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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영유아보육법 앞장섰던 20대 여성,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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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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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7.07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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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디자이너열전]<4>이은애 사단법인 씨즈 이사장

[편집자주] 사회를 바꾸고 싶다는 설계사들이 있다. 이들은 불평등·환경훼손·인권침해·동물학대 같은 사회 문제를 사회적기업·협동조합·비영리단체·기업의 사회적책임 같은 활동을 통해 해소하자고 나선다. 사회를 바꾸는 아이디어의 실행자, '소셜디자이너(Social Designer)'들을 머니투데이가 소개한다.
↑이은애 씨즈 이사장
↑이은애 씨즈 이사장
1990년 3월 19일 아침 9시, 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한 연립주택 지하실에서 불이 났다. 안에는 5살 혜영이와 4살 용철이가 있었다. 불은 방안에 있던 이불과 비닐옷장을 태우고 곧 꺼졌다. 하지만 아이들은 연기에 질식해 숨졌다. 문은 바깥에서 잠겨 있었다. 경찰은 아이들이 방안에서 불장난을 하다가 불을 낸 것으로 추정했다.

아이들 아버지는 30세의 건물경비원, 어머니는 27세의 파출부였다. 이들은 아침 일찍 출근하면서 방문에 자물쇠를 걸었다. 영유아 보육시설이라곤 유치원, 새마을 유아원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그나마도 하루 세 시간만 맡길 수 있었다. 아이들이 있는 방에 종일 먹을 식사와 요강을 넣고 문을 잠그는 건, 당시의 맞벌이 노동자 부부한텐 흔한 일이었다.

24세의 한 청년이 그 사연이 실린 기사를 봤다. 젊은 엄마의 눈물은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를 막 졸업한 그의 삶을 바꿨다.

'나는 이제 막 대학 나와 사회 진출을 고민하고 있는데, 나와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이 엄마는 벌써 평생 자기 탓을 하면서 살게 되다니. 이런 상황에 사회복지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서울 용산에 살던 그는 안산 반월공단으로 갔다. 거기서 지역 노동자들을 위한 육아협동조합 '진달래 어린이집'을 설립했다. 노동자 자녀를 하루 종일 맡아 무료로 돌봤다. 서울 압구정동에서 과외교습으로 돈을 벌어 어린이집 운영비를 댔다.

이 청년은 20여년 후 청년 사회적 기업가를 키우는 비영리 사단법인의 설립 멤버가 된다. 그는 이은애 사단법인 씨즈 이사장(46)이다.

◇영유아 보육법·사회적기업육성법 제정 앞장서= 20여 년 동안, 이 이사장은 '앞'에 서 있었다. 1990년엔 진달래어린이집 조합원들과 함께 '영유아 보육법' 제정 운동에 앞장섰다. 이 법 시행 후, 어린이집 서비스가 전국에서 보편화됐다. 만 5세아 무상교육이 당연한 시민의 권리가 됐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그는 마포자활후견기관에서 저소득 계층의 공동체 창업을 돕기 시작했다. 마포구의 한 종합복지관 어린이집 원장으로 지내던 시절, 아이 부모들이 실직과 이혼으로 아이를 노부모한테 맡기는 걸 보고는 안정적인 일자리 문제로 관심이 옮겨갔다. 그는 노숙자에게 도배 기술을, 미혼모에겐 디자인을 가르치며 자활공동체를 자립시켰다.

2003년엔 함께일하는재단(옛 실업극복국민재단) 설립 멤버로 사회적기업, 사회적일자리 지원사업을 시작했다. 2007년 시행된 사회적기업육성법 제정 과정에도 참여했다. 2010년엔 고(故) 이승규 KAIST 교수, 김종휘 하자센터 단장과 함께 사단법인 '씨즈'를 설립했다.

앞자리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 드러나기 쉽다. 그래서 칭찬 받기 쉽다. 비난 받기도 쉽다. 사회의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앞자리는 더더욱 그러하다. 여러 기관에서 여러 정책의 입안을 제안하면서, 이 이사장 역시 칭찬과 비난을 한 몸에 받았다.

◇"정책 결과, 시민사회가 함께 책임 져야"=올해 시행 5주년을 맞이한 사회적기업육성법이 한 예다. 이 법은 사회적 일자리와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체를 정부가 일정 기간 동안 지원하도록 했다.

