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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과 희망' 박근혜의 인생역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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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익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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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08.20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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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2007년)는 자서전 제목처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굴곡 많은 삶의 궤적을 그려 왔다.

모친을 총탄에 잃고 시작한 20대 퍼스트레이디 생활, 부친까지 비명에 잃고 30대에 은둔생활을 시작했다. 오랜 침묵을 깨고 40대에 정계에 입문했고, 50대에 풍전등화에 놓인 한나라당을 구하고 선거의 여왕으로 불렸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에게 경선에서 패배했다가 60대에 재차 대권 도전에 나서기까지 말 그대로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인생역정을 살았다.

1952년 2월 대구에서 태어난 박 후보는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5·16 쿠데타에 성공한 후 청와대 생활을 시작했다. 1961년 9살 때였다. 학자의 꿈을 갖고 프랑스 유학을 떠난 박 후보는 1974년 모친 육영수 여사 사망소식을 듣고 귀국했고, 이후 1979년 10·26 사태로 부친을 잃을 때까지 퍼스트레이디 대행을 하게 된다.

'전두환 정권' 시절 은둔해야 했던 박 후보는 1998년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정치 전면에 등장했다. 아버지가 일군 나라가 외환위기로 쓰러져 가는 것을 지켜볼 수 없다는 명분을 들고 나왔다. 이후 내리 당선돼 5선 의원이 됐다.

'좌절과 희망' 박근혜의 인생역정
정치적 입지를 크게 넓힌 것은 2004년 당 대표 때였다. 2002년 '차떼기' 후폭풍과 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역풍으로 위기에 놓인 당의 '구원투수'로 등장했고, '천막당사' 생활을 하며 강도 높은 당 쇄신에 성공했다. 이어 17대 총선에서 121석을 확보하며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개헌저지선을 확보했다.

당 대표 시절 치룬 재보선 지방선거 등 5번의 선거에서 모두 승리해 '선거의 여왕'이란 별명을 얻었다. 특히 2006년 지방선거 신촌 유세에서 테러를 당해 병원에 후송된 뒤 던진 "대전은요?"라는 한마디는 선거판을 뒤흔들어 놓았을 만큼 유명한 말로 회자된다.

박 후보의 대권 도전은 사실상 이번이 세 번째다. 2002년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와 당 개혁을 놓고 갈등을 겪다 한나라당을 탈당한 뒤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해 대선 출마를 타진했지만, 보수 후보 단일화 요구에 밀려 복당했다. 이 전 총재는 당 쇄신안을 상당 부분 수용했고, 박 후보는 이 전 총재를 지원했다.

2007년 17대 대선에 출마했지만, 당내 경선에서 사상 유례없는 혈투 끝에 이명박 후보에게 석패해 대권의 꿈을 접어야 했다. 일반 당원·대의원·국민선거인단 경선에서 모두 승리했지만, 여론조사에서 뒤져 분루를 삼켰다. 박 후보는 패배에 깨끗하게 승복하고 이 후보를 지원했다.

박 후보는 2008년 이명박 정권 출범 후 또 한 번의 '칩거'에 들어갔다. 다만 침묵의 행보를 보이다가도 세종시 이전 문제 등 주요 국정 현안을 놓고는 정권과 갈등을 겪었다. 정치적 시련기였지만,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이란 이미지도 얻었다.

지난해 10월 서울시장 선거 패배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이버 테러 등으로 당이 위기에 처하자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취임, 당명을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쇄신에 나섰다. 올해 4월 총선에서도 예상을 깨고 152석을 확보, 원내 1당이 되는 기염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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