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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아 로렌스'길따라 '인디아나 존스'의 신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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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와디럼(요르단)=김지산 기자
  • 사진제공=레이싱더플래닛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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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6.14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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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산 기자 250km 요르단사막 레이스

3200년전 모세와 '아라비아의 로렌스' 활동무대
모래폭풍은 사막의 거친 향연일 뿐… 순응이 미덕
신성과 인성이 공존하는 곳, 페트라는 '인간의 땅'


송곳처럼 정수리를 내리 꽂는 태양 아래 현기증과 함께 속이 울렁거렸다. 정확히 2년 전 지구에서 가장 뜨거운 곳, 사하라사막에서 혼쭐이 났던 기억이 정오를 지날 무렵 다시 살아났다.

저 멀리 지평선, 타 들어갈 듯 붉은 모래 위로 지열이 끓어올랐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유명한 요르단 와디럼(Wadi-Rum) 사막은 동쪽 이방인에게 좀처럼 몸을 열어주지 않았다. 베테랑 레이서들이 말했다. ‘더위 먹은 거’라고. 첫날부터 이 지경인데 6일간 250km 사막을 무슨 수로 건넌단 말인가.
↑김지산 기자(가운데 파란색 상의)가 출발선을 통과해 사막으로 달려나가고 있다.(사진제공: Racing The Planet)
↑김지산 기자(가운데 파란색 상의)가 출발선을 통과해 사막으로 달려나가고 있다.(사진제공: Racing The Planet)


◇웰컴 투 더 플레닛

1년 전 오지레이서 유지성에게 연락이 왔다. 요르단 사막에서 1회성 이벤트 레이스가 열린다고. 코스는 와디럼을 건너 세계 7대 불가사의라는 페트라(Petra)로 이어졌다. 여름휴가를 미리 당겨서라도 놓치지 말아야 할 대회였다. 올해도 근사한 바캉스는 물 건너갔구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와디럼. 애굽(이집트) 군대를 뒤로 하고 죽을힘을 다해 홍해를 건너 아카바에 도착한 모세는 동북쪽 와디럼 사막에 들어섰다. 3200년 전 모세의 눈에 비친 와디럼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44억년 지구역사가 켜켜이 스며든 웅장한 사암(沙巖)들이 무질서하게 서 있었다. 시간이 멈춰버린 곳. 이따금 부는 모래바람만이 나의 존재를 확인시켜줬다.

희뿌연 모래바람에 수킬로미터는 족히 떨어져 있을 법한 바위산들은 비현실적인 원근법을 연출하며 병풍처럼 펼쳐졌다. 지구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장엄한 스케일이다. 차라리 행성(Planet)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와디럼 사막의 장엄한 모습. 바위산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와디럼 사막의 장엄한 모습. 바위산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베두윈(Bedouin)과 신만이 사막에서 재미를 느껴. 보통 사람에겐 그저 타는 용광로일 뿐이지’.

사막의 영웅 로렌스에게 한 영국군 장교가 했던 말이다. 기자를 포함한 세계 150명의 ‘로맨티스트’들이 와디럼에 모여들었다. 로맨티스트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용광로’에서 레이스를 즐긴단 말인가. 그것도 19끼니 식량과 구급장비를 구겨 넣은 10kg 무게의 배낭을 짊어진 채.

◇오만의 대가를 치르다

‘사하라보다는 덜 뜨겁겠지, 사하라보다 움푹 빠지는 모래는 적겠지’. 처음부터 만만하게 본 게 화근이었다. 땀구멍이 열리자마자 땀이 말라버려 오히려 쾌적했던 사하라와 달리 이마에서부터 온 몸이 땀범벅이 됐다. 사막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무더위다. 게다가 먼지처럼 미세한 모래지대가 레이스 첫날 38.8km 내내 펼쳐졌다. 발이 푹푹 빠지는 통에 상당한 체력을 소모했다.
↑베두윈 운전기사가 대회기간 중 레이스에 참여했다. 그의 이름은 Musa. 모세의 아랍 이름이다. 3200년전 모세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사진제공: Racing The Planet)
↑베두윈 운전기사가 대회기간 중 레이스에 참여했다. 그의 이름은 Musa. 모세의 아랍 이름이다. 3200년전 모세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사진제공: Racing The Planet)

서울에서부터의 오만함을 저주하며 가까스로 캠프에 도착했다. 오전 7시부터 시작한 첫날 레이스는 예상도착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오후 4시15분에야 마칠 수 있었다.

요르단에 모인 참가자 70%는 한 차례 이상 오지레이스를 다녀온 유경험자들이었다. 한국인 9명 중에서도 첫 출전자는 단 2명. 우리 중에는 사하라·고비·아타카마·남극레이스 등 4개 대륙 레이스를 완주한 그랜드슬래머도 두 명이나 있었다.

첫날 베테랑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와디럼 더위는 좀 이상한 것 같아. 이런 더위는 처음이야”.

같은 텐트에 묵었던 캐나다의 남성 3인조 팀 ‘Loyalists’는 둘째 날 두 명이 완주를 포기하는 바람에 그대로 해체됐다. 교량 전문 설계사라는 크리스(Chris)만이 홀로 레이스를 완주했다.