덕분에 2007년 51곳이던 인증 사회적기업 수는 올해 6월 기준으로 680곳으로 증가했다. 매출 총액은 2007년 464억 원에서 2010년말 기준 3765억 원으로 늘었다. 이와 함께 사회적기업의 정부 의존성을 높였다는 비난도 높아졌다.

이 법이 논의되던 때 이 이사장은 사회적기업지원기관 함께일하는재단의 국장으로서 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그는 "5년 동안 사회적기업 인지도가 높아지고 시민이 사회적 경제에서 대안을 찾게 된 것은 성과였지만, 사회적 일자리 즉 생산자 양성에만 초점을 맞춘 것은 한계였다"고 평가했다. 그것은 '제도화가 가진 덫', 공공 부문의 한계였다.

"한국의 사회적기업은 자영업시장이 과열되고 경제는 저성장기에 들어가 창업이 절대적으로 어려워진 환경 속에서 출발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공공 부문이 가진 힘을 사회적기업과 연결해 함께 성공시켜보자는 전략을 짰죠. 근데 공공이 나서다 보니 민간에서 스스로 기업가, 사회적 투자자, 협력적 소비자를 키워내는 데엔 한계가 생겼습니다."

그는 그 책임도 함께 지겠다고 말했다. "공무원도 정책 실명제로 책임져야 하지만, 시민사회에서 그것을 요구했던 사람들도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비정부기구(NGO)가 정부기구(GO)의 파트너로서 정책 입안의 평가를 같이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후배가 있을 때 이 길이 정당하다"='평가 받을 일'이 늘어나는데도 그는 여전히 여러 정책과 제도를 건의한다. 지난 1년 동안은 충남 사회적경제정책기획단장을 지내면서 충남도 사회적기업 육성조례를 사회적경제 육성조례로 바꿨다. 기획단을 상설 사회적경제 위원회를 만드는 방안을 제안했다.

"돌아보면 제가 20대부터 그런 일을 좋아했어요. 어떻게 해야 출발로부터의 평등이 만들어지나, 사회적 보호와 책임이 늘어나나, 그런 데에 관심이 있었죠. 그게 정책화되면 그 성과가 전 국민적으로 향유됩니다. 전 한 사회가 제도화를 통해 풀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 일을 앞으로는 지금의 20대가 해주길 바란다. "후배가 있어야 지금 우리가 가는 이 길이 정당하다"고 말했다. 낮에는 아르바이트로 생계비를 마련하고 밤에는 사회적기업의 꿈을 키우는 청년을 보면 그는 이렇게 격려한다.

"괜찮아. 하다 보면 변해. 사회적 경제가 크면 내 삶도 변해."

그 자신의 삶도 그랬다. 어린이집을 운영했던 시절엔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죄다 운영비로 써서 출근할 차비조차 없었다. 그래도 불안은 없었다. 배짱은 있었다. 돈 300만 원으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혼자가 아니어서 나왔던 배짱이다. 노동자 사진가는 결혼사진을 찍어줬고, 조합원 아주머니는 잔치국수를 끓여줬다. 동네 성당은 결혼식 공간을 내줬다. 다들 공짜로 말이다.

이런 경제가 크면, 돈 많이 안 벌어도 잘 사는 삶이 가능하지 않을까? 20년 후의 일일지라도 말이다.


[팁]세상을 바꾸고 싶은 청년 활동가를 위한 가이드

1. 자신의 신념에 몰입하라= 모든 걸 다 걸고 해봐라. 10년이면 정말 강산이 변한다. 자신이 한 것의 영향력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조직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려면, 팔로어(따르는 사람)의 신뢰를 받는 게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자신부터 신념에 몰입해야 한다.

2. 자기가 설계한 인생을 살라=사회와 부모가 설계한 인생은 자기가 설계한 인생이 아니다. 자신이 무엇에 분노하고 무엇에 기뻐하는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인생을 설계할 수 있다. 또 자기 확신도 생긴다.

3. 청년끼리 연대하라=청년이 사회 주체로 서려면 청년들이 스스로 연대해야 한다. 지금의 기성세대가 70~80세가 된 미래에도 세상을 주도하길 원하지 않는다면, 지금의 청년 세대가 연대해 스스로 자기 세대를 대표해야 한다.




↑지난해 11월 윤리적소비 캠페인단 보라 3기 모임에 참석한 이은애 씨즈 이사장. ⓒ보라
↑지난해 11월 윤리적소비 캠페인단 보라 3기 모임에 참석한 이은애 씨즈 이사장.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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