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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 : 녹턴 4번, 미소 속의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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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민영 한국무역협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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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3.22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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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TV]Nocturne No.4 in F-major, Op.15 no.1

[편집자주] 김민영의 '딱클래식' - 피아노 치는 글로벌 마케팅 전문가, 한국무역협회 전문위원 김민영이 딱 찍어 초대하는 클래식 음악.
이 곡을 썼던 1931~1932년 당시의 쇼팽은 어떤 상태였을까? 1830년 말 폴란드에서 발생한 독립혁명과 이듬해 바르샤바의 대 러시아 항복. 이후 러시아 치하에서의 조국의 참상, 가족에 대한 걱정, 독립전쟁에 동참하지 못한 데에서 오는 후회와 자책감, 변변한 고백조차 못하고 헤어진 첫사랑 등. 이런 삶이라면 그 누구라도 심적으로 암울하지 않았겠는가!

파리로 옮겨온 이후로 쇼팽은 폴란드의 편에 선 파리의 분위기에 고무되고, 사교 살롱의 열광적인 반응 때문에 물질적으로도 풍요로웠다. 하지만 그의 손은 여전히 1830년 10월 11일 조국에서의 마지막 연주회 (피아노 협주곡 E-minor 초연) 후에 수여 받은 폴란드의 흙이 담긴 은잔을 도끼자루 쥐듯 잡고 있었다.

1830년 11월 2일 쇼팽은 이 은잔을 손에 쥐고 향하는데, 일주일 후 폴란드에서 독립투쟁이 발발하였다는 소식을 듣는다. 하지만 돌아오지 말라는 아버지의 편지를 받고 파리에 남은 쇼팽은 이후 하루도 마음이 편치 못했다.

쇼팽 : 녹턴 4번, 미소 속의 아픔

1831년 11월 봉기 후 바르샤바에서 러시아군에 납치당하는 폴란드 어린아이들

폴란드와 반대 견해를 취하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쇼팽은 작품을 출판조차 하지 못한 채 우울한 나날을 보내다 결국 빈을 떠난다. 독일 뮌헨 필하모니에서 성공적인 연주를 마친 후 1831년 9월 18일 슈투트가르트에서 폴란드의 항복 소식을 접한다. 이때 쇼팽은 얼마나 괴로웠는지 일기에 죽고 싶다고 썼다. 그의 절망감이 어떠했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이후 당대 음악의 도시 파리로 옮겨간 쇼팽은 음악적으로 인정받고 물질적으로도 풍족한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되지만, 마음은 늘 조국 폴란드를 향했다. 이 시기에 쇼팽은 리스트, 멘델스존, 힐러, 프랑숌 등과 같은 음악가들과 교류하고 우정을 쌓으면서 마음의 위로를 받는다.

바로 이 시기에 녹턴 4번 F-major Op.15 no.1은 화창한 봄날 오후, 어여쁜 숲길을 거닐 듯 담담하게 시작하는데 첫 서너 마디만으로도 그 화사함과 부드러움에 가슴이 설렌다. 만지면 묻어날 듯한 파란 하늘에 하얀 느릿느릿, 느리게 노래하듯(Andante cantabile) 숲길을 걸으며 연애편지를 읽는 기분이다.


Nocturne in F-major Op.15 no.1 시작부분
쇼팽 : 녹턴 4번, 미소 속의 아픔


그러다가 갑자기 잔잔한 숲길에 정열의 태풍이 몰아친다(Con fuoco). 더블 노트(double notes, 배온음표)가 작정을 하고 백건과 흑건을 질주한다. 태풍에 연애편지는 찢겨서 손가락 사이로 빠져 허공으로 날아가고 뭉게구름은 한 순간에 산산조각이 난다. 조국 폴란드를 짓밟은 외세에 대한 분노와 저항이 폭발하는 듯하다. 연주자는 페달을 어떻게 밟아야 이 태풍의 리듬을 깨뜨리지 않을지 민감해지지 않을 수 없다.

