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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총선] 대전 최고령 유권자 허남안 할머니 "투표 꼭 하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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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4.11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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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뉴스1) 임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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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 다하는 투표를 나만 못하니 마음이 불편해. 나도 꼭 투표하고 싶은데, 허리는 아프고 눈도 어둡고…여기로 와서 찍어가라고 했더니 그건 안 된다네. 남들 다하는 걸 나는 못하니 자꾸 미안하네.”

선거 전날인 지난 10일 밤 9시께 대전 유성구 구암동. TV만 덩그러니 켜진 부엌 딸린 작은 방에서 허남안(113·사진) 할머니는 바닥에 앉자마자 구부정한 허리를 채 펴기도 전에 선거안내문과 자신의 신분증을 바닥에 꺼내 보이며 이같이 말했다.

4·11 총선 안내문과 함께 눈에 들어온 주민등록증에는 ‘00’으로 시작하는 주민번호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1900년생인 허 할머니는 올해로 113살을 맞은 대전지역 최고령 유권자 중 한 명.

허 할머니는 대화 도중 기자에게 한두 차례 ‘그런데, 주민센터에서 온 거냐’ ‘어느 후보 쪽에서 왔느냐’고 묻는 등 기억이 깜빡깜빡하는 모습이었지만, 질문에 또박또박하게 대답하며 인터뷰가 끝날 때는 아직 저녁을 못 먹었다는 말에 ‘배고파서 어쩌느냐’ ‘식은 밥이라도 먹고 가라’며 낯선 방문객을 살뜰히 챙겨주기까지 했다.

허 할머니는 11일이 선거일이라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고 일부 후보자 이름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투표장에 꼭 가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허리가 아주 굽은 탓에 평소에도 외출은 지팡이를 짚고 잠깐씩 집 밖을 서성이는 정도가 전부인 상태. 혼자서는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장애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중증 장애인처럼 선거 때 활동보조인이나 이동 차량을 지원받지도 못했다.

즉 허 할머니는 당당한 유권자이지만, 누군가 투표소까지 모시고 가지 않는 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허 할머니는 “허리가 아프니 힘을 못 쓰겠다. 걸음을 옮기는 게 어렵다. 아들딸들은 있지만, 하루하루 힘들게 입에 풀칠하니 얼굴 보기도 여의치않다”며 “집주인네는 젊은 사람들인데 말도 잘 못 걸겠다”고 말했다.

100살이 넘은 할머니가 한 골목에 살면 웬만해선 알 법도 할 텐데, 허리가 아파 외출이 잦지 않은 탓인지 허 할머니가 사는 골목의 몇 안 되는 집들조차 할머니의 존재를 모르고 있는 실정이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기적으로 집을 방문하는 가사도우미를 제외하면 선거 때 할머니를 모시고 일부러 투표소를 찾을 사람은 현실적으로 없어 보였다.

대전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장애인이나 다문화가정은 투표보조용구나 차량을 제공하지만, 단지 최고령이라는 이유만으로 활동보조인이나 차량을 지원할 순 없는 노릇”이라며 “개인적으로도 80대 어머니가 계시지만, 투표소까지 부축해달라고 해도 지원할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허 할머니는 눈이 침침하니 누가 기표소에 같이 들어가 투표를 도와주었으면 하시지만, 비밀투표이고 시각이나 중증 장애가 있는 게 아니면 기표소에서 보조를 받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허 할머니가 유권자 권리를 행사하고 싶어도 현실의 벽에 막혀 사실상 소중한 한 표가 사장될 수밖에 없는 현실인 셈.

때마침 TV에는 김능환 중앙선관위 위원장이 등장해 ‘한 분도 빠짐없이 투표해달라’는 내용의 4·11 총선 투표 독려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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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할머니는 “3~4년쯤 전에 동네 아줌마 도움으로 함께 투표하러 갔던 게 마지막 선거 기억”이라며 “솔직히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누구를 뽑아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투표는 꼭 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유를 묻자 허 할머니는 “나라가 편안하게 잘 살려고 하는 건데, 남들 다 (참여)하는데 나만 몸이 이래서 못 하니까 그렇지”라며 “한 표라도 얻으려고 그 사람들(후보들)이 그렇게 뛰는데 마음이 안됐다. 이 사람도 생각나고 저 사람도 생각나니 다 찍어주고 싶은 마음에 차라리 여기 와서 찍어가라고 했다”고 말했다.

허 할머니는 올해 처녀 투표를 하는 새내기 유권자에게 한마디 해달라고 하자 “젊은이들한테 내가 무슨 말을 하느냐”며 “남들 다 (투표하러) 가는데 내가 못 가니 국가에 폐만 끼치는 것 같고 죄송할 따름이다. 늙으면 여러모로 쓸모가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후보나 당선자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그 사람들이 (국회의원) 돼서 국가에 도움되려고 그렇게 잠도 못 자면서 표 달라고 호소하는 거 아니냐”며 “국가가 편안하게, 건강하게, 잘 살게 해줬으면 좋겠다. 서로 싸우지들 말고”라고 답했다.

허 할머니는 “나는 못 걸어 다니고, 남들 다 하는 일도 못하니 답답한데, 영세민들은 참 안 됐다. 먹고 살기 어렵다”며 “나 혼자 잘 살자는 게 아니라 (모두가) 편안하게 살다가 편안하게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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