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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하면서 달려봤니?' 佛 메독마라톤 참가기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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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종=김지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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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9.19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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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도 중심가에서 약 5km정도 떨어진 한 교포의 집에서 눈을 뜬 건 7일 오전 5시였다. 그날 오전 9시30분부터 세계적 와인 산지 프랑스 보르도 메독에서 열리는 와인 마라톤(marathon du medoc)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전날 밤 도착해 시차 적응은커녕 졸린 것도 아니고 깨 있는 건 더더욱 아닌 뒤죽박죽인 상태다. 전날 한국에서 오전 9시 비행기를 타고 11시간 넘게 프랑스 파리로 날아온 다음 약 3시간 뒤 떼제베(프랑스판 고속열차)를 타고 보르도에 도착했다.

한 밤중 숙소에 도착해 저녁은 컵라면으로 때우고 씻는 둥 마는 둥 하고 새벽 한 시께 잠 들었다. 몸은 곤죽이 됐는데 졸린 거 같은데 잠이 안온다. 내일 풀코스(42.195km) 뛰어야 하는데. 한국에선 출근해 있을 시간이니 잠이 올 리가 있나. 가수면 상태로 밤을 꼬박 샜다.

기자도 아바타. 와인에 취기가 올라오면서 가면이 걸리적거려 중간에 버렸다.
기자도 아바타. 와인에 취기가 올라오면서 가면이 걸리적거려 중간에 버렸다.

소믈리에 자격증이 있는 아내 희망에 따라 마라톤 뛰러 보르도까지 날아왔다. 어질어질하니 영 귀찮은데... 신나 죽겠다는 표정의 아내 앞에서 내색할 수도 없고... 24시간 해장국집에서 선지해장국에 밥 반 그릇 뚝딱 해치우고 뛰면 참 좋겠는데.. 어림도 없는 기대다. 결국 또 컵라면이다.

보르도 기차역까지 버스 타고 와서 포이약(Pauillac)역행 열차표 끊는데 한 무리 슈퍼맨들이 들어온다. 마라톤 나가는 선수들이다. 올해 와인 마라톤 테마는 FX. 우리 부부는 영화 아바타의 시퍼런 주인공들 가면에 파란색 상의로 통일 했다. 예상은 했지만 서양 사람들은 격하게 진보적이다. 상대적으로 우리가 너무 없어 보이네...

기차는 오전 7시10분쯤 출발해 1시간20분을 달려 포이약에 도착했다. 대회장까지 20분정도 걸어가 짐 맡기고 화장실 한 번 다녀오고 어쩌고 하다보니 벌써 출발시간. 주변은 온통 외계인 슈퍼맨 괴물 투성이다. 세계에서 모인 8089명의 괴짜들이 뛰기 시작한다. 원래 정원이 8500명인데 많이들 빠졌다.

풀코스가 만만한 건 아닌데 모두 놀러온 사람들이다. 어느정도 뛸 줄 알면서 와인도 좋아하는. 뛰는 동안 50여개 샤토(Chateau, 프랑스어로 성(城). 일반적인 의미로 와이너리)를 지난다. 참가비 78유로(11만원)만 내면 싱싱한 와인을 무더기로 마실 수 있으니 와인 좀 좋아한다는 사람들에게는 꿈의 잔치다.

흔히들 아는 보르도 5대 샤토 중 3개 샤토가 이번 대회 코스에 있었다. 5대 샤토 와인은 한 병에 최소 100만원 단위부터 시작한다. 시음 정도에 불과하지만 값으로 치면 11만원은 그야말로 로또다. 파리에서 5대 샤토 중 하나인 샤토 무통 로칠드(Chateau Mouton Rothschild) 1998년산을 시음(겨우30ml. 작은 우유팩 하나가 200ml)하는 데 32유로(4만8000원)나 들었다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단체 아바타.
단체 아바타.

멀쩡하던 남자들도 예비군복만 입혀놓으면 맛이 가는 것처럼 세계에서 모인 괴짜들은 한시도 멀쩡하게 뛰는 법이 없다. 두 명의 프랑스 사람은 경찰 복장을 하고 와서는 곤봉을 쥐고 호루라기를 불어가며 질서를 잡는다. 포도밭 여기저기서 볼일을 보는 남자들에게 뛰어가 뭐라뭐라 떠들어 댄다. 코미디다.

뼛속까지 유교적 관습이 몸에 밴 아시아 여자들은 꿈도 못 꿀 일인데 서양 여자들은 포도밭 여기저기를 다니며 일을 본다. 어떤 괴물은 그 여자들을 뒤쫓아 가 일을 못보게 방해하기도 한다.

샤토 몇 개를 지나고 술도 점점 오른다. 등급이 가장 높은 그랑 크뤼(Grand Cru)급 와인에 대비해 그랑 크뤼 다음 등급인 크뤼 브루주아(Cru Bourgeois) 샤토를 몇 개 지나면서도 적게 마신다고 했는데 알딸딸하다. 날씨가 약간 흐려 뛰기도 좋고 길 위의 코미디도 즐기고 이거 재밌네.

채 1km도 안되는 사이에 샤토들이 있으니 술이 깰 틈이 없다. 와인 옆에는 항상 오렌지며 빵 같은 안주들이 널려 있다. 아침이 부실해 걱정했는데 전혀 배가 안고프다.

샤토들마다 악단이 연주를 하고 한바탕 춤판이 벌어진다.
샤토들마다 악단이 연주를 하고 한바탕 춤판이 벌어진다.
샤토마다 밴드들이 흥겨운 연주를 해대는데 취기가 오르니 괴짜들은 한바탕 흐드러지게 춤을 춘다. 컷타임 걱정일랑은 할 필요가 없다. 6시간30분 안에만 들어오면 된다.

8000명이 넘는 고주망태들이 마셔대는 와인은 얼마나 될까. 다음날 샤토 투어에서 알게 된 사실인데 샤토들마다 거의 오크통 1개 배럴(와인을 숙성하기 위해 저장하는 나무통)을 쓴단다.

코스 중에 크뤼 브루주아급 와인을 생산하는 샤토 라로즈 트랑투동(Chateau Larose Trintaudon)을 지났는데 이곳 사람 말로 오크통 1개 배럴은 750ml짜리 와인 280병정도란다. 280병씩 50개 샤토면 1만4000병. 참가자 1인당 1.7병꼴이다. 와인이고 뭐고 선두 다툼 벌인다고 무작정 뛰는 선수들을 최소 100명으로 잡으면 양은 더 늘어날 터.

연중 지역 최대 축제이니 한 번씩 쏘는 게 아깝지 않은 모양이다. 서양 어느 매체인가 이 대회를 세계에서 가장 특이한 10개 대회 중 하나로 꼽았다. 그러다보니 유럽에서는 신문 기사도 종종 나오고 TV에도 등장한다. 대회 뛴 선수들이 소비자로 이어지고 브랜드 홍보도 하니 이정도 비용은 별로 부담스럽지 않을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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