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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탈의 상처 '적산가옥', 이 또한 역사가 물려준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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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릉도(경북)=김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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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1.18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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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주택을 찾아서]<7>울릉도 도동리 구 이영관 가옥

[편집자주] 국토교통부가 2015년부터 100년 주택인 '장수명 아파트' 인증제 도입에 나선다. 유럽에선 100년 주택 찾기가 어렵지 않지만 고속성장을 하며 재개발·재건축을 해온 국내에서는 100년 넘은 집을 찾기가 쉽지 않다. 주택이 100년 이상을 버텨내려면 유지·관리비도 만만치 않다. 100년을 버텨온 주택을 찾아 역사와 유지·관리 노하우, 어려움 등을 알아본다.

- 일제강점기 때 지은 2층 목조주택
- 다다미방·덧창등 원형 그대로 남아

- 개발보다 보존… 문화재청에 인계
- '울릉역사문화체험센터'로 재탄생


사진=김유경 기자, 그래픽=강기영 디자이너
사진=김유경 기자, 그래픽=강기영 디자이너

 떠오르는 새해를 가장 먼저 맞이하는 울릉도. 하지만 2014년 새해맞이는 외지인에게 쉽게 내주지 않았다.

 지난달 30일 새벽 5시15분, 서울역에서 첫 KTX를 타고 동대구역으로 향했다. 오전 7시30분 버스를 타고 경북 포항으로 출발했고 9시50분 울릉도행 배를 탔다. 오후 2시 울릉도 선착장에 내렸다. 집을 나와 꼬박 9시간이 걸렸다.

 문제는 해상날씨였다. 새해맞이에 나선 외지인들은 언제 배가 뜰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당초 계획보다 하루 앞선 2013년 마지막날 오후 3시 배를 타고 포항으로 밀려나왔다. 울릉도는 그렇게 사람의 계획대로 들어가고 나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독도박물관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울릉 도동리 / 사진=김유경기자
독도박물관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울릉 도동리 / 사진=김유경기자

 울릉도가 3무(도둑·공해·뱀) 5다(물·미인·돌·바람·향나무)의 섬이라고 하는데 도둑이 없는 이유가 바로 이곳에선 도둑질을 해도 이처럼 쉽게 빠져나가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일본은 기록상 1379년부터 울릉도를 호시탐탐 침략해 토산물을 약탈해갔다. 1696년에는 안용복 일행이 울릉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백기주 태수와 담판해 울릉도가 조선 영토임을 인정받고 돌아왔을 정도다.

 일제강점기(1910~1945년)에는 일본인들이 울릉도로 본격적으로 이주했다. 당시 1192명, 332가구가 이주한 것으로 기록됐다. 울릉군청에 따르면 2013년 말 울릉도에는 1만524명, 5400가구가 거주 중이다. 이중 외국인이 100여명에 그치는 점을 감안하면 당시 일본인들이 대거 이주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일본의 이주민이자 산림벌목업자였던 사카모토 나이지로도 1910년대에 울릉 도동리 도동1길 27에 집을 지었는데 당시 희귀목이던 솔송나무, 규목, 삼나무를 사용해 건축했다.

구 이영관 가옥 2층 다다미방 / 사진=김유경기자
구 이영관 가옥 2층 다다미방 / 사진=김유경기자

 해방 이후 이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이상인 전 울릉문화원장(71)은 "사카모토 나이지로가 고리채업을 해서 벌목사업을 했는데 일본에도 수출하고 경남 울산, 전라도 쪽으로도 목재를 반출해 거부가 됐다"고 말했다.

 울릉도에 그만큼 나무가 많다는 얘기다. 울릉도의 전통가옥이 너와집인 이유다. 북면 나리동에는 1940년대에 건립된 너와집이 보존되는데 통나무로 우물 틀처럼 쌓아올려 만든 벽체에 소나무·굴피나무 등의 너와로 지붕을 이었다. 이 너와집은 울릉도에서도 유일해 그 가치가 높아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됐다.

 그럼에도 울릉도에서 오래된 가옥은 너와집이 아니라 일본식 집이다. 일본식 가옥도 대부분 해방 이후 철거되거나 변형된 것으로 알려졌다. '구 이영관 가옥' 역시 사라질 뻔했다. 100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되는 구 이영관 가옥은 울릉도 도동 여객선터미널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여서 자리를 탐내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상인 전 울릉문화원장
이상인 전 울릉문화원장
 이상인씨는 "숙부(이영관)에게 고마움을 느낀다"며 "그 집을 헐고 새로 건축할 목적으로 집을 사들이려는 사람이 많았는데 돌아가시기 전 집을 보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고 밝혔다.

