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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편 2천원...연 20만명 찾는 이 극장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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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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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5.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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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디자이너열전]<25>김은주 허리우드극장 대표

[편집자주] 사회를 바꾸고 싶다는 설계사들이 있다. 이들은 불평등·환경훼손·인권침해·동물학대 같은 사회 문제를 사회적기업·협동조합·비영리단체·기업의 사회적책임 같은 활동을 통해 해소하자고 나선다. 사회를 바꾸는 아이디어의 실행자, '소셜디자이너(Social Designer)'들을 머니투데이가 소개한다.
- '삼포 가는 길' '태양은 가득히' 등 옛 명화 상영해도 객석점유율 60%
- 노인 동반하면 젊은 이도 '2000원 입장' 특혜… 노인 대우하는 극장
- 만 10년 극장업하는 대표가 삭발 투혼하면서 극장 지키는 사연


↑평일 낮에도 북적거리는 허리우드극장 매표소. ⓒ구혜정 기자 photonine@
↑평일 낮에도 북적거리는 허리우드극장 매표소. ⓒ구혜정 기자 photonine@
멀티플렉스 영화 한 편 보는 데에 드는 돈은 8000원. 평일 4시 이후나 주말에는 9000원~1만 원까지 내야 한다.

그런데 이 극장은 필름영화를 상영하는데도, 관람료가 2000원이다. 하루 네 번 상영 중 세 번은 매진된다. 지난해 이 극장의 객석 점유율은 58.8%. 멀티플렉스 평균인 30~40%보다 훨씬 높다.

2010년 12만 명이던 이 극장의 관람객수는 2011년 15만 명, 지난해 20만 명으로 늘었다. 연 평균 30%에 육박하는 성장세다.

상영작 리스트가 독특하다. '대장 부리바', '해바라기', '사브리나', '삼포 가는 길', '맨발의 청춘', '여자의 일생' 등 지나간 명작들이다. 3일부턴 몽고메리 클리프트 주연의 '종착역', 21일부턴 알랑 드롱 주연의 '태양은 가득히'를 상영한다.

이런 철 지난 영화로 어떻게 멀티플렉스보다 높은 객석 점유율을 달성한 걸까. 그것도 서울 낙원상가, 죽어가던 상권 가운데 있는 300석 규모의 낡은 극장에서 말이다. 성공담의 주인공은 만 30세부터 극장사업에 뛰어든 통 큰 여성CEO였다.

↑허리우드클래식 실버영화관 앞에 선 김은주 (주)허리우드극장 대표. 구혜정 기자 photonine@
↑허리우드클래식 실버영화관 앞에 선 김은주 (주)허리우드극장 대표. 구혜정 기자 photonine@
◇노인을 위한, 노인에 의한 극장=1일 수요일 오후 2시. 다른 극장을 한가할 평일 낮 시간이지만 '허리우드클래식' 일명 실버영화관은 입구부터 북적였다.

상영관을 열자 대여섯 명은 객석 옆 간의의자에서, 대여섯 명은 객석 맨 뒤에 서서 영화를 보고 있었다. 상영장은 '모정(慕情)'. 크게 알려진 영화는 아니었다.

대체 비결이 뭔지 김은주 ㈜허리우드극장 대표(39)한테 물으려는데, 다음 영화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끼어들었다. 빨간 원피스로 멋 낸 60대 여성이 다가와 "내가 점포를 열었는데"하고 말을 붙이는가 하면, 정장을 입은 한 노인은 슬쩍 끼어들어 은밀하게 뭔가를 속닥거렸다.

김 대표는 양해를 구하거나 제지하기는커녕 인터뷰를 제쳐두고 그들과 먼저 대화했다. 얼마나 중요한 얘기이기에?

"아, 떡을 주는 날이 홀숫날 아니었냐 물으시네요. 아마 하나은행 사회공헌팀이 떡을 나눠주는 날이 궁금하셨나 봐요. 그건 극장에서 하는 일이 아니라 제가 잘 모른다 했죠."

'허리우드클래식'으로 개명한 이 극장의 다른 이름은 실버영화관이다. 즉, 노인이 대우 받는 영화관이다. 관람료로 만 55세 이상 관객한텐 2000원, 그 이하는 7000원을 받는다.

청년이나 중년도 2000원에 영화 볼 방법은 있다. 노인과 함께 오면 특별히 관람표가 2000원으로 할인된다.

