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자의 슬픔' 어루만지는 팽목항의 '큰언니'

세월호 여객선 침몰 사고 15일째인 30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한 실종자 가족이 눈물을 흘리며 자녀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뉴스1

어느덧 16일째. 야속한 시간이 흐른다. 해가 뜨고 해가 지고. 그렇게 하루, 한 시간, 1분, 1초가 흐를 때마다 팽목항의 속은 타들어간다. 사고 후 흐르는 시간은 내 가족, 내 아이를 가슴에, 바다에 묻은 시간이다. 그 속은 누구도 헤아릴 수 없다.


이들을 어루만지는 사람이 있다. 김수옥씨(55·여)에게만큼은 실종자 가족들이 마음 문을 연다. 김씨는 팽목항에서 '사랑의 두부차'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김씨도 7년 전 불의의 교통사고로 17세 아들을 잃었다.

◇"아무도 내 마음 모른다"

가족을 잃고 찾지도 못한 마음은 갈 데가 없다. 실종자 가족들은 아침과 저녁 가족대책본부에서 수색·구조 회의를 하고 가족 천막숙소에 모여 이야기하거나 TV를 보며 매일을 견뎌낸다.

사고 나흘째인 지난 19일 두부차에 한 엄마가 찾아왔다. 내내 굶은 이 엄마는 나흘 만에 처음으로 두유를 삼켰다. 김씨는 손을 꼭 잡으면서 귓속말로 "먹고 힘내라. 나도 7년 전 아들을 하늘나라에 보냈다"고 말했다. 이 엄마는 김씨의 품에 안겨 30분 간 참은 눈물을 쏟아냈고 언니동생 사이가 됐다. 김씨와 엄마들과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팽목항의 밤엔 부모들의 한(恨)이 터져 나온다. 사흘 전엔 알고 지내던 한 엄마가 새벽 3시쯤 숙소를 뛰쳐나와 길거리에 털썩 주저앉더니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김씨는 "언니랑 울자. 우리 실컷 울자"라며 끌어안고 함께 울었다. 남편도, 경찰도 달래지 못했지만 김씨의 위로는 통했다. 김씨는 새벽 4시까지 이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줬다.

"아이를 생으로 죽이고 어떻게 살 수 있냐는 거지. 못해준 것만 생각나고. 전화 왔을 때 뛰어내리라고 말하지 못했다는 죄책감까지. 살 가치가 없대요, 아이가 죽어서 엄마로서 살 가치가 없대. 난 충분히 이해가 가요."

아빠들도 아프긴 마찬가지다. 감정표현에 서툰 아빠들은 삭였던 슬픔을 한꺼번에 터뜨린다. 한 아빠는 이틀 전 새벽 2시40분쯤 벌떡 일어나서 팽목항을 정신없이 거닐다가 맞은편 끝으로 내달렸다. 아빠는 "애한테 전화 왔다, 애가 온다고 그랬다"고 소리쳤다. 김씨는 "이모가 기다리겠다"며 아빠의 눈물을 닦았다.

부모들은 처음엔 기적을 믿었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김씨는 지난 주말 며칠 간 폭풍우가 쏟아지고 구조도 답보상태에 이르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고 했다.

요즘 실종자 엄마들 사이엔 화장이 유행이다. 어떤 엄마가 2~3일 간 화장을 한 후 아이 시신을 찾아서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엄마들은 화장을 하고 아빠들은 이발을 하러 간다. '아이만 찾을 수 있다면 발가벗고 춤이라도 추겠다'는 이들의 마음은 쉽게 헤아리기 어렵다.

세월호 침몰 사고 14일째인 29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한 시민이 '엄마, 아들 사랑해 미안하구....'라고 적힌 노란 리본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스1

◇남겨진 자의 슬픔 "아이들의 빈자리 어떻게 해야 해…"

부모들은 남겨진 날들이 걱정이다. 16일 동안 실종자는 302명에서 3분의 1로 줄었다. 200여명의 가족이 사랑하는 이의 주검을 안고 팽목항을 떠났다. 부모들은 아이를 바다에서 끌어올려 장례까지 치른 후 남을 수많은 날들, 허전함이 무엇보다 두렵다.

"다음 단계가 두렵다고 말하더라고. 빈자리, 그걸 어떻게 채워갈 수 있을지. 집에 가면 소파에서 만날 껑충껑충 뛰던 아이, '엄마 간식 주세요 뭐 해주세요' 했던 아이들이 없잖아요. 그게 제일 가슴 아픈 거야."

부모들은 씩씩하게 살아가는 김씨에게 어떻게 극복했냐고 묻는다. 한순간 삶의 방향을 잃은 이들에게 가장 절실한 문제다. "나도 내 애랑 닮은 애만 있으면 끝까지 따라갔어. '아줌마 누구세요?' 하면 아차 했지. 아직도 불 켜고 자. 깜깜하면 무서워서 애가 못 찾아올까 봐. 미치지 뭐. 미치지 않으면 자식 잃고 살 수 없어."

김씨는 억지로 아픔을 극복하라고 하지 않는다. 대신 함께 울어주고 이해해준다. 아이의 흔적을 억지로 지우라고도 하지 않는다. 육군 부사관 출신인 김씨도 아이의 책상과 신발, 소지품을 반년 간 그대로 뒀다. 너덜너덜해진 아들 사진을 아직도 매일 들여다본다. 하지만 김씨는 지금 누구보다 바쁘고 밝게 살고 있다.

세월호 침몰 13일째인 28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사고해역을 보며 오열하고 있다. /사진=뉴스1

"나도 우울증이 와서 약 먹고 그랬는데 애들 먼저 보낸 언니들 만나면서 위로가 됐거든요. 지금 이들에게 필요한 건 우리 같은 사람들이에요.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아픔을 아니까. 마음의 치유는 의사나 심리학자가 하는 게 아니에요."

김씨는 단 한 사람이 소중하다. 언제든 누구나 와서 편히 쉴 수 있도록 24시간 두부차에서 뜨끈한 순두부와 두유, 곰국을 준비해 대기한다. 마음 허한 부모들과 해장라면도 같이 먹어준다.

"지금도 아들이 얼마나 보고 싶은지 알아요? 이 사람들은 어떻겠어요. 난 내 아픔 때문에 이들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어서 왔어요. 마음을 열어주니 내가 고맙죠. 팽목항을 떠난 뒤에도 계속 언니동생으로 지낼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