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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셧다운'의 역사는 반복된다…연암 박지원을 '중독'시킨 그 게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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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5.29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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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TV]디지털 세대는 모르는, 거의 모든 게임의 역사

[편집자주] '주사위 마니아' 다콘 - 어렸을 때만 즐겼던 주사위와 보드 게임, 그 속에 숨겨진 재밌고도 은밀한 역사를 읽어드리는 아날로그 오타쿠입니다.
게임 '셧다운' 제가 전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다는 주장은 틀렸다. 조선시대 석학 연암 박지원이 '게임중독'이었다는 사실은 아시는지? 기원전부터 인류를 중독에 빠뜨렸다는 그 게임, 그리고 현대에 역사를 반복하고 있는 '셧다운'의 기원도 짚어본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게임을 우리는 현대에도 즐기고 있다는 걸 아시는지? 그 역사를 되짚어보자.

매머드를 사냥하던 시대를 지나 조금은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면서 인류는 숨통이 트였고 이전에 맛보지 못한 ‘잉여로움’ 을 만끽했다. 사냥에 도움이 안 돼 쓸모없는 사람들로 여겨졌던 비리비리한 ‘덕후’들은 기발한 발상의 도구를 만들기 시작했고, 의식주의 레벨이 상승하게 되니 이를 문명이라 한다.

묘미 있는 규칙을 만들어 재미있게 놀기 위한 궁리, 즉 게임도 문명과 함께 태어났다. 게임에 관해 깊이 연구하는 사람들이 인정받는 분위기는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이전에도 있었다. 서양에서는 체스, 동양에서는 바둑을 잘하는 사람들이 꽤 대접받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다.

↑ 고대 수메르 유적
↑ 고대 수메르 유적


현재까지 발견되는 가장 오래된 게임의 흔적은 기원전 2500년 수메르에서 발견된 ‘백개먼(backgammon)’이다. 백개먼이라는 이름은 낯설지만, 어디서 다들 본 것 같은 느낌이 들 것이다.

비디오 게임을 하는 분들은 X박스 라이브 아케이드에서 찾을 수 있다. iOS와 안드로이드용으로 만들어진 무료 프로그램도 제법 있다. MS 윈도우즈의 기본 게임에도 있다. 확실히 본 게임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게임 이미지를 본 경험은 한 번쯤 있으리라 생각된다.



게임은 매우 추상적이지만 전쟁터에서 두 무리의 병사가 상대 진지로 진격하는 것을 모티브로 했다고 생각한다. 게임판은 큰 ㄷ자 형태이고 양쪽 팀의 진행 방향이 반대며, 상대 팀 진지로 이동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게임은 주사위 2개를 사용한다. 주사위 2개를 굴려 나온 숫자만큼 말을 두 번 움직이면 된다. 예를 들어 3과 4가 나왔다면 말 하나를 3칸, 말 하나를 4칸 이런 식으로 움직이면 된다. 같은 숫자가 나오면 두 번 가는 것도 인정된다. 같은 숫자가 2개 나오면 해당 숫자 4개로 인정한다. 예를 들어 3, 3이 나오면 3칸 이동할 기회 네 번이 생기는 것이다.

이동 후 도착한 칸에 상대의 말이 있으면 잡는다. 잡힌 말은 출발지부터 다시 가야 한다. 그런데 상대의 말 2개 이상이 모여 있는 칸에는 진입할 수 없다. 그래서 혼자 떨어진 말이 없도록 착착 붙어서 가는 것이 요령이다.

이것 때문에 이 게임은 주사위 게임이면서도 경험과 실력이 반영될 여지가 있다. 심지어 초반에 주사위 결과에 따른 정석 비슷한 것이 만들어졌다. 어쩔 수 없이 따로 떨어진 말 하나가 생기면 심장이 쫄깃쫄깃해지면서 상대 차례에 잡히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모든 말이 상대 진영으로 이동한 뒤에는 게임판 밖으로 이동한다. 모든 말이 밖으로 나가면 승리한다.


↑ 더블링 큐브
↑ 더블링 큐브


보통 이 게임은 정해진 판 수를 먼저 이기는 사람이 승리한다. 이 주사위(더블링 큐브)는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일 때 상대에게 '이번 판 이기면 두 판 딴 걸로 할래? 아니면 지금 항복할래?'라고 협상할 때 사용한다.

같은 숫자 더블이 자주 나온다거나 하는 행운과 상대의 실수가 겹치면 역전이 가능하므로 자신이 있다면 “그래 2배 받고 4배로 하자” 라고 카운터 오퍼를 날려도 된다. 패색이 짙은 게임에서 항복하지 않고 더블링 큐브를 사용해 판을 불리는 젊은 사람에게 딸과의 결혼을 승낙하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이 게임은 현재도 국제 대회가 열리는 현역 게임이며 국제 게임 박람회 등에서 관련 제품을 심심찮게 본다. 특히 터키, 그리스 쪽에서는 사람들이 이 게임을 즐기는 모습이 아주 흔한 풍경이다. 마치 80년대 복덕방 앞 어르신들의 장기 놀이를 보는 듯하다.