극장 직원 16명은 전원 만 60세 이상 노인이다. 노인을 위한, 노인에 의한 극장이다. 2009년엔 국내 극장 최초로 고용노동부로부터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특이한 점은 16명의 자원봉사자들이다. 하루 4시간, 고용직원들과 똑같은 일을 무급으로 하는데도 일하고 싶다는 자원봉사자가 줄을 선다. 모두 60대 이상 노인들이다. 자원봉사 대기자가 많다 보니 이런 일도 있었다.

"저희 자원봉사자 중에 78세 노인이 계세요. 어느 날 이분 자녀들이 저를 찾아와서는 '저희 어머니한테 자원봉사 계속 시키겠다고 각서 좀 써주세요'하는 거에요. 사연을 들으니, 이분들 모친이 수술을 받으셔야 하는데 자원봉사 자리 뺏길까봐 수술을 거부하고 계시대요."

김 대표는 해당 자원봉사자한테 직접 전화해 '돌아오면 다시 자원봉사하게 해드릴테니 수술 잘 받고 건강해져 돌아오시라'고 안심시켰다.

↑허리우드극장은 직원뿐 아니라 자원봉사자도 노인이 많다. 구혜정 기자 photonine@
↑허리우드극장은 직원뿐 아니라 자원봉사자도 노인이 많다. 구혜정 기자 photonine@
◇고객과 직원에게 존재감을 주는 극장=일을 찾는 노인이 많자, 그는 극장 인근에 가게 하나를 더 차렸다. 희망을 파는 가게 1호점 '추억 더하기'다. 3000원짜리 추억의 도시락을 먹으면 1000원에 커피까지 준다. 이곳에서 DJ, 서빙 직원 등 7명이 일한다. 역시 60세 이상이다.

"얼마 전, 서빙 직원 한 분이 30만 원을 제게 줬어요. 지난 달 급료로 받은 50만 원 중에 이건 안 받아도 된다면서요. 내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 느끼게 해준 것만으로 고맙다는 거죠. 물론, 돌려드렸죠."

이 극장에선 노인이 '소비자'로도 대우 받는다. 영화 상영 전엔 SK케미칼의 관절염 치료제 '트라스트', 유한킴벌리의 요실금용 팬티 '디펜드', 노인 전용 체크카드 '하나은행 행복문화카드' 광고가 나온다. 모두 실버영화관 후원기업들이다. 김 대표는 이런 후원이 금액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봤다.

"기업이나 사회가 관심을 가져주는 게 이 분들(노인)한테는 위로가 돼요. 우리 어르신들을 위한 극장 만들었는데 아무도 안 도와주면 우리 역시 쓸모없구나, 어디 가도 찬밥이구나, 하실 것 아녜요."

'이곳에선 내가 대우 받는구나' 하는 존재감. 한 때 동성애자들이 찾는 극장, 소수 인디영화팬들의 극장이라는 이미지 속에 대중과 멀어져가던 허리우드극장이 노인이라는 새로운 관객층을 개척하게 된 가장 큰 비결은 이것이었다.

◇"우리 모두에게 분명한 미래는 늙는다는 것"=지난해 7월, 그는 삭발했다. 충정로에서 운영하던 실버영화관 '서대문 아트홀'이 건물 재개발로 문을 닫게 되자, 그는 "말로만 사과하는 건 어르신들의 소망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며 긴 머리카락을 잘랐다. 당시 노인 1만 명이 극장을 지켜달라며 서명 운동을 벌였다.

"삭발을 결심했을 때엔 이미 극장 폐관을 막기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저도 삭발하긴 싫었어요.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내가 그렇게라도 해야 이런 일이 또다시 벌어지는 걸 막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재개발은 없다'던 건물주의 말을 믿고 5억 원을 꿔 상영관 설비를 새로 들여 놨던 터. 타격은 컸다. 지금 남은 부채 중 1억5000만 원은 그때 남은 것이다. 허리우드극장 또한 아직 큰 흑자를 내지 못하는 터.

왜 이렇게까지 할까. 그는 자신이 나이 들었을 때 '내 세대의 것, 내 세대의 문화'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까봐 불안하다고 했다. 지금의 도시화는 모든 걸 부수고, 새로 짓고 있다. 그는 10년 전 추억을 되새기러 고향인 광명시 철산동에 갔다가 그 현실을 봤다.

↑김은주 허리우드극장 대표. ⓒ구혜정 기자 photonine@
↑김은주 허리우드극장 대표. ⓒ구혜정 기자 photonine@
"많은 사람들이 꿈, 미래 얘기하는데 사실 분명한 우리의 미래는 정해져 있어요. '늙는 것.' 우리가 늙는다는 건 공상과학 영화 같은 얘기가 아니에요. 어르신들의 현실이 우리 미래에요."

