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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대통령 서거 다음날 사표낸 검사,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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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주(충북)=이해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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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8.30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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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쇼! 대한민국 ③] "버리고 나니 살아있다고 느낀다" 귀농 검사 오원근

[편집자주] 가난하면 행복하기 어렵지만, 넉넉하다고 꼭 행복한 것은 아니다.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 이제는 더 이상 소득 증가가 행복으로 직결되지 않는다. 삶의 목적이어야 함에도 어느새 삶의 뒤켠으로 밀려버린 '행복'. '행쇼! 대한민국'에서 자신 만의 행복을 찾은 사람들을 만나본다.
'귀농 검사' 오원근 변호사가 직접 만든 '생태 뒷간'을 손질하고 있다/사진=머니투데이 이해인 기자
'귀농 검사' 오원근 변호사가 직접 만든 '생태 뒷간'을 손질하고 있다/사진=머니투데이 이해인 기자
#1. 2009년 5월24일 아침,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정문 앞. 서울지검 오원근 검사는 매일 출근하던 이 건물에 들어서지 못하고 한참을 서있었다. 하늘 높이 솟은 건물을 올려다보며 그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건물 안으로 발을 내딛은 그의 정장 안주머니 속에는 '사직서'라고 적힌 흰 봉투가 들어있었다.

#2. 2013년 8월21일 충북 청주. 뙤약볕이 내려쬐는 밭에 고추와 토마토, 참깨 등 푸릇푸릇한 농작물들 사이로 오원근 변호사가 환하게 미소짓고 있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시간을 내 텃밭을 가꾼다"는 오씨는 지금 농부 겸 변호사로 살아가고 있다. 햇볕에 그을린 구릿빛 팔이 인상적인 오 변호사. 그는 "내려 놓으니 행복하더라"며 밝게 웃어보였다.

검찰 수사를 받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던진 2009년 5월23일. 당시 검사였던 오 변호사는 오랫동안 고민해왔던 문제에 대해 결국 답을 내렸다. '국민 참여재판 1호 검사'라는 명예로운 타이틀까지 갖고 있었지만, '검사'라는 직업은 더 이상 그에게 아무런 의미를 주지 못했다. 이튿날 그는 사표를 던지고 검찰을 떠났다.

오 변호사는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좋지 않은 술버릇과 생활고로 집안 분위기는 늘 우울했다. 그런 그에게 '법조인'은 단 하나의 목표이자 희망이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찬란한 청춘의 대부분을 바쳤다.

그는 "부모님은 매일 같이 농사를 지으시고도 수확물의 절반을 땅 주인에게 바쳐야 했고, 심지어 학교 다닐 돈이 모자라 어머니가 돈을 꾸러 다니시기도 했다"며 "집안을 일으켜 세워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공부했다"고 말했다.

결국 사법고시에 합격해 검찰이 된 뒤에도 그의 노력은 멈추지 않았다. 검찰에서도 유망주로 꼽힌 그는 영국에서 연수를 마친 뒤 서울중앙지검에 발령을 받으면서 '국민참여재판 전담검사'라는 보직까지 얻었다. '법조인'이 되겠다는 목표 하나 때문에 시작한 검사 일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전문성도 생기고, 책임감도 생겼다.

하지만 어느샌가 그의 가슴 속에는 다른 무엇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오 변호사는 "부자연스러운 환경으로 가득 찬 도시 생활과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의 고유한 가치를 포기해야만 하는 조직 생활에 염증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그러던 중 평소 흠모하던 노 전 대통령이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에서 수사를 받던 중 투신으로 서거해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당연히 주위에서는 사직을 말렸다. 동료들은 "조금만 더 찾았다가 지방으로 발령난 다음 그만두면 전관예우 프리미엄을 받을 수 있다. 정 그만두고 싶으면 조금 더 참으라"고 했다. 달콤한 유혹이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고맙게도 아내도 믿어줬다.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해보라"는 아내의 말에 변호사 개업도 뒤로 미뤘다.

이때부터 오 변호사의 '나를 찾는 여정'이 시작됐다. 100일 동안 출가해 행자 생활도 했고, 아이들과 함께 캠핑도 떠났다. 변산공동체에 가서 농사 일도 익혔다. 그러다 결국 선택한 것이 '귀농'이다.

'완전 귀농'을 목표로 삼고 청주로 내려간 그는 우선은 330㎡(100평) 조금 넘는 텃밭을 일구며 농사 일에 대한 경험을 쌓고 있다.

그는 "검사를 그만두는 것에 대해 망설임이 있었지만 막상 그만 두고 나니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며 "버리고 나니 자연스러워질 수 있었고,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귀농 검사' 오원근 변호사의 텃밭에 열린 토마토들/사진=머니투데이 이해인 기자
'귀농 검사' 오원근 변호사의 텃밭에 열린 토마토들/사진=머니투데이 이해인 기자


아직 '완전 귀농' 단계까지 가지 못한 그는 텃밭을 일구는 틈틈이 청주지역 법무법인의 변호사로도 일하고 있다. 또 일용직 노동자 등에게 무료로 법률 상담 등을 해주는 지역 인권단체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오 변호사는 "참다운 행복의 바탕은 흙과 함께 하는 육체 노동"이라며 "나에 대해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그는 "내 생각, 내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자연과 어울려 생활할 수 있는 지금 생활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며 "검사를 그만 둔 것에 후회는 없다"며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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