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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후보검증] 나경원·박원순, 어떻게 살아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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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10.06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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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법대 선후배, 박 제적으로 길 달라져

(서울=뉴스1 김정욱 고두리 기자)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맞붙게 된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와 박원순 야권단일후보는 서울대 법대 선후배 사이라고 할 수도 있다. 나 후보는 82학번으로 입학해 박사과정까지 수료했고 박 후보는 1975년에 서울대 법대에 들어간 뒤'긴급조치 위반'으로 채 3개월을 다니지 못하고 제적당했으나 어쨌든 '서울 법대생'이었다. 두 후보의 살아온 길이 아주 뚜렷하게 차이가 나게 된 데에는 아마도 박 후보가 겪은 '제적'이 큰 몫을 했을 것이다. 나 후보는 출생에서부터 안정적이고 평탄한 길을 걸어온 반면'제적생' 박 후보는 일찌감치 사회참여의 길로 들어서 격동의 세월에 부딪히며 살아왔다. 나 후보와 박 후보의 '라이프 스토리'를 들여다보았다.


◇원조 ‘엄친딸’의 서울시장 도전=나경원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는 자서전에서 자신의 인생을 "졸음이 오는 잔잔한 영화"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그의 삶은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기 전까지는 큰 굴곡 없이 안정적이고 평탄했다.

1963년 서울 노량진에서 태어난 나 후보는 당시 공군 조종사이자 지금은 홍신학원 이사장인 아버지 나채성씨와 시인 어머니 정휴자씨 슬하에서네 자매 중 장녀로 성장했다.

소녀 나경원은 '엄친딸'로 불릴만하다. 서울 숭의여중과 서울여고 시절 1등을 놓쳐 본 적이 없는 모범생의 전형이었다. 1982년 그는 서울대 법대에 진학한다. 서울대 법대 82학번 가운데에는 정치권에 원희룡 조해진 한나라당 의원이 있고 학계의 서울대 조국 김난도 교수 등이 '유명인사'로 꼽힌다.

82학번이 대학에 다닐 때는 학생운동이 치열했던 시기다. 하지만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저는 학생운동을 하지 않았다"며 "다른 부분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대학시절 그는 동갑내기인 지금의 남편 김재호 판사를 만난다. 두 사람은 당시 학교 내의 '선남선녀' 로 동료들의 시선을 끌며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1986년 졸업 이후 고시공부를 시작해 1992년 34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82학번 동기였던 원희룡 한나라당 최고위원과 같은 해 합격했고, 남편 김 판사보다는 3년 늦었다. 김 판사와의 만남은 나 후보가 고시공부를 할 때도 이어졌고, 나 후보가 사법시험에 합격하기 3년전인1899년에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1993년 딸 김유나 양과 1997년 아들 김현조 군이 태어난다.

1995년부터 부산, 인천지법, 서울행정법원 등에서 안정적인 판사생활을 하면서 정통 법조인의 길을 걷는가 싶더니, 2002년 9월 나경원은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후보의 여성특보로 정치권에 '돌연히' 뛰어든다. 나 후보의 판사 동료들은 그를 "정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고 기억한다.

나 후보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정치권에 입문한 배경에 대해 "이영애 자유선진당 의원의 권유가 결정적이었다"며 "늘 '정치가 제대로 돼야 되는데...'라고 생각했기에 여성 판사의 멘토 같은 이 의원이 권해서 과감히 결정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치인으로서 그의 성장그래프를 그려보자면 그래프의 기울기가 수직상승을 이룬다. 그만큼 그는 여성정치인으로서 승승장구했다. 2004년 비례대표로 17대 국회에 입성, 18대엔 서울 중구에서 재선에 성공했고 원내부대표와 당 대변인을 거쳐 당 전당대회에서 경선으로 두 차례 최고위원까지 낚아챘다. 그리고 현재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한나라당 후보가 돼 있다.

그가 여론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강재섭 전 대표 시절부터 2007년 대선당시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중앙선대위에서까지 모두 3년 간 대변인을 맡으면서부터다. 빼어난 외모와 일을 똑부러지게 한다는 평가를 받으며 당시 그는 '똑나대(똑부러지는 나경원 대변인)'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나 후보의 큰 장점은 높은 대중적 인기다. 지난해 6월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는 오세훈 후보에게 패배했지만, 당시 원희룡 후보와의 단일화 여론조사에선 승리를 거뒀다. 지난해7·14 전당대회와 올해 7·4전당대회 당시최고위원에 당선될 때 쟁쟁한 3~4선 경쟁자들을 제치고 일반국민 대상 여론조사 결과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스타정치인'은 양날의 칼이다. 대중성은 높은 반면 참신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20여일 남았다. 시민후보로 새롭게 떠오른 박원순 야권단일후보에 맞서 어떤 차별성으로 유권자들에게 다가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나경원 프로필>
△ 출생 1963년 12월 6일 서울 노량진
△ 학력 및 경력
1982년 서울여자고등학교 졸업
1986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1989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과 졸업(석사)
1992년 제34회 사법시험에 합격
1997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제17, 18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최고위원
-전 한나라당 대변인
-전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간사
-한나라당 공천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
-국회 연구단체 장애아이 We Can 회장/ 한국장애인부모회 후원회 공동대표
-한국스페셜올림픽 회장/ 2013년 평창 동계 스페셜올림픽 세계대회 조직위원회 위원장


