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두산베어스를 배신했나

서울이 대한민국의 절반이라지만, 도시 하나에 프로야구 3개 팀이 둥지를 틀다니…유래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프로야구 긴급 점검 특집 '번외편'으로 두산, LG, 넥센 등 서울 연고 3개팀 팬심을 비교해봤다.




↑ 두산·LG·넥센의 최근 1개월 순위 변동 (사진제공=KBO)


그러나, 애초에 이 기획은 시작부터 '무리수'였다. 서울이라는 연고만으로는 구분하기 어려운 3개 팀 팬들의 성향을 분석해보자는 것인데…서울에 살면서도 서울 팀을 좋아하지 않는 이상한 취향을 가진 편집장의 지시를 두산의 '호갱팬'인 내가 순순히 응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목표를 바꿨다. 설문조사 대상 100명을 전원 '두산팬'으로 채우기로 말이다. 두산팬인 내 주위의 믿을 수 있는 사람들만 엄선해 설문지를 돌렸다. 훗, LG나 넥센을 좋아하다니…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내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배신자들이 이렇게 많았다니! 내 주변 두산 팬들 중에서 초심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절반에 불과했다. 아무리 김선우가 이적하고 성적도 부진하다지만 이럴 순 없다. 그래서 그들이 두산 베어스를 배신한 이유를 들여다 보기로 했다.



먼저 두산과의 '의리'를 지킨 이들부터 그 이유를 들어봤다. '친구'와 '가족'의 영향이 크다고 답한 걸 보니 의리파 답다. 나에게 코가 꿰여 두산 팬이 된 친구들의 응답임이 분명하다.
'기타' 중에는 "아버지를 따라 SK 응원석에 앉았는데 이유 없이 상대편 두산이 끌렸다"라는 응답이 눈에 띈다. 아마도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이 두산의 '호갱' 한 명을 늘려준 모양이다. "우루사를 좋아해서"…이건 또 뭔가 ㅡ_ㅡ; 그 곰과 이 곰이 아마도 같은 뿌리인가보다.



↑ 두산 마스코트 엠블럼(왼쪽)과 1996년 8월 우루사 인쇄 광고(오른쪽)




두산의 오렌 라이벌 LG를 응원하는 이들의 변명도 들어보자. '출생지' 영향이 가장 컸다. 반면 선수 영향은 두산에 비해 낮았다. 가족과 친구 영향까지 합친 연고 성향(71%)을 보니 서울 지역색이 가장 강한 팀이 LG인 듯 싶다.
어린 시절부터 LG를 좋아한 원죄 때문에 DTD의 저주를 감수하는 그들에게 연민이 느껴진다.
그런데 이건 뭔가? '구단 성적' 때문에 LG를 좋아한다는 응답자 2명이 눈에 띈다. LG의 지난 10여년의 성적은 이른바 마법의 비밀번호 '6668587667' 로 대변된다. 그런데 성적 때문이라니…아마도 이 둘은 피학 성향의 '변태'가 아닐까 싶다. 절교를 고민해봐야겠다.

기타 응답에는 "어렸을 때 유니폼이 예뻐서"(가을 유광점퍼 아직 갖고 있나?), "초등학교 때 친구가 가지고 있던 LG트윈스 어린이 회원세트가 멋져 보여서"(미성년 약취 유인…)
두산 호갱팬 입장에서 두산의 유니폼에 비할 바는 아니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LG 유니폼 나름 예쁘다는 건 인정!


↑ 역대 LG 트윈스 유니폼 (사진제공=LG트윈스 홈페이지)



↑ 현 LG 트윈스 홈 유니폼 (사진제공=LG트윈스 홈페이지)




'서서울' 연고의 넥센을 응원하는 이들의 팬심은 어떨까. 어느 정도 짐작했던 대로다. 스타 플레이어와 좋은 성적…쳇, 할 말이 없다.
하긴 박병호와 강정호, 서건창과 밴헤켄 등 미친 존재감을 가진 선수들이 많다. 두산 팬인 내가 봐도 탐난다.

슈퍼히어로가 변신하기 전 돌고래(태평양 돌핀스), 유니콘(현대 유니콘스)일 때부터 좋아했다는 응답자들이 4명이나 됐다. 이들은 혹시 팀이 연고를 옮길 때마다 이사라도 다닌 건 아닌지 문득 궁금해진다.



↑ 태평양 돌핀스와 현대 유니콘스 엠블럼


먼 사촌보다 바로 옆집에서 땅을 사면 더 배가 아픈 법이다. 넥센의 승승장구에 배가 아픈 두산 팬이 어디 나 뿐일까.
내려갈 팀은 내려가지만 성적이야 어찌됐든 '호갱'은 그 팀을 계속 응원한다. 묻지마 작전주에 투자한 뒤 비자발적 장기투자로 접어든 개미들처럼, "골이 깊을수록 산도 높다"고 스스로를 세뇌하며 득도의 경지에 이른다.
'사심 설문조사'의 믿기 어려운 결과로 배신감에 치를 떨었지만, 그들의 변명도 나름 수긍이 간다.
LG팬들은 "한 번도 연고를 옮기지 않은 LG야말로 진저한 서울 연고 팀"이라며 나를 배신자라 부르고, 넥센으로 옮겨 탄 친구는 "최대 관중수에도 불구하고 구단이 성적으로 먼저 배신했다"고 항변한다.
그들을 이해하지만 두산 베어스의 '호갱팬'인 나는 오늘도 두산 경기를 지켜볼 뿐이다. 이번 가을…배신 안 할 거지?


[딱TV 특집기획]긴급점검 - 프로야구 왜 재미가 없을까
1. 프로야구, 재미가 없다…왜?
2. '재미없는' 2014 프로야구, 한 눈에 보기[인포그래픽]
3. '졸전' 거듭하는 프로야구…김성근이 그립다
4. 그들은 왜 두산베어스를 배신했나 (번외편)

☞ 본 기사는 딱TV (www.ddaktv.com) 에 9월 8일 실린 기사입니다.
가로 세로 가로세로 비율유지 정렬 가운데 왼쪽 오른쪽 워터마크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