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당국의 新환율전략, 적극 개입도 불사

외환당국이 달라졌다. 외환시장에 강도 높은 개입을 자제하며 '스무딩 오퍼레이션(미세조정)'에만 나서던 당국이 최근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면서 환율전략에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한 것.

당국의 이 같은 환율 전략 변화는 세계적인 달러 약세 현상에 원화 강세 기대감까지 더해져 원/달러 환율 하락 속도가 지나치게 가팔라지는 쏠림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달러화는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급격히 증가한 달러 유동성과 미국 경제의 상대적 약세 영향으로 세계 통화에 대해 약세를 지속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경상수지 흑자 확대와 경제호조에 힘입어 원화 강세 요인이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적극적인 고환율론자로 꼽히는 최종구 기획재정부 국제업무관리관(차관보)의 복귀도 외환당국의 색깔에 변화를 주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최 차관보가 지난달 28일 기자실을 찾아 "최근 환율 하락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며 외환시장에 대해 강력한 구두개입에 나선 것은 외환당국의 전략 변화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물론 초반엔 그의 개입 발언 이후에도 원/달러 환율은 하락세(원화 강세)를 지속, 한때 1064.9원(5월2일)까지 하락하는 등 개입 효과가 무색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하지만 이는 잠시뿐 이내 시장은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최근에는 정부 의도대로 1070원~1080원대에서 환율은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다. 결과적으로 외환당국의 개입이 급격한 환율 하락을 막고 환율을 다시 안정적 영역으로 올려놓는데 성공한 것이다.

최 차관보는 구두 개입에 나설 당시 국내 기업들이 원화 조달 용도로 발행하고 있는 외화표시채권인 '김치본드'가 원화 강세를 유발하는 주범이라며 강도 높은 규제 의지를 밝혔다. 외은지점들이 '김치본드' 매입 자금을 위해 달러를 해외에서 공수해오고 이를 원화로 환전하는 과정에서 원화 강세라는 급격한 쏠림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재정부는 이후 국내 은행과 외은 지점을 대상으로 강도 높은 외환공동검사를 시작했고, 은행의 김치본드 매입도 점검했다. 지난 3일에는 기업의 원화조달용도 김치본드 발행을 원천봉쇄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선물환 포지션, 은행세(거시건전성부담금) 부과 등 잇단 자본유출입 규제에 이은 적극적 개입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처럼 정부의 강한 개입과 환율안정 의지가 확인되면서 은행들이 김치본드 매입을 꺼리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김치본드 발행 계획을 갖고 있던 CJ제일제당 등 기업들도 예상외로 강경한 정부 분위기에 발행 계획을 포기했다.

정부의 으름장은 김치본드 발행을 위축시켜 원/달러 환율이 더 내려가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특히 무엇보다 시장에 만연한 원화 강세 기대감을 잡는데도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했다.

외환시장규모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 상황에서 정부의 구두 개입이나 물량 개입 효과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부가 개입을 통해 효율적으로 시장 쏠림 현상을 개선한 것을 두고 시장에서도 긍정적 평가가 나온다.

유승민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달러화는 약세 요인이 많아 추세적 강세로 돌아서기는 힘든 상황"이라며 "다만 최근 과도한 쏠림 현상이 개선되면서 정상화된 점은 긍정적"이라고 진단했다.

외환당국 고위관계자는 "정부의 시장 개입은 환율 방향을 완전히 바꾸기보다 급격한 하락을 막겠다는 의중이 작용한 것"이라며 "환율 안정이란 의도한 목적을 달성하는데 상당한 성과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환율전략 변화와 함께 최근 시장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균형수준에 근접했기 때문에 정부의 자본유출입 통제가 더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정부의 새로운 환율전략을 지지하는 입장이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경상수지가 경제에 가장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1~2% 수준의 흑자 유지를 위해서는 원화가 빠르게 고평가로 반전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현재 시행중인 은행의 선물환 포지션 규제 등 자본유출입 제한 조치를 점진적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