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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드쉬 "외환위기 IMF 조치는 DJ 정책과 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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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리(프랑스)=하세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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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1.18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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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캉드쉬 전 IMF 총재 인터뷰… "한국 정부의 '비밀주의'가 상황 악화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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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프랑스 파리의 프랑스은행(BDF) 집무실에서 만난 미셸 캉드쉬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IMF 총재를 맡기 직전 BDF 총재였던 그는 BDF 명예회원이다. /사진=하세린 기자
한국은행이 지난 5일 발표한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3432억달러. 세계에서 일곱번째로 많은 금액으로,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 규모다. 그러나 16년 전 상황은 정반대였다. 달러화가 바닥나면서 '국가부도' 위기에 직면했다.

결국 1997년 11월22일 혹독한 대가를 치르며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이른바 'IMF 사태'다. 수많은 기업들이 문을 닫고, 사람들은 직장을 잃고 길거리로 나앉았다. 대형 은행이 퇴출되고, 25%의 살인적인 고금리가 부과됐다.

16년 전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미셸 캉드쉬 전 IMF 총재를 프랑스 파리 현지에서 본지 기자가 직접 만나봤다.

캉드쉬 전 총재는 "한국 정부가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비밀에 부친 것이 상황을 악화시켰다"며 "한국이 1년만 일찍 IMF를 찾아왔더라도 그토록 초고금리 정책을 사용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캉드쉬 전 총재는 또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 직후 자신에게 보낸 서한에서 "IMF가 제시하는 목표는 지난 30년간 내가 싸워왔던 목표와 일치한다"고 밝혔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캉드쉬 전 총재와의 일문일답.

◇"가혹한 IMF 조치, 한국 정부의 '비밀주의' 때문"
-한국인에게 IMF는 IMF 구제금융 이전과 이후로 시대를 나눌 만큼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당시 IMF의 조치가 상당히 논란이 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로 인해 한국인들은 굉장히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모든 게 불공정하고, 가혹해 보였을 수 있다. 그러나 팩트는 당시 한국 국민들이 진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어떤 진실을 말하는 건가?
▶한국 정부는 IMF에 외환보유액을 공개하지 않았다. IMF 회원국으로서 정보공개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수치를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제수지 불균형이 빠르게 악화됐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의심은 커져만 갔다.

한국 정부와 IMF가 구제금융에 합의한 1997년 12월3일로부터 3주 전인 11월16일 정확한 외환보유액 수치와 정책 자료 등을 요청하기 위해 극비에 한국을 방문했다. 당시 강경식 재정경제원 장관, 이경식 한국은행 총재와 비밀회동 자리가 마련됐다.

우리는 그때서야 비로소 한국 정부로부터 정확한 자료를 받을 수 있었다. 한국은행이 외환보유고를 민간은행에 빌려주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로부터 1주일 뒤에야 스탠리 피셔 IMF 부총재에게 전달됐다.

한국 정부가 IMF에 알리지 않고 보유하고 있던 외환을 사실상 소진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IMF는 이로부터 8~9일 안에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했다.

-당시 상황이 얼마나 급박했나?
▶태국 바트화가 폭락하고 얼마 안 가 홍콩 주식시장이 20% 폭락했다. 인도네시아 외환위기가 터지고 위기가 아시아 전체로 번질 조짐을 보이자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에 대해 우려하기 시작했다. 당시 한국은 3주마다 만기를 연장해야 하는 단기외채를 끌어다 쓰고 있었지만, 이는 국가부도 위기가 닥치기 전까진 전혀 문제가 안 됐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 정부에 외환보유액 수치를 요청했지만 한국 정부는 이를 거부했다. 한국은 특히 1년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면서 대단한 자부심을 갖게 됐다. '(선진국들의 모임인) OECD 가입국'이라며 자료 공개를 거부했다. 이러한 태도는 외국인 투자자들을 더 불안하게 할 뿐이었다. 그들도 나름대로의 자료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11월10일쯤 IMF가 한국에 먼저 손을 내밀었다. "IMF 구제금융을 받으라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외국인 투자자들의 우려가 크니 그들을 설득하기 위한 기술적 분석이 필요하다면 제공해줄 수 있다"고 했다. 한국 정부는 이때도 우리의 제안을 거부했다.

