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 10배 커진다… 전세계 금융사 '印尼대전'

인도네시아가 들썩이고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에도 매년 6%대의 성장을 기록하는 저력을 보여주자 세계인들이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오는 2015년까지 평균 7%의 경제성장률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면서 인도네시아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핫한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 풍부한 천연 및 인적 자원과 정치적 안정에 폭풍 성장

↑자카르트에서 차를 타고 1시간 30분 가량을 외곽으로 나가면 국내 기업들의 공장들이 자리잡고 있다. 사진은 국내 의류업체인 신성통상 공장의 모습. 이 공장은 나이키 가방의 55%를 생산하며, 약 9000명의 현지인들이 근무하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해 중국에 있는 모든 공장들을 철수하고 인도네시아에서의 생산 규모를 더 늘렸다. 인도네시아의 인건비가 중국의 1/2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는 국내 전기·전자업체, 섬유·봉제, 신발 등의 회사들이 주로 진출해 있다. ⓒ배규민 기자

수도 자카르타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초고층의 빌딩들과 대형 쇼핑몰들이다.

수많은 오토바이들이 거리를 활보하지 않았다면 이머징 국가라는 것을 잊어버릴 정도로 현대적인 건물들이 즐비해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자카르타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2억4000만명의 인구와 풍부한 천연자원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시장이다. 김영재 수출입은행 인도네시아 법인장은 "매년 400만명의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면서 "2015년이면 인구가 4억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여기에 지난 2009년 최초 직선 태통령인 유도요노 정부 2기가 순조롭게 출범하면서 정치적으로도 안정을 찾았다.


특히 초기단계에 머물러 있는 금융 산업은 앞으로 5년 동안 약 10배에 가까운 성장을 달성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유럽, 일본, 중국 등 세계 주요 나라들이 인도네시아 금융시장으로 몰려드는 이유다.

최근 들어 국내 대기업들의 진출이 더욱 활발해지면서 금융수요도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포스코는 지난해 10월 인도네시아 국영철강회사인 크라카타우스틸과 합작사를 설립하고, 칠레곤시에 27억달러를 투자해 연산 600만톤 규모의 일괄제철소를 짓는다. 한국타이어는 베카시에 오는 2014년까지 1단계로 3억5000만달러를 투자해 연산 600만개 규모의 타이어 공장을 지을 예정이다.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은 올 2월 유도요노 대통령을 방문해 현지 투자 확대 방안에 대해 직접 논의하기도 했다. 롯데그룹은 연내 인도네시아에 처음으로 롯데백화점을 오픈할 예정이다. 또 국내 대기업들은 인도네시아의 성장 가능성을 고려해 동남아 본부를 이곳으로 속속 옮기고 있다. 삼성물산은 싱가포르에 있던 동남아총괄 본부를 최근 인도네시아로 이전했다.

◇ 현지은행 인수, 세계 각국서 러브콜…몸 값 하루새 0.5배 뛰기도

↑인도네시아의 한 대형 쇼핑몰 1층에 수입차가 전시돼 있다. 최근 몇 년동안 경제가 급속하게 성장하면서 수입차와 명품관이 입점해 있는 대형 쇼핑몰들이 늘어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화교들이 경제의 약 70%를 지배하고 있다. ⓒ배규민 기자

문제는 인도네시아가 자국 금융시장 보호를 이유로 외국 금융회사를 배척하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법적으로 현지법인 및 지점 설립은 가능하지만, 사실상 라이선스 받기가 불가능하다는 게 현지에 있는 국내 금융회사 관계자들의 공통된 얘기다.

따라서 인도네시아 시장을 진출하려면 현지은행을 인수하는 길밖에 없다. 그렇지만 이도 녹록치는 않다. 현지에 총 120개의 은행이 있지만 이중 규모나 자산건전성 등을 고려할 때 인수합병(M&A)을 할 만한 물건은 10개 안팎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일본, 중국, 싱가포르, 유럽 등 각 나라에서 현지은행 인수에 공을 들이면서 이들 은행들의 몸값은 오를 대로 올랐다. 6년째 인도네시아에서 일하고 있는 삼성화재 이창수 인도네시아 법인장은 "지난 2008년까지만 해도 장부가액의 1.2배 정도면 인수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4배는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일례로 한국계은행이 현지은행을 장부가액의 3배를 제시하고 인수계약을 하려고 하면 다음날 일본계은행이 3.5배를 제시하는 등 수요가 공급량을 월등이 앞서고 있는 것이다.

현재 신한은행은 1~2개의 현지은행을 놓고 가격 등을 조율 중에 있다. 기업은행과 산업은행 역시 현지은행 인수를 위해 사전수요조사(태핑)를 진행하고 있다. 신한은행, 기업은행, 산업은행의 실무자들이 인도네시아에 계속해서 머물러 있는 이유다.

