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불허전' 피나 바우쉬, 숨막혔던 40분

↑ 피나 바우쉬의 <봄의 제전> 포스터 ⓒ 사진=송원진

스트라빈스키의 발레곡 은 니진스키의 쇼킹했던 1913년 초연 안무 외에도 초연 못지않은 ‘쇼킹’함을 전수해온 몇 개의 유명한 안무 버전이 있다.


음악도 듣기에 어렵고 안무는 그 자체도 보는 이로 하여금 ‘어렵다’라는 단어를 느끼게 하는 작품인만큼 새로운 안무가 나오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그 중 지금까지 제일 유명한 안무로 남은 것은 스위스 발레단인 모리스 베자르 발레단(Bejart Ballet Lausanne)과 독일 출신의 피나 바우쉬(Pina Bausch)가 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베자르 발레단은 을 요즘 무대에 올리지 않고 있지만 피나 바우쉬의 만 지금도 계속 무대에 올라가고 있다. 물론 국내에서도 몇년 전 내한공연이 있었다.

초연이 있었던 프랑스 파리의 샹젤리제 극장(Theatre des Champs Elysees)은 초연 100주년 기념 공연의 일환으로 올해 피나 바우쉬의 도 같이 준비했다.


정확한 초연 날짜인 5월 29일부터는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 발레단과 게르기예프가 공연을 했고 일주일 뒤인 6월 4-7일은 탄츠 부퍼탈이 피나 바우쉬의 을 보여준 것이다.

↑ 당일 공연 일정을 알려주는 일정표. 온통 불어밖에 없다. 티켓 검사를 하자 마자 홀로 들어가는 계단에 설치 되어 있다. ⓒ 사진=송원진

↑ 내가 앉은 박스 좌석. 이 박스 안에서도 맨 뒷자리가 내 자리였다. 이 박스 좌석 첫 줄이 제일 비싼 자리다. ⓒ 사진=송원진

이 공연도 다른 의 공연들처럼 3개월 전 모든 날짜의 티켓이 매진되었다. 빠른 매진 때문에 이 공연은 조금 비싼 자리에서 관람하게 되었는데 정면이 보이는 곳이지만 칸막이가 있는 박스 좌석에다 이 작은 박스 중에서도 맨 뒷자리였기에 의자를 옮겨가며 사람들 머리 틈에서 나만의 뷰포인트를 찾아내야 했었다.

하지만 무대의 정 중앙이 잘 보여서 앞으로도 가능하다면 공연은 중앙이 보이는 곳으로 티켓 구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가지 더 재미있는 사실은 좌석 박스마다 키가 있어서 티켓을 보여주면 박스 문을 열어준다. 그리고 샹젤리제 극장은 다른 극장들과 달리 ‘유일하게’ 좌석을 안내해주는 사람에게 팁을 준다. 보통 동전을 주기 때문에 나도 1유로씩 건네주었다.

파리의 극장들은 좌석 정렬이 우리나라처럼 1,2,3,4,의 개념이 아닌 자신들 만의 독특한 나열로 되어있어서 안내를 받아야 자리를 찾아가기 쉽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들어와서 자리를 채우자마자 불이 꺼지기 시작했고 공연이 시작됐다.

이번 공연은 특별히 1부가 공연이 아닌 댜큐멘터리 감상이었다. 다행히 피나 바우쉬와 에서 주인공 여자를 맡은 일본 무용수는 간간히 영어를 써서 조금씩은 이해를 해나갈 수 있었지만 자막은 온통 불어였다. 말을 못 알아들었지만 영상을 보기만 해도 두 사람이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이해는 할 수 있었다.

역시, 스승의 힘은 위대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몇년 전 세상을 떠난 피나 바우쉬의 능력이 작은 손짓, 몸짓 하나하나에서 강렬하게 뿜어져 나왔다.

피나 바우쉬(Pina Bausch, 1940-2009)은 줄리어드를 졸업한 독일 무용가이자 안무가이다. 1968년 학생 운동 이후 독일에는 공연에 대한 열정 표출을 우선시 하는 자유 그룹들이 독일 공연의 흐름을 주도하면서 실험적인 공연이 주류를 형성했는데 피나 바우쉬는 무용분야에서 이런 자유 그룹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예술가로 꼽힌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활발한 활동을 펼쳤던 그녀는 부퍼탈 무용단(Tanztheater Wuppertal)의 예술감독 겸 안무가이기도 했기에 이 무용단은 피나 바우쉬의 을 아직도 레퍼토리로 가지고 있다.

↑<봄의 제전> 1부 다큐 공연이 끝난후 본격적인 공연을 위해 무대 바닥에 흙을 깔고 있다. ⓒ 사진=송원진

↑ 여기나 저기나 휴식시간은 수다가 빠질 수 없다. ⓒ 사진=송원진

다큐멘터리 상영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큰 쓰레기통같이 생긴 것들을 밀며 무대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저게 뭐지?’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통들을 다 쓰러트리고 안에 있는 무엇인가를 바닥에 쓱쓱 깔기 시작했다. 흙 이었다. ‘아, 다음 무대를 준비하는 거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잠시 휴식을 위해 박스 밖으로 나왔다.