그러나 상황은 계속 악화됐다. 한국을 극비에 방문하기로 결정한 건 이때였다. IMF 협정문에도 명시돼 있는 감독권한을 발동한 것이다. 한국 경제정책 책임자들과 만나 성탄절 이전에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성탄절 당일 한국이 파산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11월 21일 밤 10시15분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19층 대회의실. 임창열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은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 공식 신청을 발표했다. /표=강기영 디자이너
11월 21일 밤 10시15분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19층 대회의실. 임창열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은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 공식 신청을 발표했다. /표=강기영 디자이너
한국은행은 지난 5일 현재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3432.3억달러로 전월말(3369.2억달러) 대비 63.0억달러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세계 7위 수준으로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 규모다. /표=강기영 디자이너
한국은행은 지난 5일 현재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3432.3억달러로 전월말(3369.2억달러) 대비 63.0억달러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세계 7위 수준으로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 규모다. /표=강기영 디자이너
◇"김대중 전 대통령과 IMF 목표 일치"
-IMF의 조치가 너무 가혹했다는 평가가 많다.
▶한국 정부가 미리 도움을 요청했다면 처방은 훨씬 더 순조로웠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기보다는 미국과 일본에 가서 비밀리에 대출해달라거나 대출기한을 연장해달라고 요청하는 방법을 택했다. 미국과 일본이 거절을 하고 나서야 한국은 IMF로 왔다.

물론 한국은 당시 대선 기간이었고 강도 높은 개혁을 요구하는 IMF 구제금융 프로그램은 인기가 없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IMF에 한국 상황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했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IMF는 한국 문제에 훨씬 더 빨리 대응했을 것이고, 극심한 위기 속에서 행동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수많은 실업자가 발생하고, 중산층이 무너졌다.
▶한국의 중산층이 무너진 것은 IMF 때문이 아니다. 정경유착, 관치금융 등 그동안 한국의 낡은 경제적 모델이 종료될 시점이 온 것이었고, 이 시기가 IMF 개입시기와 맞물렸을 뿐이다. 당시 한국 사회에 끼친 IMF의 영향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에 구제금융을 제공한 것은 IMF 역사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

팩트는 한국의 경제 모델이 바뀌어야 했다는 점이다. 이는 한국이 1996년 OECD에 가입하면서 기구가 제시했던 개혁조건과도 일치하는 것이었다. 한국 경제의 비밀주의, 독점구조, 재벌문제, 정경유착 등은 변해야 했다.

물론 IMF가 한국 사회의 이정표였다면 좋았겠지만, 사실 한국 사회의 진짜 이정표는 바로 김대중 대통령의 정책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정책이라니?
▶당시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은 1997년 12월18일 대선에서 승리한 직후 내게 한 통의 서한을 보냈다. 그는 "이전에 약속했듯 IMF의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이행할 것"이라며 "IMF가 제시하는 목표가 지난 30년간 내가 싸워왔던 목표와 일치한다(fighting for the same objectives)"고 했다. IMF가 제시했던 프로그램과 김 당선인이 구상하고 있던 정책은 강한 연관성이 있었던 것이다.

김 전 대통령과는 개인적으로도 여러 번 만났다. 그의 용기와 통일에 대한 비전을 존경했다. 그가 당선인 신분이었던 시절 자택을 방문해 서로의 눈을 마주 보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이때 한국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합의했고, 그는 이를 실행했다.

-대량실업사태도 벌어졌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해고된 가슴 아픈 사실에 대해 알고 있다. 그러나 한 사회가 대량실업을 겪게 되는 이유는 그 사회가 (진작에) 해결했어야 할 문제를 너무 오래 끌어서다. 경제가 제때 재조정되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일자리를 유지한 채 경제순환이 원활히 이뤄지지 못했던 것일 수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미루면 미룰수록 위기에 대한 처방은 더 혹독해질 수밖에 없다. 환자가 발병 초기에 의사를 찾아오면 아스프린 복용 등 간단한 방법으로 병을 고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버리면 수술을 해야 한다.

