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잡스의 죽음'과 19년째 연구실서 씨름하는 박사

김성국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가 지난 27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제24회 호암상 의학상' 수상 기념 인터뷰를 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최부석 기자

의학계의 주요 도전과제의 하나는 췌장암 치료법이다. 2011년 스티브 잡스가 사망한 원인으로 알려지면서 관심이 커졌는데 5년 생존율이 다른 암보다 낮아 치료법에 대한 투자나 연구가 늘고 있다.

김성국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51·사진)도 19년째 그 대열에 서 있다. 30일 서울 순화동 호암아트홀에서 열리는 '제24회 호암상 시상식'에서 의학상을 받는 그는 췌장암의 주요 원인인 당뇨병의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 돌파구를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교수는 췌장의 생성과 발달 메커니즘을 밝히고 췌장 내 인슐린 분비세포의 증식과 노화를 조절하는 인자들을 발견했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당뇨병 치료를 위한 기초연구의 토대가 마련됐으니 더 많은 학자가 관련 연구에 관심을 가질 겁니다. 그러면 실제 환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결과물도 보다 빨리 나오지 않을까요."

시상식 참석차 서울을 찾은 김 교수는 지난 27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기자와 만나 "연구가 가치 있는 평가를 받아 기쁘지만 책임감도 크다"며 "이번 수상을 계기로 연구에 더욱 힘을 쏟아야겠다는 생각뿐"이라고 말했다.

◇"췌장암 환자 보며 연구 결심"


수상 비결을 묻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김 교수는 "이민 1세대인 부모님의 교육열 덕분에 좋은 교육환경에서 자라고 하고 싶은 것을 찾아 꿈을 이룰 수 있었다"며 "사람은 결코 혼자 성장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세 살 때인 1965년 유학길에 오른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아버지는 방사선 전문의, 어머니는 약사여서 자연스레 과학과 의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김 교수가 애초부터 의학박사가 되려 한 것은 아니다. 10대에는 야구선수를 꿈꿨다. 야구공에 맞아 코가 부러진 뒤 의사로 진로 방향을 바꿨다.

"췌장암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을 많이 봤는데 치료법 연구가 많지 않더군요. 아버님도 당뇨질환이 있으셔서 남의 일 같지 않았습니다. 내가 직접 연구를 해 치명적인 질병에 맞서보자고 결심했어요."

김 교수가 '호암상 의학상' 수상 소감을 밝히며 활짝 웃고 있다. /사진=최부석 기자

그는 33세가 된 95년 미국 하버드대에서 연구원 생활을 시작했다. 이어 98년 미국 스탠퍼드대로 자리를 옮기면서 췌장암과 본격적인 씨름에 나섰는데 연구가 간단치는 않았다.

그는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확실성 속에서 방향을 정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며 "19년간 연구했지만 아직 진행형"이라고 말했다.

◇다음 세대 고민…과학 교육체계 변화 필요

김 교수는 요즘 '미래 인재'에 대해 고민이 많다고 했다. 의학 발전을 생각하면 어린 시절부터 과학에 대한 관심이 많아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게 그 이유다.

그는 "한국과 미국의 고등학교 과학 교육은 모두 주입식"이라며 "실험하고 탐구할 기회가 없이 책만 보고 공부하니까 과학을 어렵게 생각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과학의 재미를 깨닫게 되면 마약처럼 끊을 수 없는 존재"라며 "학교 과학교육이 바뀔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바이오 과학자의 다음 세대를 가르치는 것도 연구만큼이나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에 김 교수는 최근 과학에 대한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실험 위주의 커리큘럼을 미국에서 시도하는 중이다. 이 방식이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까지 확산되길 기대한다며 그는 활짝 웃었다.

"앞으로 미래 의학 발전을 위해 후학 양성에도 힘쓸 생각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 멘토가 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김 교수가 췌장의 생성과 발달 메커니즘을 연구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최부석 기자

◇"이름 모를 연구자로 남고 싶어"

연구자라면 누구나 자신의 성과가 널리 기억되길 바라지만 김 교수는 달랐다. 그는 꿈을 묻자 '어노니미티'(Anonymity·익명성)라고 짧게 답했다.

"인류 역사상 중요한 발견들은 시간이 지나면 첫 발견자가 누군지 모르는 게 당연한 것이 됩니다. 물의 성분을 처음으로 밝힌 게 프랑스 화학자 라부아지에라고 기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하지만 그 발견은 과학 발전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김 교수는 "진정한 연구자에게 명성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며 "내 연구가 당뇨병 치료법 개발에 유용하게 쓰인다면 더 바랄 게 없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의 인슐린과 비슷한 초파리 유전자를 실험재료로 삼아 당뇨병의 유전적 기초를 보다 심층적으로 연구할 계획이다.

"전세계 많은 사람이 당뇨병을 앓고 있어요. 그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습니다. 사람을 돕는 연구를 하며 살아가는 게 제 인생 목표입니다."

한편 호암상은 삼성 창업자인 호암 이병철 선대회장의 사회공익정신을 기리기 위해 90년 이건희 삼성전자 (76,300원 ▼2,300 -2.93%) 회장이 제정했다. 매년 학술과 예술, 사회발전, 인류복지 증진에 탁월한 업적을 이룬 인사를 선정해 포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