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속으로]피상주의 타파하기

다른 나라의 업무환경에 적응할 때 중요한 부분 중에 하나는 동료들이 특정 방식으로 행동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어떤 관습이나 행동을 '방식이 다른' 것이 아니라 '나쁜' 또는 '잘못'되었다고 성급히 판단하면 외국인 직원 입장에서는 좌절감이 생기고, 외국인 직원이 '분위기에 적응'하고 남들의 방식을 받아들여 주기를 바라는 현지인 동료들 입장에서는 반감을 가질 수 있다.

외국인 직원이 '방식이 다른' 어떤 관습의 이면에 자리잡은 배경을 일단 이해하면, 이제 남은 문제는 이를 받아들이느냐에 있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이런 상황이 왜 발생하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비즈니스 관행 중에서도 받아들이기 제일 어려운 부분은 본질보다 형식을 강조하는 관행, 다시 말해 피상주의다.


한국기업에서 피상주의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신입사원 대상의 보고서 작성 교육을 참관한 적이 있는데 '정해진' 글자 크기를 사용하고, 단어나 행 사이에 '적절한' 공백을 두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모두를 위해 작성 절차를 단순화하고 중요한 세부사항만 포함할 수 있도록 회사가 나서 표준화된 보고서 양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직원들이 보고서가 '정해진 타입에 맞게만' 보이도록 타이핑하느라 (그리고 재차 타이핑하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과 에너지가 낭비된 뿐만 아니라, 내용물에 대한 동기와 열정이 희생당할 수밖에 없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겠다. 기업들은 상품과 서비스를 해외 고객들에게 알리기 위해 홍보자료, 책자, 웹사이트를 비롯해 그럴싸한 발표용 파일들을 제작한다. 반짝이는 고급용지에 인쇄하고 멋진 사진까지 넣어도 대부분은 '이런저런 분야의 세계 최고'라는 거창한 문구만 적혀있고, 외국인 독자 입장에서 유용하고 값어치 있는 비교분석 도표나 심층적 분석과 같은 정보는 없다. 홍보용 파워포인트 파일들의 경우, 보통 장식적이고 멋진 배경 이미지가 들어간다. 이런 이미지들은 결국 파일 크기를 늘려서 인터넷 속도가 한국만큼 빠르지 않은 국가에는 이메일로 보내거나 다운로드 받기가 힘들거나 불가능하다.

앞서 언급한 예에서 보면, 회사와 그 서비스를 '홍보'하려는 목적으로 돈, 시간과 노력을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중요성을 내용이 아닌 형식에 두어 역효과가 초래될 수도 있다. 즉, 가치 있는 무언가를 기대했지만 있더라도 아주 약간의 정보만 발견한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기업 내에서는 동료들이 비효과적인 홍보자료를 고생스럽게 만드는 것을 보고, 또 회삿돈이 이런 활동에 소비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 또한 받아들이기 힘들다.


필자의 전 직장에서의 예를 들자면, 회사가 주관하는 행사에 외국인 친구들을 초대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외국인들이 많이 참석할 수록 '성공적인' 행사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회사 입장에서는 외국인 참석자들이 행사 내용에 흥미가 있는지, 참석자들에게 실질적인 가치를 부여해 줄 가능성이 있는지 여부는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해당 주제에 관심을 가진 내국인들이 참석하는 행사 보다는 '국제적인' 행사로 보여지는 것이 먼저였다. 본질보다는 겉치레를 내세웠던 것이다.

필자는 피상주의를 유발하는 근본원인들 중에서도 자신의 상사만을 기쁘게 해주겠다는 위험하고 근시안적인 무언가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러한 동기는 상사가 체면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한 의도와도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예를 들어 어떤 행사를 참석자들에게 적합한 내용이나 기대에 부합하도록 준비하는 게 아닌, 회사 중역들에게 그럴싸하게 '보일' 수 있도록 돈이나 노력을 더 투입해서 행사를 필요 이상으로 웅장하게만 보이게 한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회사의 평판을 위해서 음악공연, 장소, 제공되는 음식보다는 홍보자료의 '독자'에게 '전체적인 그림'의 가치와 비즈니스 행사의 '내용물'을 제공하고, 행사 참석자들의 외모나 국적보다는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더 중요함을 깨달아야 한다. 피상주의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전체적인 그림의 가치와 업무를 이해하는 리더들이 회사 내부에 자리잡고, 직원들은 상사들만 만족시키기 위해 업무를 처리하는 사고방식을 제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