이 같은 조치를 하지 않는 것은 한국을 국가부도라는 더 큰 위기에 빠뜨릴 뿐이었다. 그 결과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갑작스런 고강도 개혁이었다. 좀 더 시간을 갖고 개혁을 추진할 수는 없었나?
▶물론 가능한 일이었다. 한국이 1년만 일찍 IMF를 찾아왔다면 말이다. 그토록 초고금리 정책을 사용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외국 투기세력이 없었을 테니까. 당시 한국 정부의 재정도 균형상태에 가까웠기 때문에 그토록 강도높은 긴축도 필요 없었을지 모른다.

물론 취약했던 은행 시스템, 그리고 재벌개혁 등과 관련해 OECD가 권고했던 조치들은 여전히 개선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토록 가혹한 환경에서 개선해야 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한국은 훨씬 더 순조로운 방법으로 개혁을 이뤄낼 수 있었을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당시 IMF가 한국에 대해 갖고 있었던 가장 큰 오해는 뭐였나? 반대로 한국이 IMF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던 것은?
▶IMF는 당시 한국의 외환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는지에 대해 간과하고 있었다. 한국이 국가부도 위기에 이르기까지 외환보유액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지 못했고, 이후 전장에서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와 같은 역할을 해야 했다.

한국의 경우 '우리는 OECD 가입국이다'라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다. 'OECD 가입국은 IMF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는 편견에 휩싸여 있었다. 이 때문에 한국은 훨씬 더 일찍 시작할 수 있었던 개혁을 버틸 수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미뤄두는 실책을 범했다. 문제가 터지자 한국 정부 관계자들은 IMF가 아닌, 미국과 일본의 투자자들을 찾아다니면서 시간을 낭비했다.

미셸 캉드쉬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에겐 고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기억이 강하게 남아있는 듯했다. 그는 사진을 찍는 동안 기자에게 '김 전 대통령이 한국인들에게 어떤 대통령으로 기억되는가'에 대해 물었다. /사진=하세린 기자
미셸 캉드쉬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에겐 고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기억이 강하게 남아있는 듯했다. 그는 사진을 찍는 동안 기자에게 '김 전 대통령이 한국인들에게 어떤 대통령으로 기억되는가'에 대해 물었다. /사진=하세린 기자
◇"한국, 앞으로 국제사회 역할 기대"
-한국이 외환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했다고 평했는데?
▶IMF는 한국에 자동안정화장치를 도입해 1998년 25%의 고금리 정책을 실행했다. 한국은 이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외환위기에서 벗어났다. 물론 1998년엔 -6%의 역성장을 기록했지만, 이듬해엔 11%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외환보유고도 늘어나기 시작해 2년 만에 2배가 됐다.

IMF의 개혁이 진행되는 동안 한국에선 진정한 시장경제가 도입됐다. 나는 한국이 이후 새롭게 도입된 조치들을 단 한번도 변경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이 성공적으로 IMF 조치들을 이행했던 것이다.

-한국경제에 대한 전망은?
▶현재 한국이 이룩한 경제성장을 보면 기쁘다. 한국은 그 어떤 국가보다 외환위기를 빠른 시간 안에 성공적으로 극복했고, 이젠 G20(주요 20개국) 국가가 됐다. 2010년 G20 의장국으로서 국제행사도 성공리에 치렀다.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G20 서울포럼에서 한국이 전세계 최빈국을 지원하는 방안을 발표한 것이 매우 성공적이었다. 한국이 세계경제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13년간 IMF 총재 자리를 지켰다. 퇴임 후 삶을 어떻게 즐기고 있나.
▶사실 IMF 총재로 일할 때만큼이나 많은 일을 하고 있다. (기자에게 건넨 '팔레-로얄 이니셔티브' 보고서를 가르키며)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자료가 바로 여기 있지 않은가. 현재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과 함께 '아프리카프로그레시브패널'(APP)로 활동하며 아프리카 문제와 관련한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딸이 제작한 남북한 관련 다큐멘터리가 곧 프랑스 TV에 방영된다. 남북에서 공동촬영하면서 통일에 대해 남북한 사람들이 각각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다룬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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