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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6.06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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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희의 러시아 이야기]<12>예술교육에 대한 러시아의 지원 그리고 예술가의 선택

러시아에서 예술가들은 특별한 예우와 대접을 받는다. 그들이 이런 대접을 받는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러시아의 예술가들은 자신의 일을 그야말로 천직으로 알고 그 일 만이 자신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굳게 믿으며 평생 그 일에 자신을 던져 혼신의 힘을 다한다.

필자는 음악을 전공하는 두 딸을 보살피며 오랜 세월 모스크바에 살면서 러시아의 음악인을 많이 보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떤 당위성마저 느꼈다. 러시아에서 예술가들은 일찍부터 조기교육을 받으며 철저하게 그 환경에서만 거의 살다시피 한다. 그리고 대를 이어 예술활동 하는 것을 보았을 때 오히려 삶의 안정감을 가질 수 있는 것 같았다.

물론 각 분야에서 살아남기 위한 그 치열함과 긴박감은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넘으며 국가에서 지원하는 것도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과는 엄청나게 차이가 났다. 러시아에서는 개인보다 국가가가 예술인의 교육과 책임을 지다시피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정말 놀라움 그 자체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소련이 러시아로 개방된 현재는 많은 부분이 삭제되고 힘들어한다.

러시아가 자본주의시대로 돌입한 이래 지금까지 눈이 핑핑 돌 지경으로 변화되었고 변화돼가고 있다. 이제는 사립학교들이 생겨나고 학비를 내는 좋은 사립 초등학교는 태어나자마자 대기한다고 한다.

그러나 필자가 살았을 적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고 자국인은 초.중.고는 물론이고 대학까지 학비를 내지 않았고 외국인들에게만 받았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유학 온 학생들도 면제였다. 더 기가 막힌 이야기는 소련시대 이야기였다.

모스크바 국립 차이콥스키음악원 교수에게 들은 이야긴데 그 시절에는 바이올린이나 첼로를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일 년에 두 차례 악기의 줄을 정부에서 무료로 제공해주었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이런 꿈을 행여나 꿀 수 있을까? 아니다. 꿈조차 꿀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미술대학에서는 물감을 무상으로 제공했다. 필자 딸의 같은 반 학생 부모가 화가였는데 미술대학 교수였다. 이들의 아뜰리에를 가보고 깜짝 놀랐다. 그 아뜰리에는 모스크바 강이 보이고 나무들이 우거진 시내 한복판에 있는 아주 좋은 아파트 꼭대기층(팬트하우스)에 있었고 화가는 여유있고 우아하게 그림 그리는 일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찾아온 손님에게 뜨거운 차와 케익을 대접하면서 넓은 공간에 차있는 그림들을 보여주었다. 하! 이런 곳에 작업실이 있다니 하고 입이 쩍 벌여졌던 기억이 새롭다.

예를 들자면 이렇게 모든 예술학교가 운영되고 있었고 그만큼 열심히 자신들의 일에만 몰두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고 했다.

며칠 전 양주에 있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생가와 실학박물관에 다녀왔다. 실학은 조선후기의 새로운 시대적상황,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후 국가기능이 마비되고 국토가 황폐되었다-에 대처하기 위해 여러 가지 개혁이 진행되어 농업생산력과 새로운 상업이 발달되어질 때 유교경전을 재해석한 바탕으로 서양문물을 수용하자는 주의라고 설득력있게 문화해설사가 설명을 잘 해주었다. 정약용 선생은 실학의 대표학자였다. 그는 생전에 500여권의 저서를 저술했는데 가난한 농민들을 위해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저서들이 많았다고 한다.

필자는 이 설명을 들으며 아주 뿌듯했고 이런 조상이 자랑스러웠다. 그의 생애가 가슴이 따뜻하고 훈훈해지게 느끼면서 선생의 무덤을 보았다. 무덤은 결혼해서 60년을 함께 살았던 부인과 합장돼 봉분이 아주 컸다.

선생의 무덤 앞에서 필자는 문득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무덤이 생각났다. 톨스토이는 34살의 나이에 16살 어린 나이의 신부와 결혼했으나 의외로 행복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엄청난 양의 책을 저술했으나 마음은 늘 농민과 함께 있었으며 진실에 목말라 했으며 부인과는 심한 말다툼을 했다고 한다. 말년에 그가 마지막으로 가출했을 당시에도 아내와 극심한 갈등으로 싸웠으며 자신의 재산을 가족에게 넘겨준다고 통보하고 맨손으로 집을 나섰다.

인간생활은 불가피하게 고통스런 모순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자의 이성과 양심은 이 모순들 때문에 괴롭다는 것을 그는 몸소 겪었으며 이는 늘 비극적인 삶이었다고 생각했다. 아내와 자식들에게는 남편과 아버지로서 도덕적인 책임으로 재산을 물려주었고 이런 자신의 이중적인 양심의 고통에서 평생 헤어나지 못했으며 이를 회개하고 속죄하는 마음으로 평생 끊임없이 글을 썼다고 한다.

그리고 드디어 82세 11월 7일 새벽 큰 아들을 불러 “나는 진리를 사랑한다. 나는 진리를 원한다. 항상 찾아야 해...” 이렇게 말하고 눈을 감았다. 그는 우랄철도의 아주 작은 역사에서 숨을 거두었는데 그 때도 죽어가는 농군보다 훨씬 좋은 조건에 있다는 것을 괴로워했다고 한다.

이틀 뒤, 그렇게 그가 사랑했던 고향 야스나야 폴리나의 숲에 묻혔다. 그의 무덤은 넓디넓은 야스나야 폴리나의 한 구석 큰 나무 밑에 아무 장식없이 길쭉한 네모의 관 그대로가 봉분이었는데 처음 본 순간 머리를 쥐어 맞은 거 같은 충격으로 그 자리에서 오랫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대 지주의 무덤이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었다. 풀이 자라고 있는 관의 외로운 묘지를 보았을 때의 막연함은 석양의 지는 해와 맞물려 묘하게 다가왔다. 평생 지주이자 귀족인 그가 장원의 모퉁이에 의연히 빛을 발하며 누워있는 것을 필자가 보았을 때는 5월이었고 장원의 정원에는 향기 진하고 색깔 고운 장미꽃이 만발했었다.

“사랑은 죽음을 없애고 죽음은 헛된 환영을 만든다. 사랑은 무의미한 인생을 의미있는 뭔가로 바꾸어 놓고 불행을 행복으로 만든다.”

레프 톨스토이는 가족에 대해 느끼는 사랑이 아니라 인류와 전 세계를 향한 사랑, 그리고 적들에 관한 사랑이라는 것을 남겼다.

톨스토이는 어디에 잠들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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