↑ⓒ 사진=송원진

↑샹젤리제 극장 3층으로 올라가면 샹젤리제 극장 역사를 조금씩 소개해주는 곳이 있는데 그 곳에 있는 디아길레프와 러시아 발레단, 그리고 니진스키가 안무를 맡은 스트라빈스키의 <봄의제전>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붙어있다. ⓒ 사진=송원진

인터미션을 틈타 극장 3층으로 올라갔다. 이곳엔 특별한 것이 있다. 바로 이 극장을 나에게 소개한 사람인 러시아 프로듀서 세르게이 디아길레프(S. Diaghilev, 1872=1929)와 러시아 발레단(Ballet Russe)이다.

1913년 개관한 샹젤리제 극장은 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여러 장의 샹젤리제 극장의 주요 역사를 정리해서 보여주는 한 쪽 벽면에는 러시아 발레단과 봄의 제전이 아주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 공연 후 커튼콜. 중간에 아주 작은 빨간 옷을 입은 무용수가 여자 주인공이다. ⓒ 사진=송원진

20분의 인터미션이 지나고 프로그램에 써있는 2부, 진정한 이날의 메인인 피나 바우쉬의 이 시작됐다. 눈 한번 깜짝 할 수 없고 숨 쉬는 것조차 잊게 만들 정도로 원시성, 생명력이 가득했던 무대였다. 40분이란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주인공이었던 작은 동양 여자 무용수는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40분 동안 지치지 않고 그 넓은 무대를 손바닥 안을 돌아다니는 것처럼 뛰어다녔다.

스트라빈스키의 음악과 절대적으로 공명하며 관객을 흡입하는 마력을 지닌 피나 바우쉬의 안무는 일주일전 니진스키의 초연의 무대만큼이나 파워풀하고 에너지가 넘쳤다. 누구든 이 공연을 본다면 을 잊기는 힘들 것이다.

↑ 40유로를 주고 구입한 피나 바우쉬의 <봄의 제전> DVD(좌), 와 공연 브로셔. ⓒ 사진=송원진

역시 좋은 공연은 좋은 매출로 연결이 된다는 걸 이번 공연에서도 느꼈다. 공연 전만 해도 약간의 줄을 서던 DVD판매 부스가 만원을 이뤘고 나도 그 줄에 함께 서있었다.

공연을 보면서 아쉬운 점은 공연 자체를 찍을 수 없다는 점이다. 물론 연주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공연 중 촬영불가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누군가 내가 연주를 하고 있을 때 플래시를 터트리며 사진을 찍어댄다면 연주자인 나도 눈살이 찌푸려지고 또 공연을 보고 있는 다른 관객에게도 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커튼콜이나마 찍을 수 있어 참 좋고 외국의 공연들은 그 후 DVD발매가 되기 때문에 인상 깊었던 공연은 DVD로 다시 볼 수 있어 참 다행이기도 하다.

↑공연 후 샹젤리제 극장의 모습. ⓒ 사진=송원진

머리가 복잡하거나 비가 오는 날 보면 힘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생명력이 넘치는 은 어느 버전을 보아도 즐겁고 신선하다.

어김없이 시간은 흐르고 밤이 되었다. 좋은 공연은 꼭 ‘행복함’을 선사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다.

2013년 초연 100주년이 내게 선사한 너무 큰 행복감을 나의 마음에, 나의 눈에 고이 집어넣었다. 스트라빈스키! 니진스키! 그리고 디아길레프! 이 세 사람이 없었다면 2013년 5월의 파리가 이렇게 화려할 수 있었을까?

↑ 반짝이는 에펠탑. ⓒ 사진=송원진

공연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로 발걸음을 옮기다가 뭔가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바로 에펠탑의 '야경쇼' 였다.

모스크바에서 17년을 살았던 까닭에 난 밤에 돌아다니는 걸 끔찍하게 무서워하는 병(?)이 있다. 그래서 그 어느 도시에 가도 야경을 본 적이 없다.

에펠탑의 야경쇼를 접한 순간 파리가 내게 작년에 이어 또 하나의 선물을 했다고 생각했다. 작년엔 무지개를 이번엔 반짝이는 에펠탑을 말이다. 내년엔 또 파리가 어떤 선물을 줄지 기대 해본다.


☞ 7월 나눔콘서트 : 피아졸라와 파가니니, 그리고 차이콥스키
->'송원진,송세진의 소리선물' 7월21일 광화문 KT올레스퀘어 드림홀


◇ 클래식도 즐기고 기부도 하는
콘서트가 매월 세번째 일요일 오후 1시 서울 KT 광화문지사 1층 올레스퀘어 드림홀에서 열립니다. 이 콘서트는 일반인들이 쉽게 접하기 힘든 클래식 콘서트의 티켓 가격을 5천원으로 책정하고, 입장료 수익금 전액을 어려운 가정의 청각장애 어린이 보청기 지원을 위해 기부합니다. 7월 공연은 21일 일요일 오후 1시입니다. 인터넷 예매가 가능합니다. ( ☞ 바로가기 nanum.mt.co.kr 문의 02-724-77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