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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 비극 잉태한 ‘경종 독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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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경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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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9.27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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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경률의 사극 속 역사인물]13. 경종 : ‘남인 왕자’로 태어나, ‘소론 임금’으로 죽다

사도세자 비극 잉태한 ‘경종 독살설’
아비가 아들을 뒤주에 가둬서 죽였다. 아비는 영조, 아들은 사도세자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패륜극. 이 사건을 임오화변(1762)이라고 부른다. 사극 ‘비밀의 문’은 임오화변을 궁중 미스터리 형식으로 풀어나간다. 과연 이 역사적 비극에 어떤 상상을 버무려야 시청자들이 고개를 끄덕일까?

사도세자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혜경궁 홍씨는 <한중록>에서 ‘흉악한 병에 걸린 광인’으로 묘사했다. 반면 정조 때 편찬된 <영조실록>은 ‘백성을 위해 어진 정책을 시행한 왕의 재목’이라고 적었다. 물론 여기에는 평가자들의 입장이 짙게 배어있다. 혜경궁 홍씨는 사도세자의 죽음에 관여한 집안을 비호하기 위해 죽은 남편을 깎아내렸고, 정조는 사도세자의 아들임을 천명하고 왕위에 오른 만큼 아버지를 추켜세웠다.

분명한 사실은 사도세자의 죽음은 결코 개인적인 광기나 자질 때문이 아니라는 점이다. 세상에 어떤 아비가 아들에게 허물이 있다고 그런 끔찍한 벌을 내리겠는가. 세자를 죽인 것은 비정한 정치였다. 그 출발점은 선왕인 경종의 즉위과정과 의문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종은 영조의 이복형으로 장희빈 소생이었다. 두 사람의 아버지인 숙종은 남인과 서인을 저울질하며 여러 차례 집권당을 갈아치웠다. 경종의 탄생은 남인의 집권과 서인의 숙청으로 이어졌다. 즉위 15년 만에 첫아들이 태어나자 숙종은 핏덩이를 원자로 삼으려 했다. 장희빈의 집안이 남인과 가깝다고 서인이 반대하자 임금은 가차 없이 그들을 응징했다(기사환국, 1689). 심지어 서인 영수 송시열까지 이 때 사약을 받았다.

정신적 지주를 잃은 서인은 장희빈은 물론 세자가 된 ‘남인 왕자’ 경종에게 이빨을 갈았을 것이다. 폐비 민씨(인현왕후) 복위운동으로 재집권에 성공한 서인은 남인에게 정치적 보복을 가해 재기불능으로 만들었다(갑술환국, 1694). 또 숙빈 최씨를 통해 숙종을 부추겨 장희빈마저 죽여 버렸다. 이 일로 서인 내부에 움튼 노론과 소론의 분열이 가속화되었다. 장희빈 사사에 반대한 소론이 세자를 옹호하자 노론은 비상수단을 강구했다.

노론은 생모의 죽음을 목격한 세자가 연산군처럼 피바람을 일으킬까봐 두려웠다. 경종이 보위에 오르자(1720) 그들은 임금을 협박해 숙빈 최씨 소생인 연잉군(훗날의 영조)을 왕세제로 삼았다. 나아가 숙종의 계비인 대비 김씨(인원왕후)와 짜고 연잉군 즉위계획까지 세웠다. 이 역모는 뒤에 소론이 집권하면서(신축환국, 1721) 밝혀졌다. 문제는 왕세제가 계획을 통보받고도 묵인했다는 것. 사실상 역모에 가담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벼랑 끝에 몰린 연잉군은 형에게 살려달라고 눈물로 애원했다. 그의 운명은 바람 앞에 등불이었다.

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연잉군을 구한 것은 경종의 병환이었다. 경종 4년(1724) 8월 임금의 한열이 심해지자 왕세제인 연잉군이 병석을 지켰다. 8월 20일 대비전에서 게장과 생감을 보냈는데 왕세제는 어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종에게 올렸다. 임금의 병세는 급격히 악화되었다. 며칠 후에는 직접 인삼차를 처방했다. 역시 어의가 자신이 쓴 약과 상극이라며 만류했지만 듣지 않았다. 8월 24일 새벽 ‘소론 임금’ 경종이 세상을 떠났다. 소론은 독살설을 제기하며 궐기했고 철저하게 궤멸됐다.

인종, 소현세자, 정조, 고종 등 조선왕실에는 독살설이 끊이지 않았는데 그 가운데서도 경종의 경우는 꽤 신빙성이 있다. 범죄용어로 치면 동기와 수법이 확실하고, 직접증거는 없지만 정황증거가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영조는 재위 초반에 약점 잡힌 사람처럼 노론에게 끌려 다녀야 했다. 용상에 앉힐 수 있는 것도, 용포를 찢을 수 있는 것도 노론이다. 그것이 영조에게는 콤플렉스였을 터. 그가 후일 탕평책을 쓰며 소론을 다시 등용한 이유다.

이 권력게임의 속성을 사도세자가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단순해 보이지만 단순하지 않은 게 정치다. 경종처럼 태어나면서부터 권력을 쥔 세자는 살기 위해 발버둥 쳐야 했던 부왕의 역린을 간과했을 가능성이 크다. 드라마에서 사도세자는 백성의 언로를 열어주려고 한다. 허나 관용은 힘 있는 자가 베푸는 것이다. 군주가 뜻을 펼치려면 힘을 길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는 비극을 맞이하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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