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속으로]책임의 시대

며칠 전 친구가 운영하는 옷 가게를 찾았을 때의 일이다. 매장에 온 한 나이 든 남성이 "커피 좀 줘봐" 하면서 반말로 커피 한 잔을 요구했다. 그 고객은 매장을 둘러보는 내내 점주에게 반말을 했고, 자연히 매장의 분위기는 어색해지고 다른 고객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고객이 왕'이라는 말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였는지 그 고객은 자신이 특별대우를 받아야 하며 매장 직원들보다 '높다'고 여기는 것이 분명했다. 그의 행태에 화가 난 것이 분명했지만 일단 고객이기도 하고, 똑같이 반말로 대응했다가는 더 큰 소동이 벌어질 것을 염려한 매장 주인은 그의 무례함을 참아냈다.


그가 매장을 나가자 친구는 그 상황에서 나라면 어떻게 했겠느냐고 물었다. 나라면 고객에게 서로 예의를 갖추고 존중하며 대화할 것을 요청했을 것이고, 만약 고객이 그 제안에 응하지 않는다면 매장에서 나가달라고 요청했을 것이다. 그로 인해 매출에 손해가 생길 수는 있겠지만, 그런 고객은 도움이 되기보다는 문젯거리를 안겨주기 때문이다.

이 일화는 비즈니스 관계를 이루는 양측 중 한쪽의 권리의식과 우월감을 다루는데 있어 최선의 방법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최근 한국에서는 이와 같은 고객의 권리의식과 우월감으로 인해 서비스업 종사자가 부당한 대우를 받은 사례들이 크게 보도된 적이 있다. 한 유명 철강 회사의 임원은 항공기 승무원이 고객인 자신의 요구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않았다며 질책하고 손찌검을 하였으며, 한 대형 유제품 기업의 직원은 과도한 요구를 거절했다는 이유로 대리점주를 모욕하고 위협을 가한 사례가 보도되기도 했다. 또 술에 취한 고객이 대리운전업체의 전화 상담원에게 예의를 갖춰 전화 응대를 하지 않았다면서 폭언과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이 외에도 부당한 대접을 받은 피해자가 공개를 원치 않아 보도되지 않은 사례도 많이 있다.

그러나 과거의 '악한 것은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말라'는 사고방식에 변화가 생기면서 위의 세 사건의 경우, 피해를 입은 서비스업 종사자들은 부당한 행위에 대해 가해자들이 책임을 지도록 피해 사례를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대리운전업체 상담원의 경우, 대응을 못하고 당황했던 고객의 입장에서는 실망스럽겠지만 욕설을 퍼붓는 고객에게 욕설로 대응하여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


서비스업 종사자들을 향한 모욕적인 행태의 사례들이 보도되자, 이러한 부당한 대우에 관한 보도를 듣거나 개인적으로 감내해야 하는 것에 지쳐가던 대중들의 열렬한 지지가 뒤를 이었다.

모욕적이고 부당하게 행동하는 고객들이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도록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맞서는 최근의 사례들은 한국 사회가 진정한 터닝 포인트에 들어섰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여겨진다. 최근 들어 서비스업 종사자들은 자신들이 입은 피해를 조용히 감내하는 대신 자기 존엄성을 지키는 것을 택하고 있다. 과거에는 고객들의 부당하고 모욕적인 대우를 받은 직원이 동료들로부터 침묵을 지킬 것을 요구 받거나 처벌이 두려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 들어 변하고 있다.

권력의 위치가 악용 되고 있는 상황에서 '책임의 시대'는 일종의 견제와 균형책이며, 우리는 지금 '책임의 시대'의 여명을 목도하고 있다. 그리고 현대 사회 곳곳에 속속들이 스며들어 있는 소셜미디어는 책임의 시대의 도래를 촉진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다만 바라건대 책임의 시대가 마녀 사냥이나 인신공격으로 귀결되지 않아야 한다. 모든 사건에는 두 가지 측면의 이야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면서,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판단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책임을 요구할 때 필요한 것 중 하나다. 그러나 서비스업 종사자들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행태가 기록되거나 대중에 공개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최근의 사례들과 추세는 '서비스업'의 개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고객들은 물건을 구매한다는 이유로 서비스업 종사자들에게 무례하게 행동할 권리가 있지 않음을 깨달아야 하며, 서비스업 종사자들은 자신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와 제공하지 않는 서비스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정의를 내리고 그 기준을 고수해야 한다. 결국 서비스업계 발전의 두 축은 상호 존중과 책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