↑ 신윤복의 풍속화
↑ 신윤복의 풍속화


이 게임은 당연히 우리나라에서도 크게 성행했다. 옛 문헌에 ‘쌍륙’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는 게임의 원류가 바로 이 백개먼이다. 쌍륙은 세계를 거의 반 바퀴 돌아 중국을 거쳐 백제의 얼리어댑터 그룹을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된다. 백개먼과 쌍륙의 차이는 ‘캔디크러쉬사가’와 ‘애니팡 2’ 정도의 차이라 보면 틀림이 없다.

후기에는 약간 변해서 모든 말이 적진에 들어가는 대신 상대 왕을 잡으면 이기는 식으로 규칙이 바뀌기도 한다. 이 게임은 삼국 시대 문헌에도 언급이 있지만, 좀 더 문헌 찾기가 쉬워지는 조선 시대에 이르면 거의 국민 게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쌍륙은 '쌍욕' 같아서 어감이 나쁘지만, 주사위 2개를 굴려 나란히 6이 나온 상태를 뜻한다. 야구로 치면 홈런이고, 스타크래프트로 치면 드랍쉽 투하 성공이다. 쌍륙이 나와 환호하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깨어난 김시습은 이 광경을 시로 남겼는데 그게 바로 '쌍륙'이라는 시다.

조선 시대 최고의 석학으로 꼽히는 인물들도 쌍륙을 어마하게 즐겼다. 아래 인용은 연암 박지원의 편지 중 일부분이다.

"사흘간이나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바람에 어여쁘던 살구꽃이 죄다 떨어져 땅을 분홍빛으로 물들였구려. 긴 봄날 우두커니 앉아 혼자 쌍륙놀이를 하고 있소. 오른손은 갑이 되고 왼손은 을이 되어 "다섯이야!", "여섯이야!" 하고 소리치는 중에도 나와 네가 있어 이기고 짐에 마음을 쓰게 되니 문득 상대편이 적으로 느껴지외다. 알지 못하겠구려. 내가 나의 두 손에 대해서도 사사로운 감정을 두고 있는 건지."



↑ 영화 '선생 김봉두'
↑ 영화 '선생 김봉두'


같이 놀아줄 친구가 없어서 왼손 대 오른손 대결로 쌍륙 게임을 하다 보니 왼손 차례에는 오른손이 미워지더라는 통찰이다. 영화 '선생 김봉두'에 연암 박지원의 셀프 쌍륙 게임을 기념하는 듯한 씬이 있다. 박지원의 초상화에 자주 나오는 후드까지 재현한 것이 포인트다.

다산 정약용 또한 벼슬길에 오르기 전 기생집을 드나들며 쌍륙 도박으로 3000전 정도를 탕진했다고 회고한다. 이 돈은 오늘날 서울 아파트 한 채 값에 해당한다. 인생이 실전이라는 성찰을 얻은 정약용은 후에 벼슬도 하고 그의 대표 저서 목민심서에서 도박의 폐해를 우려하며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여러 가지 내기 놀이 중에서 심보가 나빠지고 재산을 탕진하며 가문과 친족들의 근심이 되게 하는 것은 투전이 첫째고, 쌍륙과 골패가 그 다음이다.” 본인용에서는 생략되었으나 정약용은 바둑과 장기조차도 해롭다고 지적했는데, 이것이 '셧다운제' 논의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짜 본격적인 '셧다운제'는 일본 강점기에 일어났고 우리나라 서브 컬쳐 대부분이 이 시기를 거치며 침몰한다. 우리나라 백개먼(쌍륙)의 전통 또한 이후 살아나지 않았다.

만약 일제의 강제 '셧다운'이 없었다면 오늘날 문구점이나 마트에서 바둑과 장기를 사듯 쌍륙의 상업화 제품을 사거나, 우리나라 기업들의 실력으로 예쁘게 되살린 온라인 쌍륙 게임으로 세계를 제패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 시기에 많은 놀이가 셧다운 당했는데 가장 많이 행해진 도박이며, 그 폐해에 대해 가장 많은 지적을 받은 ‘투전’은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우리가 즐기는 어떤 놀이에 스며들어있다. (이 놀이에 대한 언급은 필자가 잘리지 않는다면 언젠가 할 것이다.)

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죽이는 시대가 되었다. 80년대까지도 비행기가 좌우를 왕복하며 뿅뿅 총알을 날리는 것이 고작이었던 디지털 게임은 이후 엄청나게 발전했다. “이런 것도 가능해?” 라는 한계를 여러 차례 뛰어넘었다.

그럼에도 해마다 수백 수천의 새로운 아날로그 게임이 만들어지고 있고, 그 조상이라 할 수 있는 백개먼은 아직도 현역이다. 국내에서 제품 구하기는 쉽지 않으나 디지털화된 무료 게임이 많으니 기회 되면 한 번 해보는 것도 좋다. 케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널 때 “주사위는 던져졌다”라고 말했던 심경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본 기사는 딱TV (www.ddaktv.com) 에 5월 29일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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