 이영관씨는 문화재청에 문화재로 인수해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여러 번 보냈고 거절당하자 문화재로 지정된 전라도 일본가옥을 벤치마킹해 다시 신청, 재조사를 이끌어내 결국 문화재로 지정받게 했다.

 2층의 다다미방과 접객공간인 쇼인주쿠리, 비바람을 막기 위해 설치한 덧창인 아마도 등이 비교적 원형 그대로 남아 일식가옥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는 게 2008년 이 집을 인수한 문화재청의 평가다.

 특히 근대주택사의 연구자료뿐만 아니라 당시 일본의 울릉도 수탈 역사를 보여주는 자료로 인정받아 2006년 3월 등록문화재 제235호로 등록됐다.

 이씨는 "1945년 해방과 동시에 주민들이 적산가옥을 차지할 수 있었다"며 "당시 아버지(이영택)가 지역 실세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래서 사카모토 나이지로의 집을 얻게 된 거같다"고 회상했다.

 이씨가 세살이었을 때다. 이영택씨가 그 집에서 거주한 건 2년이다. 건강이 좋지 않아 이씨가 다섯살 됐을 때 작고했다. 어머니가 생활을 위해 '포항여관'을 열었고 이씨가 9세가 될 때까지 여관을 운영했다.

 이씨는 "어머니가 4남매를 홀로 키우셨다"며 "공무원과 경찰관들이 묵을 때 내가 2층 다다미방 이불 아래 유담포(사기그릇에 뜨거운 물을 넣은 일본식 난방기구)를 넣어주는 심부름을 한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이어 "울릉도는 바람이 센데 다다미방에는 우풍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울릉도 도동리 구 이영관 가옥 2층에 있는 손으로 만든 유리창. 창문을 통해 보는 창밖의 풍경이 다른 유리창과 달리 얼룩덜룩하게 보인다. / 사진=김유경기자
울릉도 도동리 구 이영관 가옥 2층에 있는 손으로 만든 유리창. 창문을 통해 보는 창밖의 풍경이 다른 유리창과 달리 얼룩덜룩하게 보인다. / 사진=김유경기자

 문화재청이 사들이기 직전까지 54년간 집주인이었던 셋째 숙부 이영관씨가 울릉도에 온 것은 6·25 한국전쟁 때다. 피란을 왔다가 해산물사업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안착했다. 숙부가 집을 인수한 건 이씨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머니가 외할머니 계시는 친정(서면 태하리)으로 가서 살고 싶다고 해서다.

 이상인씨는 계속 숙부와 같이 살았다. 그는 "중학교가 도동에 있어서 졸업할 때까지 숙부 집에서 같이 살았다"며 "고등학교는 대구로 유학을 나왔지만 졸업하고 군 제대 후에는 다시 울릉도에서 숙부랑 사업을 같이 했다"고 말했다. 숙부의 사업이 번창해서 20여년 동안 사업을 같이 했다.

 구 이영관 가옥은 대지면적 506㎡, 연면적 188.02㎡의 일본식 2층 목조주택이다. 이씨에 따르면 2008년 문화재청이 7억5000만원 정도에 인수했다. 시세보다 못한 가격이었을 것이라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100년의 역사적 가치를 제하더라도 시세는 10억원을 웃돌았겠지만 보존을 위해 저가에 넘겼다는 것.

 울릉도에는 부동산중개업소가 없어 확인이 어렵다. 알음알음 거래가 이뤄지는데 포항에서 배가 들어오는 도동의 경우 3.3㎡당 3500만원을 훌쩍 넘는 등 서울의 강남만큼 비싸다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구 이영관 가옥을 옆집처럼 재건축했다면 상당한 수익을 거둘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구 이영관 가옥은 현재 문화유산국민신탁에서 울릉역사문화체험센터로 운영한다. 음료를 포함한 관람료가 4000원인데 전액 문화유산보전기금으로 사용된다. 포항으로 가는 여객터미널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여서 출항시간을 기다리며 차 한 잔 마시기에는 최적의 장소다.

울릉도 도동리 구 이영관 가옥 1층에서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울릉역사문화체험센터 매니저 허순희 씨 / 사진=김유경기자
울릉도 도동리 구 이영관 가옥 1층에서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울릉역사문화체험센터 매니저 허순희 씨 / 사진=김유경기자

 울릉역사문화체험센터 매니저로 일하는 허순희씨는 3년 전 관광을 왔다가 울릉도에 반해 식구들과 함께 안착했다. 허씨는 "일본인들이 침략한 사실이 없다고 발뺌할 수 있는 만큼 적산가옥이라고 철거할 게 아니라 역사적 증거물로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울릉도 도동과 저동에는 여전히 적산가옥이 많이 남아있지만 원형 그대로 보존돼 문화재로 등록된 가옥은 구 이영관 가옥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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