Nocturne in F-major Op.15 no.1 중간부분
쇼팽 : 녹턴 4번, 미소 속의 아픔


그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이내 처음의 담담함으로 돌아가 마치 사랑을 속삭이다가 달콤한 잠에 빠지는 듯 들리기도 하고, 어쩌면 외세에 굴복한 조국의 참상에 대한 슬픔과 괴로움으로 절망한 나머지 지쳐 잠드는 듯도 하다.


녹턴 Op.15의 No.1~3 세 작품은 괴테의 가 출간된 이듬 해인 1833년 12월에 파리와 라이프찌히에서 출간되었는데 곧 이어 런던에서도 출간되었다. 아마도 괴테가 쇼팽의 이 녹턴을 들었다면 메피스토펠레스(Mephistopheles)의 유혹이라고 평했을지 모를 만큼 녹턴 Op.15 은 영감 가득하고 가히 천재적이다.

쇼팽은 이 세 곡을 그의 친구 힐러(Ferdinand von Hiller, 1811~1885)에게 헌정하였다. 힐러는 앞서 언급하였던 쇼팽이 파리에 와서 교제하며 우정을 쌓았던 리스트, 멘델스존, 프랑숌 등과 함께 쇼팽과 동시대 음악가이자 친구였다. 1830년대 초반의 힐러는 쇼팽과 마찬가지로 파리에 갓 이주 온 독일 프랑크푸르트 출신 작곡가였는데, 쇼팽과 힐러가 멘델스존의 집에 놀러 갔을 때 멘델스존은 이 둘을 빠리지앵들로부터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친구들이라고 그의 가족에게 소개하였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쇼팽과 힐러가 얼마나 가까운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친구였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쇼팽이 그의 운명의 연인 조르주 상드(George Sand, 1804~1876)를 사교 살롱에서 처음 본 날도 힐러는 쇼팽 옆에 있었는데, 상드에게 전혀 매력을 느끼지 못한 쇼팽이 힐러에게 “저 여자, 정말 여자 맞아?”라고 귓속말을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쇼팽 : 녹턴 4번, 미소 속의 아픔

Ferdinand von Hiller

1830년대 초반 힐러는 파리의 코론 음악원(Choron’s School of Music)의 작곡 교수 자리를 잡았는데, 1843년에는 멘델스존의 뒤를 이어 라이프찌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Leipzig Gewandhaus Orchestra)의 지휘자를 역임하기도 하였다.


아쉽게도 힐러는 오늘날 잊혀진 음악가의 한 사람이지만 쇼팽, 멘델스죤, 리스트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쇼팽은 폴란드의 고향 친구에게 1831년에 쓴 편지에서 힐러에 대해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힐러는 엄청난 재능을 가진 친구로 훔멜*에게 재능을 사사 받았고, 사흘 전 그의 협주곡과 심포니는 큰 반응을 불러일으켰어. 힐러는 베토벤과 같은 선상에 있는 친구야, 더 시적이고, 열정과 영감으로 가득하지.” (*훔멜 Hummel 1778~1837: 트럼펫 협주곡 마장조로 유명한 오스트리아의 피아니스트, 지휘자, 작곡가) 쇼팽이 힐러에게 녹턴 Op.15 세 곡을 헌정한 것은 리스트에게 여러 곡을 헌정하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녹턴 Op.15의 2번만큼 자주 연주되는 편은 아니지만, 그 못지 않게 매력적인 Op.15의 1번은 림스키코사코프(Rimsky-Korsakov)의 제자인 러시아의 작곡가 알렉산드르 콘스탄티노비치 글라주노프(Alexander Konstantinovich Glazunov, 1865-1936)가 1893년에 쇼팽의 폴로네이즈 Op.40 No.1, 마주르카 Op.50 No.3, 타렌텔레 Op.43과 더불어 교향곡으로 재탄생시킨 쇼피니아나 모음곡(Chopiniana Suite Op.46)에 수록된 녹턴이기도 하다.

