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속으로]홍명보식 축구에서 배우는 한국호의 운행

204개국 1만명이 넘는 선수들이 참가한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이 금메달 13개로 세계 5위를 차지해 국민 모두 뿌듯한 마음이다.
제조업 등 하드웨어에서 강세를 보여 온 한국이 'K-팝', 'K-드라마' 등 한류의 세계적 인기와 더불어 소프트웨어에서도 성과를 거뒀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혹자는 서울 올림픽에서는 더 많은 33개의 메달을 따고 종합 4위를 했다고 하나 서울 올림픽과 달리 참가선수 규모에서 245명으로 12위에 불과하고 역도, 유도, 복싱, 레슬링, 핸드볼, 탁구 등 힘과 기계적 반복연습에 의존하거나 주최국의 이점이 있는 하드웨어적 종목이 아니라 체계적, 과학적 훈련 시스템이 요구되는 소프트웨어적 종목인 펜싱, 사격, 수영, 기계체조, 리듬체조 등의 도약이 두드러졌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특히 홍명보 감독이 세계 축구팬에게 보여준 한국축구의 현재와 미래는 한국 경제의 방향성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과거 한국 축구가 그라운드를 열심히 누비기는 하나 뻥뻥 내지르기만 하고, 문전처리가 나쁜 비효율적 축구였다면, 홍명보식 축구는 하나의 팀으로서 전진, 후퇴에서 세밀한 패스를 통해 공격과 수비를 펼치는 디테일에 주목하는 시스템적, 효율적 축구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총론엔 강하나 각론에 약한, 큰 것만을 추구하며 디테일에 약한 한국경제정책이 배우고 지향해야 할 방향이다.

현 정부 출범을 전후해 중국투자공사(CIC)의 운용자산 규모가 2000억달러라는 데에 속이 상한 정부 관계자는 한국투자공사(KIC)도 200억달러 규모를 늘려야 함을 강조했고, 메릴린치라는 투자대상에만 주목한 채 투자의 기본인 투자 타이밍은 고려하지 않아 2조원의 투자를 거의 탕진했다.
규모의 경제에 편향된 우리 특유의 배포를 과시한 사례이고 그런 태도는 산업은행의 리먼 브러더즈 인수로 이어질 뻔 했다. 이러한 '뻥 정신(puff spirit)'은 시장을 세밀히 모르는 디테일에 약한 정부의 여러 부문에 자리 잡고 있으며 특히, 금융계에는 그 뿌리가 깊다.

메가뱅크를 향한 정부의 집념은 그 전형이고 자산크기에 따른 은행 랭킹에 집착하는 것은 규모의 경제에 집착하는 다른 모습이다. 일본경제가 세계를 리드할 때 일본은행은 세계 랭킹을 휩쓸었고, 유럽경제가 회복되자 유럽은행이, 지금은 중국은행이 세계랭킹을 휩쓸지만, 어느 누구도 일본은행, 유럽은행, 중국은행이 미국은행을 대신해 글로벌 금융을 리드한다고 여기지 않는다.
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의 합병으로 탄생한 은행은 그 크기만으로 세계적 은행이 될 것인가? 대규모 프로젝트에 수반되는 보증 수수료를 외국은행에 내주는 손해와 불필요한 메가 뱅크 탄생에 따른 손해를 따져보면 어느 것이 클까? 국제무역의 효익이 비교우위론에 바탕을 두듯 우리는 우리가 강한 곳에 집중하면 되는 것이다. 런던 올림픽에서처럼.


덩치 즉, 겉으로 드러난 외관보다 알밤처럼 속이 꽉 찬 실력 즉, 실제 모습이 중요하다는 인식의 전환 없이는 한국호의 전진은 쉽지 않다. 스펙은 쌓았지만 실제 실력은 뒷받침이 안 되는 사람들. 외국유학은 다녀왔건만 외국인 앞에 서면 작아지는 사람들. 외국 생활은 십 수 년을 했건만 읽지 않고는 외국인들 앞에서 입이 떼지지 않는 사람들.

ㄹ소탈하고 서민적인 이조 분청사기와 백자에 익숙한 우리는 디테일에 신경을 쓰면 '쪼잔하다, 꼼꼼하다, 좀스럽다'며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기술과 문양이 독창적이고 미묘한 고려청자의 섬세한 태도를 부활시켜 매사에 철저한 디테일을 중시하는 자세를 '치밀하다'고 보는 긍정적 시각이 필요하다.

우리의 역동성과 부지런함은 세계 경제사에 신기원을 이루고 최빈국에서 선진국이 되는 한강의 기적을 이루게 했으나, 우리가 하나 더 갖춰야 할 것은 독일인 특유의 매사에 철저한 내지 꼼꼼한 자세이다. 외국인들은 조그마한 일을 소홀히 하면 나중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The devil’s in the details"라며 대충하는 것을 경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