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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명품, 작은 공방이 모여 프랑스 공룡에 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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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렌체·밀라노(이탈리아)=안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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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6.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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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획-'K메이드'를 키우자]<3회 ①>'장인정신' 이어가는 소규모 공방 연합체, 이탈리아 명품 산업 '핵심' 부상

[편집자주] 명품에 열광하는 대한민국. 하지만 연간 300조원에 달하는 세계 명품시장에서 한국은 전혀 매출이 없고, 철저히 소비만 하는 국가다. 명품의 본고장인 유럽은 물론 미국과 일본 등이 세계 명품 시장을 놓고 자국 브랜드로 맹활약하고 있지만 한국은 유독 명품 분야만큼은 힘을 쓰지 못한다. 한류가 전 세계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이제 한국형 명품을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때다. 이에 세계 명품 산업을 주도하는 기업들을 찾아 그들이 명품이 된 노하우와 역사를 분석하고, 한국 패션기업들의 명품을 향한 고민들을 들어본다. 세계 명품시장에 당당히 도전장을 내는 한국형 명품의 탄생을 위한 필요충분 조건들도 진단해본다.
#이탈리아 패션 1번지 밀라노의 명품 거리 '몬테나폴리오네'. 지난 19일(현지시간) 오후 3시께 이 거리는 해외 관광객들로 가득 찼다. 중국 산둥성에서 왔다는 션루이(瀋瑞, 31) 씨는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쇼핑을 하러 일부러 찾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손에 들린 '구찌' 로고 쇼핑백은 정작 이탈리아 제품이 아니다. '구찌'는 이미 프랑스 명품 그룹 '케링'(옛 PPR그룹)에 1999년 인수됐기 때문이다.

밀라노 몬테나폴리오네 거리에 위치한 구찌 매장. 구찌는 1951년 이곳에 5번째 매장을 오픈했다.
밀라노 몬테나폴리오네 거리에 위치한 구찌 매장. 구찌는 1951년 이곳에 5번째 매장을 오픈했다.
'몬테나폴리오네'는 이탈리아 명품 산업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35개 '메이드 인 이탈리아' 브랜드가 500미터 남짓한 이 거리에 빼곡히 들어차 있다. 하지만 이 중 9개 브랜드는 '구찌'와 마찬가지로 프랑스 패션 대기업으로 경영권이 넘어간 상태다. 베르사체와 로베르토 카발리, 프라텔리 로세티 등 매각설이 나오는 브랜드까지 합하면 '몬테나폴리오네'를 지켜온 이탈리아 브랜드 중 3분의 1 이상의 주인이 바뀌거나 바뀔 위기에 처한 셈이다.

알베르토 스카치오리 이탈리아 패션협회 정부관할 총 책임자(이사)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몬테나폴리오네'가 조성된 지는 100년이 넘었다"며 "하지만 지난 10년 새 이곳의 주인은 급속도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대표 브랜드가 본격적으로 외국 자본에 잠식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 전후다. 경영 악화로 불가리와 보테가베네타가 각각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케링 등 프랑스 패션그룹에 인수됐고 펜디와 브리오니, 에밀리오 푸치, 로로피아나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발렌티노와 미소니는 중동 자본에 넘어갔으며, 콜롬보와 수토 만텔라시, 로메오산타마리아 등 한국 기업에 팔린 브랜드도 있다. 프라다, 페라가모 등은 지분 일부를 해외 자본에 매각하는 방식으로 간신히 기업 매각은 피했고, 아르마니는 요즘도 끊임없이 지분 매각설이 나온다.

스카치오리 이사는 "이처럼 프랑스 패션 그룹의 막강한 자본 공세 탓에 이탈리아 명품의 경쟁력인 '장인정신'과 '가족경영'이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예가 구찌다. 1980년대 이후 프랑스 명품업계와의 경쟁을 위해 라이선스를 남용했고, 이에 따라 모조품이 급증하며 '명품' 이미지가 추락했다. 사업이 힘들자 가족경영을 통한 결속력도 느슨해졌다. 창업주 구찌오 구찌의 손자 파올로는 형 마우리치오에게 경영권을 물려준 아버지를 탈세 혐의로 감옥에 보내려 했으며 마우리치오의 전 부인은 재혼을 선언한 남편을 청부 살해했을 정도다.

그렇다면 이탈리아 명품 산업의 '미래'는 과연 없는걸까? 이탈리아 패션업계 관계자들은 여기에는 고개를 가로 젓는다. 그들은 이탈리아 '장인정신'의 발원지 피렌체에서 이탈리아 명품의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16~20일 피티 워모가 열린 이탈리아 피렌체 '포르테자 다 바소' 전경.
지난 16~20일 피티 워모가 열린 이탈리아 피렌체 '포르테자 다 바소' 전경.
피렌체 중심가에 있는 고성(古城) '포르테자 다 바소'에서는 지난 16~20일 세계 최대 남성복 박람회 '피티 워모'(Pitti Uomo)가 열렸다. 1972년 시작돼 매년 2회(1월, 6월) 열리는 이 박람회에 올해도 1090개 브랜드가 참석했다.

라파엘로 나폴레오네 피티 워모 최고경영자(CEO)는 "이탈리아 명품 중 프랑스보다 세계시장에서 더 인정받는 것은 남성패션과 제화"라며 "피렌체를 중심으로 수작업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중소 공방들이 이 같은 이탈리아 명품 산업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방의 작은 힘을 한데 모아 프랑스 패션 그룹에 대항하기 위해 피티 워모를 세계 최대 남성패션 박람회로 키웠다"고 강조했다.

