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생리의학상 | 뇌 속 GPS 세포 발견

최근 사회적으로 인간의 뇌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마음에 모든 삼라만상이 있다”라고 해석할 수 있는 화엄경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구절처럼,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뇌의 메커니즘을 이해한다면 얼마나 마음 편한 세상이 되겠는가. 근래 개봉한 ‘루시’, ‘더 기버’, ‘다이버전트’ 등의 영화들도 한결같이 인간의 뇌 기능을 조절해 인간의 행동과 능력을 마음대로 조절하고 향상시키고 싶어 하는 인류의 욕망을 담았다.


인간의 뇌 속에는 생각과 행동을 결정하는데 필요한 정교한 정보처리장치가 이미 내재되어 있다. 이러한 경향을 반영이라도 하듯 올해 노벨생리의학상은 ‘뇌 속의 GPS’라고 불리는 ‘장소세포(place cell)’와 ‘격자세포(grid cell)’를 발견한 세 명의 뇌 인지 과학자들에게 돌아갔다.

(그림1) 장소세포의 장소지도

1971년 영국 런던대학의 존 오키프(John O’Keefe)는 뇌 해마의 한 영역에서 발견된 장소세포가 어떠한 환경에서도 특정한 장소에 대한 위치단서를 처리해 그 장소를 학습하고 기억한다는 것을 알아냈다.(그림 1) 즉, 행동하는 동물의 장소세포는 특정장소에 도달하면 강하게 활성화(활동전위의 증가, 그림 4)되는 특징을 보인다.


또 환경이 바뀌면 새로운 장소에 반응해 활성화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지도책과 비교하여 설명한다면, 지도책에서 보이는 장소에 대한 지형지물(등고선, 건물 등)의 다양한 정보가 장소세포에 의해서 그려지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그림 2) 이렇듯 수많은 장소세포들이 서로 다른 장소를 학습함으로써 특정 환경에 대한 전체적인 기억이 형성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림2) 공간표상

학습과 기억의 기전 규명에 큰 의미
특히 이러한 장소세포의 발견은 1948년 에드워드 톨만(Edward Tolman) UC버클리대 교수가 제안한 ‘인지지도(cognitive map)’라는 개념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가 됐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지도책이 우리 뇌에 내재되어 있다는 가설을 강력하게 뒷받침하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약 30년 후에는 노르웨이 과학기술연합대학교(Norwegian 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nology)의 메이 브리트 모저, 에드바르드 모저 부부가 해마와 연결되어 있는 내후각피질(Entorhinal Cortex)에서 격자세포를 발견하게 된다. 이 격자세포는 지도책에서 보이는 경도와 위도를 표시하는 격자 형태로 반응하는 신경세포를 말한다. 이 두 가지 신경세포의 발견으로 뇌 속에는 지형지물에 대한 표상으로서의 지도책, 즉 인지지도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그림3) 장소세포의 특징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우리의 일반적인 길 찾기 행동은 장소에 대한 학습과 기억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뇌 해마는 우리의 다양한 기억을 담당하는 부위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장소세포에서도 학습 및 기억과 유사한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따라서 장소세포는 길 찾기 행동을 설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뇌 해마가 담당하는 학습과 기억의 기전을 규명하기 위한 매우 유용한 도구로 사용되어 왔다. 장소세포의 대표적인 특징으로는 ‘단서의존성(cue dependency)’이 있다.(그림 3.1)

이는 한 장소세포가 특정 장소를 학습하고 기억하기 위해서는 주위의 안정적이고 확실한 위치단서(큰 건물 등)를 기준으로 삼고 의존한다는 것이다. 만일 그 안정적인 위치단서의 위치가 변경되면 일반적으로는 장소세포가 반응하는 장소(Place Field) 또한 위치단서를 따라 이동하게 된다.


두 번째 특징으로는 ‘지도 변환성(remapping)’이다. 이는 특정 환경의 특정한 장소 A에 반응하는 장소세포는 새로운 환경에서는 다른 장소 B에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림 3.2)이는 하나의 장소세포가 두 환경의 차이를 알아차린다는 것으로써 학습의 기초가 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특징은 ‘지속성 (stability)’이다.(그림 3.3) 즉 위에 설명한 ‘지도 변환성’이 일어난 후 동물이 다시 원래의 환경으로 돌아오면 처음에 반응을 보인 장소 A에 또 다시 같은 반응성을 보이는 현상으로 하나의 장소세포가 원래 환경의 특정장소 A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장소세포의 특성은 해마에서 학습과 기억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생리학적 메커니즘을 제공하고 있다. 또 현재까지 해마와 관련된 다양한 학습·기억 연구에 활용되고 있다. 실제로 학습·기억 능력이 저하된 다양한 돌연변이 생쥐에서는 앞서 소개한 세 가지 특징들이 사라지거나 약해지는 현상을 일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다. 즉 각각의 장소세포가 필요한 정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결과, 학습·기억장애가 발생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는 뇌 해마에 전기특성을 측정할 수 있는 전극을 삽입하는 침습적인 방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사람에서는 직접 관찰하기 어렵다. 그러나 현재까지 생쥐, 쥐, 원숭이 등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는 확인됐기 때문에 인간의 해마에도 존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위적 기억 삭제…토탈리콜 가능성도장소세포를 이용한 다양한 연구 결과들은 인간에게 나타나는 치매, 기억저하, 학습부진 등과 같은 다양한 학습·기억과 관련된 장애증상 등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또한 각각의 장소세포들이 특정 장소와 관련된 정보를 보다 잘 학습하고 기억하게 만들 수 있는 약물이나 비약물적인 조절기법을 개발한다면 학습·기억장애를 치료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위의 설명 중 신경세포의 반응 또는 활동전위는 신경세포들 간의 의사소통에 가장 중요한 전기적인 활동으로 주위의 많은 신경세포에서 받은 정보가 통합되어 발생하는 현상이다.(그림 4)

(그림4) 신경세포의 활동전위

이 활동전위의 패턴은 마치 컴퓨터의 프로그래밍에서 기계언어인 이진법 0과 1로 표현할 수 있다. 0과 1의 다양한 조합으로 특정 정보를 기록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특정한 학습과정과 기억이 어떠한 활동전위 패턴으로 코드화되는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만 있다면, 반대로 특정 학습을 가능하게 하거나 특정 기억을 프로그래밍해 우리 뇌에 주입하는 기술이 가능해질 지도 모르는 일이다.

섬뜩하긴 하지만 기존 기억의 삭제와 새로운 기억의 주입과 관련한 주제는 이미 ‘토탈리콜’, ‘다이버전트’ 등과 같은 공상과학 영화에서 소개되었다. 물론 영화에서처럼 인류가 가지고 있던 기존의 문화를 완전히 바꾸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기술로 인류 문화가 어떻게 더 경이롭게 발전할 수 있을지를 상상해 보는 것도 매우 흥미 있는 연구주제일 것이다.


사실 현재도 미흡하나마 뇌심부 전기자극술, 뇌 내 자기 자극술, 뇌 내 직류자극술 등의 뇌기능 조절기술들이 치료목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이러한 기술들에 대한 수요는 매년 급증하고 있다. 따라서 뇌 기능조절 기술의 발달 및 다양한 활용은 이미 거부할 수 없는 미래사회의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다. 또한 현실적으로도 다양한 뇌 인지 장애로 고통 받는 개인과 가족에게는 매우 희망적인 기술이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뇌 질환과 관련한 비용을 줄이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글 조제원 KIST책임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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