대회 사흘째에는 바위산들 사이로 염전처럼 보이는 새하얀 지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실제 소금사막이었다. 소금과 모래로 다져진 바닥은 쩍쩍 갈라진 채 복사열을 뿜어냈다. 오후 1시, 태양은 하늘 정중앙에 꽂혀 있었다. 온도계 온도는 45도. 자연이 만든 거대한 황토방이었다. 두통과 함께 숨이 절로 차올랐다. 길이 4km를 족히 될법한 소금사막을 빠져 나왔을 때 까마귀 한 무리가 머리 위를 맴돌고 있었다.
↑김지산 기자. 모래지대를 빠른 걸음으로 지나고 있다.(사진제공: Racing The Planet)
↑김지산 기자. 모래지대를 빠른 걸음으로 지나고 있다.(사진제공: Racing The Planet)

◇모래와 바람의 향연

베두윈들은 사막의 모든 것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순응한다. 세상사 모든 일들은 신의 뜻이기 때문이다. 인샬라(신의 뜻대로), 이것보다 겸손한 말이 또 있을까.

대회 4일째 레이스를 마치고 저녁 6시께 식사를 할 무렵 바람이 거세지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모래폭풍으로 둔갑해 캠프를 강타했다. 베두윈 전통 천막 기둥들이 곳곳에서 무너지는 통에 캠프는 온통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베테랑들이라 그랬을까. 건너편 천막에 몰린 이탈리아인들은 하나 같이 침낭 속에 몸을 묻었다. 누군가는 환호성을 질렀다. 모래바람에 맞서 천막 중앙 흔들리는 기둥을 붙잡고 용을 쓰는 기자 앞에 오지레이서 유지성은 카메라를 들이대며 사진을 찍어댔다. 캐나다의 크리스는 ‘모두 잘자(Everybody goodnight)’ 한 마디 던지고는 침낭 지퍼를 닫아 올렸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팀(Tim)은 낄낄대며 폭풍 한가운데서 식사를 했다.
↑김지산 기자가 모래폭풍에 맞서 천막 기둥을 붙들고 있다.(사진제공: 유지성)
↑김지산 기자가 모래폭풍에 맞서 천막 기둥을 붙들고 있다.(사진제공: 유지성)

서로를 향해 크레이지(Crazy)라고 부르는 이들의 풍경이다. 의식적인 의연함이 아니다. 모래폭풍을 그저 레이스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모래와 바람의 화려하면서도 거친 향연, 그리고 원시적 인간들이 있었다.

◇페트라, 다시 ‘인간의 땅’으로

주최측 레이싱 더 플레닛(Racing The Planet)의 코스 설계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구 원형을 간직한 와디럼의 끝자락에서 페트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사암의 협곡은 인류의 위대한 유산으로 우리를 안내해줬다.

BC7세기에서 BC2세기 사이 나바테인(Nabataeans)들이 건설한 신비의 도시. 페트라는 과학과 종교, 건축, 예술의 완성체인 인간의 땅이었다. 페트라가 위대한 이유는 그토록 척박한 환경에서 최상위의 인간성이 발현됐기 때문이다.
↑협곡을 지나 모습을 드러내는 페트라 신전(사진제공: Racing The Planet)
↑협곡을 지나 모습을 드러내는 페트라 신전(사진제공: Racing The Planet)

고대 사막 도시라고는 상상이 되지 않는 장면들이 펼쳐졌다. 현대에 들어 인위적으로 만든 것으로 보일만큼 올곧은 수로(水路)가 통바위를 둘러싸고 도시로 향했다. 곳곳에 바위를 깎아 만든 신상들은 모진 시간의 채찍에 이리저리 파이고 무뎌진 채 이방인들을 맞고 있었다.

인디아나존스3의 무대로 유명세를 탄 페트라는 협곡에 감춰진 신전이 전부인 걸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신전을 지나면 그리스 양식의 또 다른 신전 기둥이 펼쳐져 있는가 하면 산악지역에는 나바테인들의 주거지와 무덤들이 즐비하다. 수천년전 통 바위를 깎아 만든 도시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걸작이다. 이것도 일부만이 발굴된 것일 뿐 페트라의 많은 것들은 아직 모래 아래 숨겨져 있다고 한다.

당나귀 주인들이 호객행위를 하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손님을 빼앗거나 지키기 위해 그들끼리 고성을 질러가며 다투기도 했다. 레이스의 백미인 89.9km 롱데이 새벽녁 베두윈들이 낭송하던 코란의 깊은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 그들은 현실로 나를 인도하고 있었다.

신의 땅 와디럼과 인간의 땅 페트라는 하나로 이어진 길이었다. 코란을 암송하는 이상적 현실과 당나귀 고삐를 쥔 구체적 현실이 하나이듯.

후대에 인류의 유산이라는 페트라도 따지고 보면 필요에 의해 만든 장치들의 집합에 불과했다. 사실 곳곳에 서 있는 신(神)조차도 그들이 필요했기 때문에 숭배됐던 것이다. 출발은 내가 이곳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진리에서부터 아니겠나.

페트라 인근 호텔에는 레이스 완주를 자축하며 미리 마련해놓은 이탈리아산 와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언덕 위로 호텔로 이동하는 버스가 보였다. 당나귀 궁둥이를 때려가며 길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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