쇼팽 : 녹턴 4번, 미소 속의 아픔

쇼팽의 절친 첼리스트 오귀스트 프랑숌(1808~1884)
또한 쇼팽의 가까운 친구 오귀스트 프랑숌(Auguste Joseph Franchomme, 1808~1884: 프랑스 첼리스트, 작곡가)은 이 곡을 첼로 곡으로 옮기기도 하였다. 프랑숌은 쇼팽이 파리에 정착하는데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두 사람은 절친한 친구로 발전하여 1832년에는 피아노와 첼로를 위한 대2중주곡(Grand Duo concert for piano and cello)을 둘이서 함께 쓰기도 하였고, 쇼팽이 마지막으로 대중 앞에 섰던 1848년 파리 공연에서는 쇼팽이 작곡하여 프랑숌에게 헌정하였던 피아노와 첼로를 위한 소나타를 초연하기도 하였다.


천재 예술가들이 서로의 곡을 다른 악기로 연주하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쇼팽의 우울하고 목가적인 서정시를 첼로가 묵직하고 진중한 톤으로 이끌어가는 것은 감동 그 자체이다.

녹턴 Op.15의 세 곡은 쇼팽의 여타 녹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3부 반복 형식(ternary reprise form)으로 구성되었다. 느리고 노래하듯 달콤한 첫 번째 주제, 급작스럽고 강하게 변속하는 곡 중간의 강렬한 두 번째 주제, 그리고 첫 번째 주제가 원래의 템포로 그러나 사뭇 다른 톤으로 반복되는 목가적이고 아름다운 마무리까지.


특히 Op.15 No.1은 곡 중간의 변속 부분(con fuoco)이 놀라리만치 급작스럽고 격렬해서 평화롭고 시적인 앞 부분과 극명한 대조를 보여준다. 마치 맑은 하늘에 날벼락이 치듯 말이다. 쇼팽은 이런 3부 형식을 자주 사용했는데, 이 형식은 오늘 날 가요나 팝과 같은 대중 음악에서는 전형적인 형식이다. 당시 살롱 음악의 대중성을 반영하는 듯 하다.


연주에 있어서 이 곡은 첫 번째 주제의 연주에 왼손 엄지, 검지, 중지의 위치가 조금씩 그러나 단호하게 움직이며 다양한 화음을 만들어내는 잔잔한 소리의 맛이 있다. 그리고 중간의 격정적인 대목에서는 양손을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강풍을 휘어잡는 듯한 맛이 더해진다. 어떤 울분이 폭발하는 듯한 미묘한 감정이 깊게 베어있음을 느낀다.


더욱 미묘한 것은 3부에 이르러서이다. 3부는 1부의 반복이지만 1부의 화사함이나 설렘과는 다른 우울하고 슬픈 감정이 슬금슬금 우러나온다.

어쩌면 1부의 화사함이나 평화로움은 2부의 격정을 거쳐 3부에 이르러서야 숨기고 있던 서글픔을 고백하는 듯 하다. 참고 있던 눈물이 한 순간 설움에 북받쳐 더 이상 숨지 못하고 주르륵 흐르듯 말이다. 특히 속도를 갑자기 줄였다가(Ritenuto) 다시 첫 번째 주제로 이어 들어가자면 설명할 수 없는 서글픔이 더해진다.

외지에서 홀로 떨어져 나와 러시아에 짓밟힌 조국의 소식을 무력하게 접할 수 밖에 없었던 청년 쇼팽의 분노와 절망 그리고 농도 짙은 슬픔이 긴 여운을 남긴다. 사실 이 서글픈 감정은 시작부터 끝까지 곡 전체를 관통한다. 미소 짓는 듯 하지만 가슴 찢어지는 절망의 아픔이 거친 호흡을 겨우 진정시키며 흑건과 백건 사이를 넘나든다.


▶Valentina Lisitsa의 연주



쇼팽 : 녹턴 4번, 미소 속의 아픔



☞ 본 기사는 딱TV (www.ddaktv.com) 에 3월 22일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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