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트레프레너'만의 창업대회...진짜 벤처 외면?

/그림=임종철 디자이너

-지난 2년간 창업경진대회 우후죽순 생겨
-진짜(real) 벤처 육성 대신 상금만 노리는 그랜트레프레너 양산하는 모순
-멘토링 강화와 상금 대신 지분투자 등으로 장기 성공 이끌어야
-초기 단계 스타트업에 집중 투자하는 '엔젤캐피탈' 필요

“OO팀은 여기저기 창업경진대회에 너무 자주 나오는 거 아닙니까?”


지난해 머니투데이와 기업가정신재단(이사장 이장무)이 주최하는 창업경진대회인 제2회 ‘청년기업가대회’에서 심사위원이 결선에 오른 한 참가팀에게 던진 말이었다. 이 심사위원은 소위 몇몇 ‘선수’들이 여기저기 창업대회를 휩쓸고 다닌다는 세간의 비평을 대변한 것이었다.

2011년 ‘청년기업가대회’가 처음 개최된 이후 한국에서 오디션 방식의 창업경진대회가 우후죽순 생겨났고, 이제는 벤처업계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심지어 여러 창업대회 대상팀을 모아 놓고 소위 왕중왕을 가리는 대회까지 만들어진 상황이다.

이들 창업대회는 지난 2년간 늘어나는 청년실업 문제를 해소하고 청년들을 취업의 대안인 창업으로 유도하는 등 나름 긍정적인 역할을 해 왔다.


하지만 심사위원의 지적처럼, 벤처업계에선 벌써 창업경진대회가 진짜 창업가인 '앙트레프레너'(entrepreneur)를 발굴하기 보단 상금만을 노리는 '그랜트레프레너'(grantrepreneur)를 양산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랜트레프레너는 오로지 정부의 창업지원금이나 창업대회의 상금을 탈 목적으로 사업계획서만 잘 만드는 사람을 지칭한다.

이들은 획득한 상금을 바탕으로 사업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실행(execution)에 옮기려 노력하기 보다는 추가 상금이나 노리고 다른 창업대회를 기웃거리기 일쑤여서 완전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기는커녕 결국 창업에 실패하고 만다.

지금의 창업경진대회가 오직 사업계획서만 잘 만드는 그랜트레프레너를 양산하게 된 이유에는 오디션 형식의 창업대회가 사업계획서나 프리젠테이션과 같은 선발에만 치중을 두고 선발 이후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전문가의 멘토링을 제공해주지 못하는 데도 그 원인이 크다.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에겐 이론(theory)이 아닌 실행(execution) 기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비즈니스 경영이나 창업 경험이 전혀 없는 이들이 창업 멘토링 프로그램에 멘토로 참여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미국의 유명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인 500Startups의 창업자인 데이브 맥클러(Dave Mcclure), TechStars의 창업자인 브래드 펠드(Brad Feld)와 데이빗 코헨(David Cohen)은 일찍이 그랜트레프레너를 경계하며 진짜 벤처를 효과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전문가의 멘토링을 강화한 스타트업 선발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다.

또한 창업대회를 주최하는 기관도 가급적이면 다른 대회에서 수상경력이 있는 소위 ‘스타’급 스타트업이 자신의 대회에 참가하는 걸 바라는 점도 소위 ‘선수’들을 양산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대부분의 창업경진대회가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유망한 벤처를 체계적으로 육성하기 보다는 단기적으로 보여지는 성과에 급급해 자신의 창업대회 출신들이 곧바로 성공한 스타트업으로 불리기를 원한다. 그렇기에 이미 검증받은 스타트업을 선호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한국엔 여전히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을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자본이 적은 점도 스타트업이 여기저기 창업경진대회에 중복 출전해 상금을 노리게 만드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국의 엔젤투자 현실은 최근에야 본엔젤스나 프라이머와 같은 성공한 벤처 1세대로 구성된 엔젤투자자(angel investor)가 소수의 스타트업에 선별적으로 투자하는 게 고작이다. 결국 ‘엔젤 캐피탈’(angel capital)과 같은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을 위한 대규모 자본이 없다 보니 스타트업에겐 창업경진대회가 그나마 필요한 창업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좋은 엔젤투자자의 자격은 과거에 직접 창업을 해 본 사람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의 생리를 이해할 수 있다. 창업경험이 전혀 없고 MBA만 취득한 펀드매니저는 시리즈 A(series A) 단계나 그 이후의 투자엔 적합하지만, 초기 단계의 엔젤투자자로는 적합하지 않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벤처투자(주)의 정유신 대표는 ‘벤처캐피탈’(venture capital)외에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 투자를 위한 엔젤캐피탈의 필요성을 적극 주장하고 있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정부는 혁신 기술과 관련된 창업을 장려하기 위해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에게 최대 50만 달러(약 5억원)까지 지원하는 엔젤캐피탈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지금까지 창업경진대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청년기업가대회’도 이러한 비판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깊이 인정한다.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처음으로 창업경진대회를 시작한 선구자이기에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야 할 큰 책임감마저 느끼고 있다.

따라서 올해 있을 제3회 ‘청년기업가대회’는 위에서 제기된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지금까지 선발후 보완적으로 제공되었던 3개월 과정의 멘토링 프로그램을 최종 심사전 선발과정 속에 필수코스로 포함시켜 전문가의 멘토링이 스타트업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했다.

또한 약 6개월에 걸쳐 진행되는 선발과정을 도입, '청년기업가대회'가 이미 검증받은 '선수'를 뽑는 단기성 이벤트가 아닌 좋은 앙트레프레너를 육성하는 장기적인 창업 프로그램이 되도록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최종 심사에서 선발된 스타트업에게 상금을 지급하던 것을 Y-combinator나 TechStars 등 유명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 등과 마찬가지로 기업가정신재단이 직접 지분투자하는 것으로 창업자금 지원방식을 변경했다. 상금 수여대신 직접 지분투자를 하게 되면 그랜트레프레너를 막을 수 있고, 또 스타트업의 장기적인 성공에 깊이 내재된 관심과 책임을 자동적으로 갖게 된다.

TechStars의 창업자는 스타트업에 대한 세간의 관심과 지원이 갈대와 같이 쉽게 변한다고 지적한다. 실업률이 높을 땐 정부가 청년창업을 적극 장려하지만 경제가 회복되고 나면 정부의 지원이 끊긴다거나, 창업 열풍이 불면 미래의 저커버그를 기대하며 엔젤투자자가 벌떼같이 모여들다가 상황이 변하면 거들떠보지도 않는 경우가 허다한 게 엔젤투자의 생태계다.

향후 새롭게 변화된 ‘청년기업가대회’가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경기변동에 영향을 받지 않고 꾸준히 지속될 수 있도록 건강한 엔젤투자 생태계(ecosystem)를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그림=최헌정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