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P 뇌관·대주주 꼬리자르기'... 시장 안정 열쇠

'뇌관은 그대로 둔 대책'

정부가 건설 경기 연착륙을 위해 은행이 보유한 PF(프로젝트 파이낸싱)부실 채권을 매입하고 주택 경기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건설업 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번 정부 대책은 저축은행 PF대출과 ABCP(자산담보부 기업어음) 등 '숨어 있는 뇌관'을 간과했다. ABCP 등은 감독 사각지대에 있고 관리 감독이 이뤄지지 않아 건설사 유동성 위기의 단초를 만들 가능성이 높다. 특히 ABCP는 개인 투자자들이 보유하고 있어 이에 대한 지원책 마련이 더욱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선 무분별한 PF 대출로 리스크 관리를 소홀히 한 건설사 대주주와 경영진에 대한 책임은 묻지 않고 지원만 확대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건설업계에 구조조정도 이뤄지지 않고 건설사 대주주들이 자본 증자 등 자구 노력을 게을리하면서 정부의 지원만 요구하는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정부대책 은행 PF만 집중=정부는 이달 중 PF정상화를 위한 사모투자펀드를 설립해 은행이 보유한 부실PF채권을 인수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1조원 가량의 재원을 각 은행이 출자해 시장가의 50~60%에 부실PF를 인수하는 방안이다. 약 1조5000억~1조6000억원 규모의 은행 부실 PF를 떠안게 될 전망이다.


정작 건설사 유동성 위기의 단초를 제공했던 저축은행 부실 PF는 이번 인수 대상에서 제외됐다. 또 개인 투자자들이 보유한 ABCP도 지원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ABCP는 숨어있는 뇌관=금융기관의 리스크 관리 강화에 따라 건설사에 대한 PF 대출 잔액은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금융권의 PF대출은 2009년 6월말 84조원에서 지난해말 66조5000억원까지 줄었다. 반면 이 기간 동안 ABCP 규모는 13조6000억원에서 21조8000억원으로 늘었다. 자산유동화증권(ABS)를 포함할 경우 25조6000억원 규모다. PF대출을 조이자 풍선효과로 ABCP가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ABCP는 만기가 3~6개월로 단기로 운영되기 때문에 특정 시기에 만기가 몰린다. 올 2분기에만 10조원 가량의 ABCP 만기가 집중돼 있다. 지난달 ABCP 만기도래분이 2조3173억원이었고 5월 4조7857억원, 6월 4조192억원이 집중돼 있다. ABCP를 롤오버(만기연장)하게 되면 다시7~9월에 10조원이 넘는 ABCP가 쌓이게 된다.

김기명 한국투자증권 크레딧애널리스트는 "ABCP는 수요 기반을 통제하기 힘들어 금융권을 동원한 해결책 마련이 쉽지 않다"며 "개인들이 ABCP를 던지기 시작하면 이를 받아줄 수요 기반이 없어 고스란히 건설사 유동성 리스크로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건설사에 대한 최선의 지원방법은 배드뱅크가 PF대출과 ABCP를 함께 매입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주주 꼬리자르기' 대책 없나= 건설업계 유동성 위기의 근본적인 해법은 건설업계가 재무 건전성을 확보하는 데 있다.

정부는 올 들어 4번째 건설업 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건설업계가 진행한 구조조정 노력을 찾기 힘들다. 오히려 대주주가 꼬리 자르기 식으로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반복해 왔다.

LIG건설의 경우 대주주로 손실이 전가되는 것을 막기 위해 급작스레 법정관리를 신청, 기업어음(CP) 투자자들과 금융계의 원성을 사고 있다. 삼부토건도 헌인마을 개발 사업에 추가 담보를 제공하지 않기 위해 채권단 동의 없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금융계 관계자는 "건설업계가 어려움을 겪은 지 수년이 지났지만 건설업계의 구조조정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며 "대주주나 경영진이 책임을 회피하는 관행이 반복되는 한 정부의 지원책은 무의미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최근 STX건설이나 극동건설의 사례처럼 대주주가 증자에 참여하는 등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는 게 우선이다"며 "무조건적인 지원에 앞서 건설업계 자구 노력과 대주주에 책임을 부가하는 장치 마련도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