◇인권변호사, 시민운동가에서 서울시장 후보로=제1야당인 민주당의 장벽을 뛰어 넘고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야권 단일후보로 뽑힌 박원순 후보.

인권변호사 출신 이른바 '시민후보'인 그는 1956년 경상남도 창녕에서 태어났다. 박 후보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희망하는 것이 있으면 이를 이루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해왔다고 한다. 일례로 경복고 시험에서 낙방했던 그는 경기고를 목표로 재수할 당시 3개월 동안 양말도 안 벗고 공부에만 열중할 정도였다.

그의 학창시절은 평범하지도 순탄하지도 않았다. 재수해서 입학한 경기고시절에는 늑막염에 걸려 1년을 쉬기도 하는 등 남들보다 2년 늦게 대학에 진학했다.
1975년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지만 여기서 그에게는 전혀 다른 인생이 엄습해 온다. 입학한지 채 3개월도 안된 그해 5월 22일 이화여대 학생과의 미팅약속이 있었던 대학생 박원순은 약속시간을 앞두고 잠시 도서관에서 책을 읽던 중 창밖으로 '시위대'를 봤다. 유신체제에 항거해 할복한 고 김상진씨의 추모식을 거행하던 학생들이었다. 경찰의 강압적인 진압을 본 박 후보는 자신도 모르게 시위대로 발걸음을 옮겨 추모식에 참여했다. 단순한 추모식 참여였음에도 ‘긴급조치 9호’가 적용돼 신입생 박원순은 4개월 복역과 제적에 처해지게 된다.

제적당한 다음 해인 1976년 박 후보는 단국대 사학과에 입학하지만서울대 법대 입학 당시 가슴에 담았던 법조인의 꿈을 접지 못하고 사법고시 준비에 몰두했다. 1980년 사시 22회에 합격하고 대구지방검찰청 검사로 발령을 받았지만 1년만에 법복을 벗었다. 앞날이 보장되던 검사직을 그만 둔 이유는 사형집행 참관이 싫어서였다고 한다.

그가 인권변호사의 길로 들어선 것은 고(故) 조영래 변호사의 영향이 컸다. 고등학교 선배였던 조 변호사에 대해 박 후보는 “인권변호사의 전설”이라고 말한다. 박 후보와 조 변호사는 뜻이 같은 인권변호사들과 함께 ‘정법회’라는 모임을 결성했다. 이 정법회는 2년 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으로 확대 개편된다.

인권변호사 시절 박 후보는 권인숙 성고문 사건, 미국 문화원 사건, 한국민중사 사건, 말지(誌) 보도지침 사건, 서울대 우 조교 성희롱사건 등의 변론을 맡았다. 국민연금 노령수당 청구소송을 승소로 이끌었던 그는 ‘생활 최저선’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기도 했다

1990년 자신의 정신적 지주와도 같았던 조 변호사가 별세하자 박 후보는 미국과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1994년 귀국해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를 설립했다. 시민운동가로 변신한 박 후보는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를 연구하면서 서민과 약자들의 서러움 해결에 나섰다. 참여연대 시절 1인 시위라는 독특한 시위문화를 만들어냈고 낙선 운동, 소액주주 권리찾기,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 등을 주도했다.

참여연대 사무처장과 상임 집행위원장을 맡으며 활발한 활동을 벌이던 박 후보는 2002년 아름다운재단과 아름다운가게를 설립하고 2006년에는 희망제작소를 개소하면서 기부와 사회공헌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개인재산 축적에는 무관심했지만 기부와 기증에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제 그는 서울시장 보선의 야권통합후보로 선출돼 서울시청 입성을 노리는 '정치 행정가'로 변신해 시민사회의 정치적 진출이라는 실험을 진행시키고 있다.

<박원순 프로필>
△ 출생 : 1956년 3월 26일 경상남도 창녕
△ 학력
1974년 경기고등학교 졸업
1975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입학, 제적
1979년 단국대학교 사학과 졸업(학사)
1980년 제22회 사법시험 합격
― 대구지검 검사
―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
―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 참여연대 사무처장
―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방문교수
― 아름다운재단 총괄상임이사
― 아름다운가게 총괄상임이사
―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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