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속으로] 돌아온 장고

영화가 끝날 무렵이면 언제나 악당을 시원하게 물리치는 존 웨인 주연의 서부영화 인기가 시들해진 1960년대 중반. 이탈리아 세르조 리오네 감독은 서부영화보다 빠른 템포로 진행되면서 악당을 좀더 부각시켜 주인공을 곤경에 빠뜨린 뒤 결국 이들을 모조리 물리치는 카타르시스적 마카로니 웨스턴을 선보였다.

그 중엔 프랑코 네로가 주연한 '장고'와 '돌아온 장고'가 있다. 망토를 어깨에 걸치고 기관총을 든 채 황야에 홀연히 나타나는 주인공의 모습은 아직 우리들 기억에 생생하지만, 1970년대 중반 그런 영화는 사라졌다.


그런데, 요즘 사무실에서 담요를 망토처럼 어깨에 걸치고 일하는 직원들을 본다. 영락없는 돌아온 장고의 모습이다. 혹 있을지 모를 전력대란에 대비해 정부가 지난 12월 초부터 2월말까지 대형 건물에 대해 20도 이하로 (실제로는 18도 이하) 온도를 유지해달라는 협조적(?) 지시를 내린 결과다.

유리창 때문에 실제 온도는 18도 이하로 냉기가 느껴지고, 추위로 감기 몸살에 걸리거나 출근하기가 싫어졌다는 직원도 있다. 장갑을 끼고 키보드를 두드리는 직원의 사진도 사내 인트라넷에 돌고 있다. 대부분 직원이 출근 때 입고 온 코트를 입은 채 혹은 별도로 외투를 가져와 근무하고 있어 외국인 방문객들을 놀라게 한다. "선진국인줄 알았는데…"

외국인들에 따르면, 기업방문을 하면 건물전체가 서늘한데 임원을 만나면 그들 방은 피서지처럼 따뜻해 기분이 묘하더란다. 더욱이 기업들은 지난 해 사용한 전력량보다 10퍼센트 절감해야 하므로 증산계획인 기업으로선 난감하다며, 한국의 사업환경이 왜 이렇게 변했냐고 묻기도 한다. 외국인 관광객에게나 외국기업 투자유치에 이런 사정은 설명하기 어렵다.


산유국도 아닌데 석유소비는 9위인 우리가 세계 3대 산유국이면서 최대 소비국인 미국처럼 난방에 망설임없이 전기를 펑펑 쓸 수는 없고, 유럽처럼 에너지 절약의 생활화 필요성에 공감한다.

북해에서 석유가 펑펑 솟아나는 영국의 기름값이 우리보다 비싸다든지 파리의 호텔에선 히터가 25도까지 밖에 올라가지 않아 내의를 단단히 껴입지 않고 자면 감기 들기 쉽다는 것은 우리가 에너지 절약에 얼마나 둔감한 생활을 해왔는지 반성하게 해준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의 이번 조치는 국민의 에너지 절약에 대한 인식전환의 계기가 된 점에서 정책방향 면에서 성공으로 본다.

그러나, 매년 한두 차례 전력소모가 절정에 이르는 경우가 있고, 지난 해 9월 전력대란이 날뻔했다고 겨우 내내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에너지 절약책을 끌고 가는 것은 정부가 전력수급책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책임을 국민에게 떠넘기는 것밖에 안 된다는 말이 설득력있게 들린다.

절약한 전기는 미래의 사용을 위해 저축할 수 없고, 전력 예비율이 위험수준이 아니므로, 하루빨리 현실적인 에너지 절약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예컨대, 전국 어디든 25도가 넘게 전기를 사용하면 벌금을 부과하고, 산업체의 전기사용은 원칙적으로 원하는 대로 사용토록 하되, 매주 특정요일에는 온도를 20도 이하로 유지토록 에너지 비상시 대비연습을 하는 것이다.

다만, 일기예보로 보아 전력수요가 폭증할 것이 예상되는 경우에는 전기 비상사용령을 발동해 일정 온도 이하로 난방을 유지토록 하고, 그 이행여부를 전관공서를 동원해 점검하는 것이다.

경제발전과 단독세대의 증가, 생활패턴의 전기과다사용으로 변화, 전기 자동차 시대의 도래, 빈번한 기상이변 등 전기수요의 대폭 증가요인을 감안해 공급증대를 위한 발전소 증설을 추진하고, 전기수요가 적은 계절의 잉여전력 처리를 위한 수출 혹은 북한송출 등을 검토하며, 각 부문별 에너지절약책을 마련, 지속추진할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