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칼럼]근로시간단축 논의, 산업현장 현실 고려해야

김판중 한국경영자총협회 경제조사본부장 /사진제공=한국경영자총협회

최근 국회 파행의 원인으로 지목되던 세월호 특별법에 여·야가 합의하면서 그동안 잠자고 있던 근로시간 단축 이슈가 수면위로 급부상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당정이 합의한 근로시간 단축의 핵심은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해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인다는 내용이다. 사실상 휴일근로를 제한한 것이다.

그러나 올해 4월 ‘환노위 노사정 소위’에서 노사간, 여야간 뚜렷한 입장차이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공전하다가 최근 여당의 새로운 개정안이 발의되면서 찬반양론이 다시 뜨겁게 일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실근로시간은 2071시간으로 OECD 국가 중에서도 긴 편에 속한다. 이런 장시간 근로에 대한 다양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지만, 오늘날의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 준 가장 큰 디딤돌이 된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선 기업에게 장시간근로는 낮은 노동생산성과 고용경직성을 극복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2013년 우리 근로자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28.4달러로 OECD 평균의 60% 수준에 불과하며, 미국, 프랑스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특히 중소기업 노동생산성은 대기업의 35% 수준에 그쳐 더욱 심각한 수준이다. 한편 세계경제포럼(WEF)은 올해 우리 노동시장 유연성을 144개국 중 최하위 수준인 124위로 평가했다. 사람을 마음대로 내보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 노동시장 현실이 이렇다 보니 기업에게 초과근로는 경쟁력을 보완하고 경기변동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나 다름없었다.

근로자에게도 장시간근로는 추가소득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였다. 우리나라의 남성 외벌이 구조, 높은 사교육비·집값, 노후 불안 등과 더불어, ILO 권고보다 2배 높은 초과근로 임금 할증률은 추가소득 확보를 위한 장시간 근로의 강력한 유인책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인위적 근로시간 단축은 노사 모두는 물론 우리 경제 전체에 상당한 부작용을 미칠 수 있다. 먼저 상당수 기업들에서 가동시간 감소로 생산차질이 우려된다.

특히 현재 주 52시간 이상의 초과근로가 불가피한 자동차, 금속, 음료 등 제조업은 경쟁력에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며, 지불능력이 부족하고 만성적인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는 대다수 중소기업은 존립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릴 수 있다.

또한 근로자 측면에서도 근로시간 단축으로 최대 20%까지 소득이 줄어들 수 있다. 특히 노동계가 아직도 “임금 감소 없는 근로시간 단축”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임금보전을 둘러싼 소모적 노사갈등만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정치권이 기대하는 일자리창출도 어려워 보인다. 유럽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는 경기 불황 시에 고용유지를 위한 한시적 조치로 활용될 수는 있어도, 고용창출 방안은 될 수 없다. 특히 우리 산업현장의 노동경직성, 전일제 근로 관행 등을 감안하면, 근로시간 단축과 고용창출의 상관성은 더욱 약해질 것이다.

이런 문제 인식 하에 최근 여당에서 근로시간 단축을 규모별로 단계적으로 시행하고, 추가 연장근로도 허용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기업 입장에서는 지금까지 논의되던 법안들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특히 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를 전제로 추가 연장근로를 허용하고 있어 사실상 현장에서 활용하기 어려워 보인다. 규모별 유예기간 역시 중소·영세업체들에게는 턱없이 짧아 보인다.

장시간근로 개선은 우리 노동시장이 풀어야 할 숙제라는 점에 대해서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동의한다. 다만 지금은 모든 경제 주체가 경제활성화에 매진해야 할 시점이다.

여기에 근로시간 단축 논의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즉 규제를 강화하기 보다는 국가 경쟁력을 향상시키고 산업현장의 현실을 보다 객관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특히, 정부와 국회는 개별 기업의 노사가 경영상황에 따라 근로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한편, 업종별·규모별 수요자 중심의 맞춤형 지원정책을 강화하는 것에 집중해주길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