이탈리아 가죽제품 브랜드 '아랄디'의 장인이 피티 워모 전시관에 마련된 작업 테이블에서 수작업을 하는 모습. 이 회사 관계자는 "19세기말 이탈리아 안코나에서 시작된 브랜드는 4대째 아랄디 가문이 경영을 맡고 있다"며 "아버지의 일을 아들이 계승해 발전시키는 것은 이탈리아의 전통"이라고 말했다.<br />
이탈리아 가죽제품 브랜드 '아랄디'의 장인이 피티 워모 전시관에 마련된 작업 테이블에서 수작업을 하는 모습. 이 회사 관계자는 "19세기말 이탈리아 안코나에서 시작된 브랜드는 4대째 아랄디 가문이 경영을 맡고 있다"며 "아버지의 일을 아들이 계승해 발전시키는 것은 이탈리아의 전통"이라고 말했다.
작지만 이렇게 모인 힘은 의외로 쎄다. 2013년 기준 이탈리아 패션 산업 전체 매출액은 500억 유로(약 70조원)로 이 중 절반이 중소 브랜드에서 나온 것이다. 이탈리아 패션협회에 따르면 이들 중소 브랜드의 약진으로 올해 이탈리아 패션 산업 매출은 전년보다 3.6% 늘어날 전망이다.

피티 워모에 전 세계 30여개 국가에서 사상 최대 규모인 1만8100여명의 바이어가 몰려들어 '메이드 인 이탈리아' 구매 경쟁을 벌이는 것도 이탈리아 명품의 힘이다. 일본 편집매장 '쉽'의 미우라 요시노리 대표는 "작지만 경쟁력 있는 이탈리아 브랜드들의 경쟁력은 이미 전 세계 바이어들이 잘 알고 있다"며 "매년 피티 워모에 참석해 주문을 내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들 중소규모 브랜드의 경쟁력은 해외 자본에 넘어간 대형 브랜드들이 소홀히 한 '장인정신'이다. 이탈리아 장인협회의 안드레아 라르디니 대표는 "한국은 기업이 성장하면 본업이 아닌 다른 분야로 영역을 넓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한때 이탈리아 패션 기업도 마찬가지지만 이탈리아 중소 공방만큼은 기존 영역 안에서 전문성과 깊이를 키운다"고 말했다.

남성복 브랜드 '라르디니'의 대표이기도 한 그는 "1000명의 종업원 중 400여명이 장인"이라며 "이들의 손길로 탄생한 재킷은 엑스레이 검사를 통해 1mm 이하의 오차까지 잡아낸다"고 강조했다. 1970년대 탄생한 라르디니가 비교적 빠른 시간안에 명품 반열에 오른 이유에 대해서도 그는 '장인정신'이 바탕이 됐다고 설명했다. 라르디니의 공방에서 일하는 장인들은 대부분 4대 이상 재단 일을 이어왔다.

회사가 성장해도 '장인정신'의 초심을 잃지 않는 원동력으로는 '가족경영'이 근간이 됐다. 라르디니 대표는 "나를 포함한 네 명의 형제자매와 그들의 아들 딸들이 회사 경영을 맡고 있다"며 "내가 하던 일을 자식들이 맡으며 노하우가 그대로 전수되고 한 우물만 파는 사업 철학도 물려준다"고 귀띔했다.

이탈리아 남성복 브랜드 '라르디니'의 안드레아 라르디니 대표(좌측 두번째)와 그의 가족들이 피티 워모 행사장에 마련된 라르디니 부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라르디니는 '가족경영'으로 운영된다.
이탈리아 남성복 브랜드 '라르디니'의 안드레아 라르디니 대표(좌측 두번째)와 그의 가족들이 피티 워모 행사장에 마련된 라르디니 부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라르디니는 '가족경영'으로 운영된다.
이탈리아 정부도 이탈리아 명품 산업의 이런 '작은 힘'에 미래를 걸고 있다.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는 피티 워모 개막식에 참석해 매년 피티 워모에 200만유로(약 28억원)을 지원하고, 중소 공방에 은행 대출을 늘려주기로 했다. 그는 행사기간 내내 피티 워모 관계자들과 클레토 사그리판티 이탈리아 국립 신발제조업체 회장 등을 만나 그들의 고충을 경청했다.

사그리판티 회장은 "미캄(이탈리아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구두박람회)과 피티 워모 등 이탈리아 장인정신을 세계에 알리는 전시회가 더욱 활성화될 것"이라며 "프랑스와 달리 작은 공방의 연합체가 이탈리아 명품의 경쟁력 그 자체"라고 말했다.

(사진 좌측부터)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와 줄리안 디아즈 더프리 CEO, 스테파노리치 피렌체 패션협회 회장이 피티 워모 개막식 행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렌치 총리는 이날 "지난 수년간 이탈리아는 역사와 전통을 글로벌 시장에 제대로 알리지 못했다"며 "이번 행사는 우리에게 이탈리아를 알리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좌측부터)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와 줄리안 디아즈 더프리 CEO, 스테파노리치 피렌체 패션협회 회장이 피티 워모 개막식 행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렌치 총리는 이날 "지난 수년간 이탈리아는 역사와 전통을 글로벌 시장에 제대로 알리지 못했다"며 "이번 행사는 우리에게 이탈리아를 알리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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