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살빼는 주사 PPC' 불법행위에 '메스'댄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살빼는 주사'를 광고한 의료기관에 대해 대대적인 단속에 나섰다.

온라인에서 비만치료에 '포스파티딜콜린'(PPC: phosphatidylcholine) 성분 주사제 시술을 한다고 광고한 의료기관이 대상이다. 식약청이 PPC시술과 관련, 의료기관에 자제 권고를 내린 적은 있지만 단속 대상으로 삼은 것은 처음이다.


미국 팝가수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이 주사를 맞고 살을 뺐다는 입소문 때문에 일명 '브리트니주사'로 불리는 PPC주사는 연예인들 사이에서도 유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1일 식약청과 의료계에 따르면 식약청은 온라인 포털 모니터링을 통해 '비만치료에 PPC주사를 시술한다'고 광고한 의료기관 100여곳을 취합, 지자체를 통해 전국 보건소에 현장점검을 요청했다.

점검결과 혐의가 적발된 의료기관은 약사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돼 1년 이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는다.

식약청이 단속에 나선 이유는 PPC주사가 '비만치료'에 쓸 수 있도록 허가받은 약제가 아닌 데 있다. PPC주사는 1959년 독일에서 간경변으로 혼수상태에 빠진 환자를 위해 간성혼수 보조제로 처음 허가받은 뒤 우리나라를 포함, 일부 국가에서 사용되는 전문의약품이다. 비만치료에 효능을 인정, 허용한 나라는 전세계적으로 1곳도 없다.


하지만 살이 많은 부위에 주사하면 지방세포를 분해해 살을 빼준다고 알려지면서 개원가에서 다이어트시술로 활용되고 있다.

모 성형외과 관계자는 "주사제에 인체조직을 녹이는 성분이 포함돼 있어 한번만 맞아도 살이 빠진 모습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며 "시술하는 의료기관이 늘어나면서 앰플당 5만~10만원하던 시술비도 3만원대까지 내려가 소비자 입장에선 혹할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사용되는 앰플 개수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부위당 30만원 정도면 가능하다. 지방흡입수술의 경우 부위당 최소 100만원은 있어야 한다는 점에 비춰볼 때 매력적인 가격이다. 마취가 필요없다는 것도 장점이다.

하지만 비만치료 목적으로 임상시험을 거친 후 효능효과를 인정받지 않았기 때문에 부작용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과다 투여할 경우 지방조직뿐만 아니라 주위 혈관이나 근육까지 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오한진 관동의대 제일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지방세포뿐 아니라 주사제가 닿는 모든 조직을 녹이는 약"이라며 "지방세포 주변에 있는 혈관은 물론 근육조직도 녹아 출혈이 일어나거나 딱딱하게 응어리가 지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지난해 4월 PPC주사에 대해 영구흉터, 피부변형, 수술부위 응어리 등의 부작용 보고가 있었다며 소비자와 의료단체에 안전성 서한을 배포했다.

우리나라 식약청도 안전성 서한을 배포하고 의료기관에 시술 자제를 권고했다. PPC주사의 비만치료 효과가 검증된 것처럼 거짓 기재한 제조업체에 대해서는 행정처분을 내리고, 효과가 확인된 것처럼 광고한 판매업체는 검찰에 송치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술 남발이 그치지 않자 의료기관 단속이라는 마지막 카드를 꺼낸 셈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허가범위를 넘은 시술임에도 식약청이 '시술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시술을 한다고 광고하는 행위'를 단속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의료법에선 의사의 처방재량권을 인정하기 위해 특정 약제를 허가범위 이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약이 당국의 승인없이 처방된 것을 일명 '오프라벨'(off-label)이라고 부른다. 선의를 위해 만든 예외조항이 오히려 역효과를 내며 정부 규제가 겉돌고 있는 상황이다.

식약청 관계자는 "의료법에서 예외를 인정하고 있어 의사가 판단에 따라 특정 약을 허가받지 않은 용도로 사용하는 것은 막을 수 없지만 남용되면서 현장에서 부작용 등 여러가지 문제가 나타나는 것이 사실"이라며 "이번 점검을 통해 일부 의료기관이 PPC주사가 비만치료에 효과가 있는 것처럼 소비자들을 현혹시키는 행위는 일어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미국 FDA는 PPC주사를 살빼는 데 '오프라벨'로 쓰는 것조차 금지하고 있다. 식약청에 따르면 2008년 기준 PPC주사제는 41억7500만원 상당의 27만앰플 이상이 생산됐을 정도로 많이 소비됐다.

한편 여성들이 간편하게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 자주 이용하는 주사형 다이어트 시술은 PPC 외에도 카복시, HPL 등이 있다.

카복시는 지방층에 액화된 이산화탄소를 주입해 지방세포를 분해하는 시술이며 HPL 지방융해술은 지방을 분해하는 특수용액을 피하지방층에 주사한 후 레이저를 쪼여 지방분해를 가속화하는 방법이다. 지방을 분해하는 약물을 혼합해 피하지방에 주사하는 메조테라피도 활용된다.

미국 FDA가 오프라벨 금지조치를 내린 PPC 주사 외에 나머지 시술은 아직 이같은 조치를 내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