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in스포츠]약물에 녹아내린 돈과 명예

▲배리 본즈, 1993년 샌프란시스코 이적 첫 해

그는 전설이었다. 1986년 메이저리그에 데뷔, 2007년 방망이를 내려놓을 때까지 홈런 762개를 때렸다. 그 때까지 전설로 통하던 베이브 루스나 행크 아론을 제친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통산 안타 2935개, 도루 514개, 올스타 14차례, 골든글러브 8차례…. 셀 수 없는 트로피와 함께 그가 쌓은 금자탑은 아무도 깰 수 없을 만큼 견고해보였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배리 본즈(47)는 지난 14일 굳은 표정으로 샌프란시스코 법정에 출두했다. 그의 혐의는 크게 두 가지. 2003년 시작된 운동선수 약물 남용 재판과 관련, 애매한 증언으로 사법 활동을 방해한 혐의와 자신이 복용한 약물이 스테로이드인지 몰랐다고 말한 것이 위증이라는 혐의다.

재판은 어떻게 됐을까. 12명의 배심원단은 본즈의 사법방해 혐의는 유죄로 인정했다. 하지만 위증 혐의에 대해선 끝내 결론을 못 내려 배심원 불일치(mistrial)로 남기고 말았다.

일단 정의의 여신은 본즈 쪽으로 약간 기울었다. 변호인 측은 사법방해 혐의와 관련 항소를 예고했다. 위증의 경우 다음달 선고까지 결정적 변수가 나오지 않으면 영구 미제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약물로 범벅된 명예= 미국이 이번 평결로 시끌시끌하다. 본즈는 모든 혐의가 무죄로 판명 나도 명예를 회복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사상 최다 홈런기록으로 명예의 전당에 올랐지만 약물 덕에 장타를 때렸으니 인정할 수 없다는 비난이 높다.

▲법정에서 나오는 배리 본즈

본즈의 금자탑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2003년. 베이 에이리어 연구소(BALCO)가 스타 선수들에게 금지약물을 공급했다는 이른바 'BALCO 스캔들'이 터졌다. 본즈는 당시 연방 대배심에서 "스테로이드인지 알고 복용한 적이 없다"고 증언했고 2005년 사건은 무마되는 듯했다.

그러나 본즈는 이 때 위증을 했다는 혐의로 2007년 기소된다. 재판은 2009년 3월부터 2년을 끌었다. 검찰은 지난 8일 최종변론 후 본즈가 홈런 기록을 지키려고 법정에서 거짓말을 했다며 유죄를 확신했다. 하지만 이날 배심원단의 결론은 유무죄를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여기까지 보면 본즈 약물파동은 뻔한 스토리다. 그는 스테로이드를 남용해 홈런왕이 되고도 뻔뻔하게 법망을 피해간 인물로 비친다. 그가 대학을 범죄학 전공으로 졸업했다는 사실을 겹쳐보면 이런 이미지는 더 뚜렷해진다. 게다가 뇌물이나 재산 탕진 등 쇼킹한 뒷얘기도 없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메이저리그의 감춰진 이면을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결코 단순한 플롯이 아니다. 본즈를 옹호하는 쪽은 스테로이드 사용이 본즈 개인, 나아가 선수들만의 책임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메이저리그 구단주들이 돈벌이 욕심에 약물 사용을 방조했다는 것이다.

◇본즈, 메이저리그 탐욕의 희생양?= 90년대 후반 메이저리그의 인기는 예전만 못했다. 이 때 본즈를 비롯한 홈런 제조기들이 스타로 등장했다. 연일 이어지는 홈런 경쟁과 이를 보려고 밀려든 구름관중으로 메이저리그는 다시 불타올랐다.

구단주들은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더구나 2000년대 초반엔 지금처럼 약물규제가 엄격하지 않았다. 본즈가 메이저리그 한 시즌 최다홈런 73개를 달성한 것이 2001년이다.

구단주들을 비난하는 음모론은 더 있다. 홈런 수를 늘리려고 공인구보다 탄성이 좋은 이른바 '주스볼' 사용을 묵인했다는 주장이다. 이런 공을 때리면 평범한 타구도 담장을 훌쩍 넘길 수 있다.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크게 중계권, 입장료, 상품판매로 수익을 낸다. 본즈의 고향팀이자 소속구단 샌프란시스코는 2009년 매출 2억달러와 수익 2350만달러를 기록, 포브스 산정 메이저리그 매출 순위 8위에 오른 부자 구단이다.

구단주라면 홈런 한 방에 입장료 얼마, 관람객 한 명 당 쓰는 돈이 얼마라고 계산기를 두드리는 게 당연지사다. 진실이 무엇이든 스테로이드와 주스볼의 위력은 구단주든 선수에게든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었음이 분명하다.

수백 수천 리터 땀의 결정체인 본즈의 전설은 불과 몇 방울의 주사약 때문에 서서히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아울러 꿈의 무대 메이저리그에 추악한 이면이 있다는 의혹도 설득력을 얻었다. 돈으로 따질 수 없는 막대한 피해다.

새너제이 크로니클은 이번 판결 직후 "본즈든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든, 팬들이든 누구도 웃을 수 없는 일"이라며 "심지어 검찰도 본즈의 죄를 캐내려고 엄청난 혈세를 썼으니 결코 웃을 수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 배리 본즈는…△1964년 캘리포니아 생 △1982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드래프트 협상 실패, 애리조나 주립대 진학 △1986년 졸업(범죄학 전공) △1985년 피츠버그 파이러츠 입단 △1993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이적 △2007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