보험사의 경우 삼성생명, 대한생명, 동부화재가 적극적으로 M&A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대한생명의 경우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최근 인도네시아를 방문해 인도네시아 관련 비즈니스를 키울 것을 직접 주문하는 등 그룹차원에서 힘을 실어주고 있다.

작년 무디스는 인도네시아의 신용등급을 'B+'에서 'B++' 상향 조정했다. 연내 한 단계 더 상승될 것이라는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현지 금융회사의 몸값은 계속해서 치솟고 있다.

◇ 일찌감치 진출한 외환 우리 하나 수출입은행 약진

↑우리은행 인도네시아 현지법인의 모습. 한국직원 9명, 현지직원 87명이 근무하고 있으며 국내 기업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한다. ⓒ배규민 기자

이미 진출한 국내 은행들은 현지에서 약진하고 있다. 우리은행, 외환은행, 수출입은행은 최근 국내 기업들의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실적도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자카르타에만 5만명의 한국 교포들이 살고 있다.

인도네시아에 가장 먼저 진출한 외환은행은 가장 넓은 고객 기반을 확보하고 있다. 특히 연체대출금 비율이 0%로 자산건전성이 탁월하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한국계은행 최초로 현지중앙은행의 경영평가에서 최고등급인 1등급을 받기도 했다.

우리은행은 올해 들어 여신규모가 지난해 말 대비 50% 성장을 이뤘다. 6월말기준 2억800만달러를 넘겨 올해 3억달러를 거뜬히 넘길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 1992년 종합금융회사로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수출입은행은 국내 중소기업들을 대상으로 저리 대출을 해주면서 국내 기업들의 지원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지난 2007년 현지은행인 빈탕 마눙갈 은행을 인수해 국내 은행 중에서 유일하게 현지 영업을 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인도네시아 최대 민간 은행인 BCA(Bank Central Asia)와 포괄적 업무제휴를 맺어 BCA의 자동화기기(ATM)망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등 현지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 현지화 성공, 문화·언어·기업에 대한 정보 획득이 관건

인도네시아의 은행산업은 대형은행 20개, 중형은행 20개, 나머지 80개는 우리나라 저축은행 규모의 소형은행들로 이뤄져 있다. 국내 은행들은 소형 은행들 중에서도 1위~10위안에 들만큼 양적·질적 성장을 이루고 있다. 그렇지만 현지인 영업에 있어 글로벌 은행들과 싸우기에는 금리 경쟁력은 물론 브랜드 인지도면에서도 열세에 있다.

심지어 국내 기업들을 놓고도 글로벌 금융회사들과 각축을 벌이기도 한다. 스탠다드차타드그룹은 인도네시아에 한국인 1명을 파격해 국내 은행보다 약 1% 낮은 금리를 내세우면서 국내 기업들을 공략하고 있다.

최상학 우리은행 인도네시아 법인장은 "현지화를 위해서는 인적자원과 네트워크의 구축 아울러 규모도 키워야 한다"면서 "한 번에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인도네시아의 기업들이 회계 등 재무자료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현지 기업들에 대한 정보 공유 프로세스를 갖춰야 한다. 현재는 현지 중소기업들이 다른 금융회사에서 대출을 받은 후 부도를 내고 국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도 관련 내용을 정확하게 알기가 어렵다.

우리은행은 이에 우선적으로 인도네시아에 진출하는 국내기업에 주력하기로 했다. 현재 3개의 채널을 교포들이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9개까지 늘릴 계획이다. 특히 인도네시아 진출을 본격화한 포스코의 협력업체들을 겨냥해 영업을 강화할 방침이다. 포스코 공장이 들어서는 곳에 ATM시스템을 갖추고 직원들을 대상으로 계좌 신설, 대출, 송금, 신용카드 서비스 등을 실시할 예정이다.

인도네시아의 문화와 정서에 대한 철저한 이해도 현지화를 위한 지름길로 꼽힌다. 최창식 하나은행 인도네시아 법인장은 "직원들에게 잘못을 지적하면 상처를 받고 심지어는 회사를 그만두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또 일의 처리 속도가 빠르지 않고 몇 번을 반복해서 알려줘야 업무 하나를 겨우 마칠 수 있어 직원들을 잘 관리하는 것이 성공적인 현지화를 위한 지름길이라고 전했다. 특히 그는 "매주 월요일 현지 임원들과 회의를 한다"면서 "언어적인 문제가 기본적으로 해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용우 외환은행 인도네시아 법인장 역시 "현지인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려면 영어와 현지어 모두를 잘하는 사람이 포진해 있어야 한다"면서 "3년에 한 번씩 직원들을 교체하기 보다는 장기적으로 근무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