대표적인 것이 세종시 문제다. 이 대통령은 충청 표심이 거세게 반발하는 과정에도 세종시 공약을 뒤집고 '세종시 수정안'을 밀어 붙였다. 부처 이전을 골자로 하는 세종시안이 행정 비효율성과 자족성 문제로 '유령도시'를 만들게 될 것이라는 논리였다. 공약을 뒤집는 한이 있어도 잘못된 정책을 바로 잡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게 이 대통령의 판단이었다. 이 대통령은 대신 대기업과 대학 연구기관 들이 들어오는 미래형 첨단 경제도시를 만드는 수정안을 밀어부쳤으나 국회 부결로 결국 이마저도 이루지 못했다.

동남권 신공항 문제도 일찌감치 경제성이 가장 중요한 잣대로 간주됐다. 평가위원회가 꾸려지기 전부터 가덕도와 밀양 모두 경제성이 떨어져 '백지화 가능성' 높다는 얘기가 청와대 안팎에서 흘러나왔다. 입지평가위원회는 지난 23일 평가분야 중 경제성에 40%, 공항운영과 사회·환경 부문에 각 30%의 가중치를 둬 경제성에 가장 큰 비중을 두겠다고 밝혀 이를 공식 확인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이미 2009년 국토연구원 용역 결과 경제성이 낮게 나왔는데 이는 지난해 하반기에 정부가 발표한 고속철도 확충 계획안도 반영이 안된 결과"라며 "고속철도 확충 계획을 반영하면 항공 수요가 종전보다 줄어들어 경제성이 더 낮아진다"고 말했다.


다른 여권 관계자는 "이 대통령의 판단은 심플하게 보면 된다"며 "경제적으로 타당한가가 잣대"라고 말했다.

경제성 외에 가덕도와 밀양의 경쟁력 차이가 크지 않은 상황에서 어느 한쪽으로 신공항을 주기 어렵다는 정치적인 판단이 깔려 있다는 해석도 있다.

한 여권 관계자는 "어느 한쪽의 경제성이 뛰어난 상황이라면 그 쪽에 주고 다른 쪽을 설득하는 것이 정치적으로는 쉬운 해법일 수 있다"며 "다만 양쪽의 경쟁력이 크게 차이가 없는 상황에서는 한쪽만 떨어뜨리는 것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독단적 리더십, 정치적 가치 소홀 '비판'= 이 대통령의 '일방통행식' 리더십이 이번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도 있다.

신율 명지대 교수(정치외교)는 "공약은 여러 가지 있을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 된 후에 공론화하고 국민들과 상의하는 일"이라며 "여론을 제대로 들어보지 않고 자신이 생각한 것만 밀어부친 결과"라고 말했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이 대통령의 후보시절 '공약 남발'이 가장 큰 문제였다고 지적한다.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 공약들을 대거 양산해 스스로를 '최악'이나 '차악'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았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정치적인 가치'를 소홀히 하고 있다는 비판도 높다. '경제성과 효율'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원칙과 신뢰'인데 이를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외교)는 "정부가 항상 내세우는 것이 '효율과 책임'이지만 정치에서는 더 중요한 것이 '원칙과 신뢰'"라며 "공약을 했으면 로드맵을 갖고 정교하게 추진해야 하지만 그런 노력들조차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