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M '쌍끌이'에 구멍가게 '초토화'

전순자씨(58)는 어설픈 손놀림으로 호떡을 부치며 한탄했다. 호떡장사에 뛰어든 것은 지난해 9월. 이제 5개월된 '새내기' 호떡장수다.

"오죽하면 자릿세도 못 내서 가게 앞에서 호떡장사를 할까. 인근에 H마트가 들어온 뒤 가게 장사로는 남는 게 없어 호떡 팔아 연명해 보려 시작했어"


전씨는 20년 이상 서울 광진구 구의1동에서 구멍가게인 'M슈퍼'를 운영하며 자녀 셋을 모두 대학에 보냈다. 하지만 지금 가게 매출은 "거의 없는 형편"이라고 했다.

전씨는 그래도 다른 가게에 비해서는 낫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아야 할 지 모른다. 문을 닫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인근에서 폐업한 중소 가게는 지난 7년간 6곳에 이른다.

광진구 구의1동에는 7년전 기업형슈퍼마켓(SSM) H마트가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이후 '구멍가게'로 대표되는 중소형슈퍼는 서서히 사라졌다.


3년전에는 2층 규모의 또 다른 대형 SSM이 추가로 들어섰다. '동네 구멍가게 상권'은 결정타를 얻어 맞았다. 가격 경쟁력과 다양한 물품, 쾌적한 환경을 앞세운 SSM은 '의리와 정'을 앞세워 구멍가게를 찾던 단골손님들의 발걸음도 끊기게 만들었다.

남은 가게 주인들은 호떡장사와 막노동 등 부업을 통해 근근이 입에 밥풀을 칠하고 있다. 영세 신발가게 등으로 업종전환을 한 구멍가게 주인들도 있지만, 언제 다시 '매장임대'라는 문구를 써붙여야 할 지 모르는 상태이기 때문에 두렵기만 하다.

구효섭씨(53)는 2007년 9월 슈퍼가 있던 자리에 도배장판 가게를 열었다. 슈퍼 주인은 당시 서울시를 떠나 경기도쪽으로 이사를 갔다고 했다.

구씨는 "우리 가게 100m 내외에서만 동네 슈퍼 3곳이 사라졌다"며 "지금 있는 가게들도 자기 건물 아니면 집세 내기도 벅찬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중형규모 할인마트도 "죽겠다"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다. 역시 줄어드는 매출 때문이다. 납품단가 차이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기 때문에 경쟁 자체가 안 된다는 불만을 터뜨렸다.

구의1동에서 K할인마트를 운영하고 있는 권오문씨(49)는 "우리는 우유 200㎖를 650원에 보급받는 데 H마트는 판매가격이 680원"이라며 "영세상인들이 밀집된 골목까지 들어온 대기업들에 대한 실망이 크다"며 쓴 웃음을 지었다.

구의1동 상황은 'SSM의 증가와 동네 슈퍼의 감소'라는 공식을 일부나마 대변하고 있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동안 SSM의 숫자는 전국 292개에서 1090개로 4배 가까이 늘었다.

반면 구멍가게를 포함한 영세슈퍼는 2006년 10만3713개에서 2009년 9만1892개로 줄었다. 해마다 약 4000개씩 감소한 것을 고려하면 현재는 전국적으로 8만개를 약간 넘는 수준인 것으로 추산된다.

전문가들은 향후 SSM 규제와 관련해 대기업과 골목 상권이 '윈-윈'할 수 있는 방법 모색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권승구 동국대 식품산업관리학과 교수는 "시설이나 가격경쟁력 등 대규모자본에 비해 영세한 골목상권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라며 "영업권이 침해받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서로 고민하고 '상생발전'의 관점에서 풀어나가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