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 탈퇴는 불길로 뛰어드는 꼴"

"프라이팬이 뜨겁다고 불 속으로 뛰어들 수는 없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가 그리스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통화동맹)에서 탈퇴하는 것이 낫다고 주장한데 대해 마틴 울프 파이낸셜 타임스(FT) 칼럼니스트가 이렇게 비판했다.

프라이팬은 유로존이라는 통화동맹을 의미한다. 경제위기로 견디기 힘들다고 유로존을 떠난다 해도 기다리는 것은 더 심각한 불길뿐이라는 지적이다.

◆그리스, 디폴트는 불가피 하지만 유로존 탈퇴는..
울프(사진)는 20일(현지시간) '유로존 해체가 매우 어려운 이유'란 제목의 칼럼에서 그리스에 평가 절하가 필요하다는 루비니의 의견에 동의하지만 이를 위해 그리스가 유로화를 버리고 자국 통화 드라크마로 복귀하기는 불가능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루비니는 전날 FT 기고를 통해 그리스는 디폴트돼야 하고 동시에 성장세를 회복하려면 통화 가치 절하가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서는 유로존에서 탈퇴해 유로화를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울프는 우선 그리스가 대규모 부채 탕감을 피할 수 없다는 점에 대해선 지금 거의 의심하는 사람이 없다며 루비니 의견에 동의했다. 즉, 그리스의 디폴트는 가부의 문제가 아니라 시기의 문제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갈리고 있다고 전했다. 씨티그룹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윌렘 부이터의 경우 그리스가 유로화를 버리고 드라크마를 선택하면 통화 가치가 대폭 절하돼 물가가 폭등하면서 통화 가치 절하로 원하던 효과를 얻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루비니는 그리스 경제가 회복하려면 평가 절하가 필수인데 이는 디플레이션보다 통화 가치 하락으로 달성하는 것이 낫다는 입장이다. 울프는 여기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스가 유로존을 떠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하려면 법적으로 유럽연합(EU)도 떠나야 하며 이는 유럽 단일시장에서 배제된다는 의미다.

◆그리스, 유로존 떠나면 글로벌 예금 인출 사태
울프는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논의가 시작되면 그리스 채무에 대한 상환 요구가 폭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리스 은행에서는 예금 인출 사태가 벌어져 그리스 정부는 은행 문을 닫지 않더라도 예금 인출을 제한하는 조치를 발동해야 하고 자본 통제도 실시해야 한다.

아울러 그리스는 국내에 지고 있는 빚에 대해서는 표기 방식을 유로화에서 드라크마로 바꾸면서 재평가할 수 있지만 해외 부채에 대해서는 유로화로 그대로 둘 수밖에 없고 대외채무 급증을 감내해야 한다.

동시에 그리스 기업들은 유동성 경색으로 상당수가 파산을 피할 수 없게 된다. UBS는 그리스가 유로존을 떠날 경우 첫 해에만 국내총생산(GDP)의 40~50%에 달하는 경제적 비용이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위기 확산도 불가피하다. 물론 위기가 다른 국가로 확산되지 않도록 방어벽을 쌓으려는 시도가 이뤄지겠지만 울프는 이러한 시도 자체가 엄청난 시험을 당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단 그리스 국채는 상당 부분 해외 기관이 보유하고 있다. 또 한 국가가 유로존에서 탈퇴하는 것만으로도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 재정이 취약한 다른 유로존 국가들마저 치명적인 외환 리스크에 노출되게 된다.

유로존 은행에서도 예금 인출 사태가 일어나 유럽중앙은행(ECB)은 무제한의 유동성 공급을 약속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은행들이 국제적으로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점도 위험 요인이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미국 은행들이 보유한 그리스와 아일랜드, 이탈리아, 포르투갈, 스페인 관련 채권만 4780억유로에 달한다.

◆독일, 유로존 떠나면 GDP 4분의 1 급감
경제 규모가 작은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만으로도 이런 파괴적인 결과가 나타나는데 독일 같은 핵심 국가가 유로존을 떠난다면 어떻게 될까.

울프는 독일이 자국에 유리하게 EU 조약을 개정한다 해도 역시 법적인 문제가 제기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규모 자본 이탈도 마찬가지로 발생하겠지만 이 때는 돈이 유로존을 빠져나가 독일로 집중될 것으로 예상했다. 독일의 유로존 탈퇴는 더 나아가 유로존 해체로 이어질 것이다.

독일 역시 치명적인 타격이 불가피하다. 올프는 독일 은행들은 해외 자산의 가치가 하락해 손실을 입고 독일 수출업체들은 독일 자국 통화의 급격한 강세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밝혔다.

UBS의 분석에 따르면 독일 같은 경제력이 강한 국가가 유로존을 떠난다 해도 첫 해에는 GDP의 20~25% 급감을 피할 수 없다. 게다가 핵심 국가의 유로존 이탈은 EU라는 단일 시장을 위험에 빠뜨릴 뿐만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모색돼온 유럽의 전반적인 협력 구조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 이는 독일과 프랑스가 전략 부재의 상황에 빠지게 된다는 의미다.

◆부채 탕감+긴밀한 재정 협력만이 해법
울프는 지금 필요한 것은 ECB의 즉각적인 통화완화를 포함한 근본적이고 공격적인 경기 확장 정책과 더불어 채권시장이 경색 증세를 보이고 있는 취약 국가에 대한 지원과 일부 국가에 대한 부채 탕감이라고 지적했다. 또 중기적으로는 유로존이 더 높은 수준의 재정 연합체를 구성하고 재정지출과 관련한 규율을 마련하는 한편 유로존 은행들의 자본을 확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독일의 여론이 유럽중앙은행(ECB)의 유럽 국채 매입조차 반대하는 방향으로 돌아서고 마크 루테 네덜란드 총리는 재정건전성 의무를 지키지 않았을 때 회원국을 유로존에서 탈퇴시키는 패널티까지 언급하기도 했지만 유로존 해체는 극히 어렵다는게 울프의 진단이다.

결국 그리스의 부채는 탕감해주고 유로존의 더 긴밀한 재정 협력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