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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성자' 30년만에 한국와 첫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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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창욱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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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5.13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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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아프리카 수단에서 구호활동..'학교 100개 짓기' 운동 84세 원선오 신부

서양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어머니를 보내셨다." 그런데 신은 어머니만 보내신 게 아니다. ‘아버지(Father)’도 함께 보내 힘들고 어려운 곳을 돌보도록 하셨다.
↑원선오 신부. 임성균 기자
↑원선오 신부. 임성균 기자

한 평생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내준 원선오(84. Vincenzo Donati) 신부가 바로 그런 분이다. 원 신부는1960년대 한국을 비롯해 아프리카의 케냐, 수단 등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만을 돌며 아이들을 보살폈다.

이 ‘살아있는 성자’가 한국을 떠나 아프리카에 자리 잡은 지 30년째가 되는 올해 노구를 끌고 지구 반대편에서 다시 한국을 찾았다. 이제는 잘 살게 된 한국에서 어렵고 힘든 수단 아이들에게 가져다 줄 희망을 찾기 위해서다.

#. 스승이자 친구

원 신부는 1928년 이탈리아 중부 해변도시 파노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집안이어서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다가 살레시오 수도원 신부였던 외삼촌의 인도를 받았다. 그는 15살에 첫 서원을 하고 몇 년간 사목 실습을 한 후, 50년 일본에 선교사로 파견됐다. 54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패전 직후 힘들고 고통 받던 일본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봤다.

일본의 상황이 어느 정도 안정된 1962년, 원 신부는 당시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던 한국으로 왔다. 이후 20여 년 세월을 광주 살레시오 중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냈다.

그는 매일 아침마다 등굣길 교문에서 1200여 명 전교생을 맞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변함이 없었다. 눈인사와 악수를 하고 따뜻한 포옹을 나눴다. 학생들의 이름을 외워 따뜻하게 불러주었다. 그는 스승이자 아이들의 친구로 살았다.

원 신부는 항상 나눴다. 밥을 굶는 아이들을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따로 불러 먹였다. 계란 꾸러미나 내의 같은 선물이 들어오면 판잣집을 찾아가 나눠 줬다. 자신이 가진 것은 없었다.

그의 방에 도둑이 들었다가, 가지고 갈 게 없어 너무 샅샅이 뒤지다 시간을 지체해 잡힐 정도였다. “가진 것이 많을 수록 마음과 행동을 제약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이렇게 청빈의 삶을 살던 원 신부는 1982년 당시 살레시오회 총장 신부였던 돈 비가노가 아프리카를 돕자고 한 호소를 듣게 됐다. 그의 나이 54세였다. 주위의 염려를 뒤로 하고 홀연히 아프리카 케냐로 떠났다.
↑원선오 신부. 사진 임성균 기자
↑원선오 신부. 사진 임성균 기자

#. 어려운 아이들의 아버지

1994년 비교적 평온한 케냐를 뒤로 하고 다시 수단으로 옮겼다. 수단은 영화 ‘울지마 톤즈’로 유명한 고 이태석 신부가 활동했던 곳이다. 1956년 독립했으나 이슬람 교도가 사는 북부와 카톨릭 교도가 많은 남부로 나뉘어 두 차례나 내전을 치렀다.

수단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다. 지난해 남수단이 분리됐으나 갈등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종교 갈등과 함께 국경 지역 중심으로 매장되어 있는 석유 때문이다.

원 신부는 현재 이슬람 국가인 북수단에서 주로 활동한다. 회교 원리주의 성향이 강한 국가여서 그의 안전이 걱정됐다. “종교에 관계없이 구호활동을 펼치고 있어 북수단 정부가 묵인을 해준다”고 했다.

그는 살레시오회가 세운 학교에서 아이들의 자립을 도와주고 있다. 아이들에게는 학교에서 주는 옥수수나 감자 한 그릇이 유일한 식사라고 한다. 도움이 필요한 힘든 아이들에게 원 신부는 '아버지' 역할을 하고 있었다.

"비록 줄 것이 없어도 아이들이 달라고 하면 ‘줄 것이 있구나’하고 느낍니다. 함께 나누는 과정에서 제 맘속에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있다는 걸 알게 되지요. 그걸 아이들도 느낍니다."

#. 식민지만 안 됐다면

원 신부가 가진 아프리카에 대한 생각은 이랬다. "아프리카는 비록 가난했지만 식민지가 되기 전까지는 적어도 먹을 걱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식민지가 된 후 모든 걸 빼앗겼고 굶주리고 있습니다. 먹지 못하는 자매인 아프리카를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같은 다른 자매들이 도와야 합니다."

특히 물자가 아니라 교육으로 도와야 한다고 했다. "수단은 석유를 비롯해 자원이 많아 공부만 할 수 있다면 충분히 발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교육만이 희망입니다." 그는 직접 설계도를 그려 학교 만들기에 나섰다. 그러나 돈을 모으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게 원 신부가 수단에서 활동하고 있을 때, 한국에선 광주 살레시오고 동문들이 그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제자들이 그를 초청했으나, 원 신부는 비행기 삯이면 수많은 아이들을 먹일 수 있다며 차라리 돈을 보내 달라고 했다. 나아가 학교 만들 기금을 모아주면 한국을 방문하겠다고 했다.

이에 살레시오고 동문들을 부족하나마 학교 하나를 지을만한 돈을 모았고, 원 신부는 드디어 지난 7일 한국에 왔다. 그는 오는 20일 살레시오고를 방문해 ‘홈커밍 데이’ 행사에 참석한다.

원 신부는 한국에서 보다 많은 기금이 모여 수단에 더 많은 학교를 지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학교 100개를 만드는 것이 목표지만, 그는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걱정했다. 올해 84세인 원 신부의 파트너로 함께 20여 년째 수단에서 활동 중인 고미노 자코모 수사조차도 이미 71세였다.

"과거 가난했던 한국이 이제 부자 나라가 됐습니다. 수단 같은 가난한 나라를 다시 도와야 합니다. 저에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원선오 신부는..>

1928년-이탈리아 파노에서 출생
1944년-살레시오 첫 서원
1950년-일본 선교사 파견
1954년-일본 도쿄에서 사제 서품
1962년-한국 선교사 파견
1982년-아프리카 케냐 선교사 파견
1994년-아프리카 수단 선교사 파견

2002년 5월 그는 수십 년 된 낡은 단벌 재킷을 입고 한국에 찾아왔다. 분리 독립해 난민이 많은 남수단을 위한 ‘작은 학교 100개 운동’을 알리기 위해서다. 가난한 나라에 물고기를 주기보다는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고자 한다. 교육만이 희망이라는 소신에 따른 것이다.

남수단에 희망을 전달하고 싶은 분은 한국천주교 살레시오회(02-828-3524)로 문의하면 된다. 도움주실 곳은 국민은행 계좌 090-01-0323-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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