그는 "지금 내가 힘이 있을 때, 내가 말하는 걸 사람들이 들어줄 때 옛 것과 새로운 것의 공존을 말하고 싶다"고 했다. 지금 자신 같은 사람이 있어야 누군가 그 진정성을 보고 자신의 다음 일을 할 것이라 믿는단다.

한국전력을 거쳐 외환카드에서 마케팅 능력으로 인정 받던 그가 극장 마케팅 사업에 뛰어든 것이나, 허리우드극장을 인수한 것, 또한 주변의 잠재 고객군을 감안해 이 극장을 실버영화관으로 변신시킨 것은 어찌 보면 우연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 극장이 사회적기업이 된 건 필연에 가까웠다. 그는 고용노동부 인증을 받기 전부터 노인을 위한 극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이 사회에 꼭 필요한데 기업이나 사회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하는 게 사회적기업"이라며 "사회적기업가들한텐 정부와 사회가 칭찬해주고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삭발 투혼, 지금도 이어지는 응원=그를 멈출 수 없게 하는 또 하나의 동력은 관객이다.

그는 2010년 어느 날의 일화를 들려줬다. 한 60대 관객이 그에게 점심을 같이 먹자고 졸랐다. 임대료 3개월치에 직원 급여까지 밀려 친구에게 돈 꿔달라고 나서던 길이었다.

그가 바쁘다고 하자 이유를 꼬치꼬치 물었다. '잠시 화장실 다녀오겠다'던 노인은 잠시 후 나타나 현금 봉투를 건넸다. 3000만 원이 들어 있었다. 상환조건 없는 대출.

"너무 상처 받았을 때, 지쳤을 때, 상처 받았을 때 여기(극장에) 오면 힘이 생겨요. 어르신들이 '오늘 영화 최고였어, 너무 재밌었어, 우리 대표 최고라니까'하세요. 엘리베이터를 타면 민망해요. 너무 칭찬하셔서. 민망하지만 힘이 나요. 내가 하는 게 누구한테든 도움이 되는구나."

인터뷰 후 사무실을 나서는데, 그가 두릅 한 바구니를 통 채로 건넸다. "남양주에서 오시는 관객이 직접 캤다며 준 것"이라며 "난 어제도 이만큼 받아 더 먹기 어렵다"고 떠밀었다. 문 앞엔 다른 관객이 줬다는 감자 박스가, 책상 위엔 팬레터가 수북했다.


[팁]사회적기업가의 또 다른 지원군 '가족'

영화 한편 2천원...연 20만명 찾는 이 극장 어디?
지난해 허리우드극장의 수입은 후원금 포함 14억여 원. 비용은 13억5000여만 원으로, 창립 후 첫 흑자를 기록했다. 한 번에 하나의 영화만을 상영하는 300석 규모 단관으로선 괜찮은 성과다.

그러나 재무 상황은 열악하다. 자본금 5000만 원짜리 회사에 부채만 3억8000만 원이 남아 있다. 김 대표가 부친 김익환 씨(68)한테 개인적으로 꾼 돈 4억여 원은 부채 항목에 표기하지도 않았다.

그는 신용카드가 빼곡한 자신의 지갑을 열어 보이며 "2009년에 처음 극장 인수했을 때 하루 관객이 100여 명이었다"며 "이걸로 돌려 막기 하지 않았으면 이만큼 성장하기까지 버티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허리우드극장 인수 후 5년 동안 김 대표는 급여를 받는 대로 회사 비용으로 썼다. 자가용도 팔았다. 남편한테는 '꿀 만큼 꿔서' 어머니, 언니한테도 집 담보 대출을 끌어다 썼다.

그런데도 그의 가족은 그를 지금도 지원한다. 어머니는 그 대신 집안일을 한다. 남편도 새벽 2시에 귀가하는 아내를 말없이 도왔다.

극장에 나와 인천 등 멀리서 온 노인 관객들을 안쓰럽게 지켜보던 아버지는 '안산명화극장'이란 실버영화관을 하나 더 세웠다. 저녁에는 이주여성, 이주노동자를 위해 다른 아시아지역 영화도 상영하는 다문화극장이다. 이곳도 노인일자리를 만들며 사회적기업 인증을 준비하고 있다.

세계적 사회적기업가 지원 네트워크인 아쇼카는 지원대상인 '아쇼카 펠로우'를 선발할 때 가족 등 주변관계를 자세히 묻는다. 사회적기업가의 길은 지난하기에 가족이나 주변사람들의 응원과 지지 없이는 버티기 힘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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