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값 석달만에 45원 급등, 컨트롤 타워 부재?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일 오전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18차 경제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 하고 있다.

외우내환(外憂內患). 외환당국의 최근 심경이다. 원/달러 환율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데 안팎의 평가는 정반대 이유로 싸늘하다. 내부에선 수출 기업을 중심으로 당국을 향한 볼멘소리가 나온다. 3월 이후 급격한 환율 하락에 대한 당국이 미온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게 주된 이유다.

밖에선 외환당국의 과도한(?) 개입을 지적한다. 국제통화기금(IMF)과 미국 재무부는 구체적 수치까지 제시하며 환율 개입 자제를 압박하고 있다. 외환당국의 딜레마이긴 하지만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당국이 된 셈이다. 환율 콘트톨타워 부재 논란도 맥을 같이 한다. 환율을 책임지는 당국이 없다는 의미라기보다 콘트롤타워의 정책 방향 부재가 경제주체들을 혼란스럽게 한다는 지적이다.

◇강경인가 온건인가 = 올 3월 이후 원/달러 환율은 45원쯤 떨어졌다. 1070원대였던 환율이 1025원 안팎까지 밀린 것. 폭이나 속도 모두 빨랐다. 수출기업의 채산성 우려 목소리가 컸지만 당국은 속도 조절 정도로 대응했다. 이후 미세한 조정으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 모습을 두고 평가가 갈린다. 수출기업들은 약하다고 불만이다. ‘강만수-최중경’라인의 고환율 정책 기조와 비교하면 그럴 만도 하다. 기업이 생각하는 적정선을 너무 쉽게 내준다는 느낌도 강하다.

민간만이 아니다. 한국은행이 27일 공개한 9차 금통위 의사록에 따르면 한 금통위원은 "원/달러 환율이 지난 한달 여 동안 5% 가까지 절상된 것을 고려하면 환율 절상속도가 상당히 빠르다"며 "환율 절상압력이 시장에 점진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시장의 기대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하지만 당국의 물밑 몸부림을 토대로 한 다른 평가도 나온다. 점심시간 때 개입을 칭하는 ‘도시락 폭탄’을 던질 만큼 강경파다. 미국 등 선진국의 압력 속에서도 세자리 수 환율을 허용하지 않는 것 자체가 강한 당국을 의미한다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한은도 금통위 의사록을 통해 "최근 국제적 달러 약세가 가세해 환율 절상 속도가 다소 빠른 측면이 있다는 점에 관계당국과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콘트롤타워 정책의 부재? = 이런 점에서 보면 외환당국의 개입 수위 등은 근본적 문제가 아니다. 외환당국 관계자는 “수출기업이 힘들다고 하는데 목소리는 예전에 비해 크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 환율이 수출 등 교역에 미치는 영향이 줄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하락해도 수출은 오히려 늘고 있다. 지난해 경상수지 흑자는 799억달러에 달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연평균 원화가치가 6% 절상되더라도 경상수지 흑자가 781억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문제는 외환당국의 환율정책 기조의 일관성이다. 고환율정책 때는 ‘수출 중시, 경상수지 흑자’가 최우선 과제였다. 반면 지금은 애매하다는 게 기업과 시장의 지적이다. ‘수출-내수 균형’인데 경상수지 흑자는 과거보다 더 크다. 정책 흐름을 판단하기 어렵다.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와 ‘내수를 살려야 한다’는 언명도 계속 부닥친다. 환율 정책은 그 사이에서 오락가락이다.경상수지는 ‘대외의존도가 높은 나라의 마지막 보루’와 ‘무역불균형, 내수 부진의 결과물’ 사이를 오간다. 결과물은 고환율인데 과정은 애매하니 안팎에서 신뢰를 얻기 쉽지 않다.

시장 관계자는 “예측가능한 정책 환경이 필요하다”며 “장기 방향을 공유할 수 있다면 파생상품, 장기수입계약 등을 통해 대응할 수 있는데 이 부분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외환당국 “힘 실어 달라” = 당국도 할 말이 없지 않다. 국제적 흐름에 맞춰 조심스럽게 반발짝 내딛기도 하고 뒷걸음치기도 하는데 일희일비하는 목소리가 많기 때문. 외환당국 관계자는 “지금은 힘을 실어줘야 할 시기”라고 토로했다.

전세계적으로 자국 통화 약세를 유도하기 위한 소리없는 전쟁이 진행되고 있는 시기를 감안해야 한다는 얘기다. 유럽이 양적완화 카드를 흘리는 것이나 미국이 금리인상 지연 가능성을 언급하는 것 모두 환율과 관계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우리 정부가 손을 놓고 있다고 하면 다른 나라 당국이 웃을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이기보다 차분한 대응과 일관된 기조로 정책을 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