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이에 농담도 못해?", "그런 농담 왜…"

“그게 왜 성희롱이야? 파인 옷 입고 온 그 여자가 잘못이지? 숙일 때마다 그렇게 가릴거면 왜 그런 옷 입고 왔니? 그냥 다 보이게 둬. 이렇게 말만 했는데 이게 어떻게 성희롱이야?” 회의를 하던 대기업 마부장이 흥분하며 이야기 한다.

그는 이어서,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며, “커피 좀 타오라고 해도 성추행이래요, 시집 못 가는거 걱정해줘도 성추행이래요. 도대체 기센 여자들 등쌀에 살 수가 없어"라고 한탄을 한다.


스스로 분을 삭이지 못한 부장은 “이게 성희롱이야? 네가 이야기 해 봐”라고 신입여사원한테 다그치며 묻는다. “듣는 사람이 성적으로 불쾌하게 느꼈다면 성희롱이라고 생각합니다.” 곤란한 표정의 신입여직원이 용기 내서 얘기한다.

최근에 높은 시청률로 방송되고 있는 ‘미생’이라는 드라마의 한 장면이다. 현실도 드라마와 같을까? 과연 현실에서도 직속상사에게 소신있게 말 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 부하직원이 있을까?

최근 연구조사에 따르면 성희롱 피해자들의 대부분은 인사상의 2차 피해를 우려해서 특별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성희롱 행위자가 피해자의 인사고과를 담당하는 직속상사인 경우가 가장 많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성희롱 예방교육이 의무화된 지 15년이 지났지만, 직장 내 성희롱은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다. 고용노동부가 집계한 성희롱 진정 접수현황을 보면 2010년 173건에서 2011년 210건, 2012년 249건, 2013년 374건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최근 고용노동부가 발간해서 배포한 '사업주를 위한 직장 내 성희롱 예방가이드북'을 보면 성희롱의 유형도 가지가지다. 상대의 의사와 관계없이 신체적 접촉을 하거나 특정 부위를 만지는 '육체적' 성희롱, 음란한 농담을 하거나 외모를 비하하는 '언어적' 성희롱, 음담패설을 메시지로 전송하는'시각적' 성희롱 등이 있다.

직장 내에서 왜 성희롱이 발생하는가에 대한 매우 다양한 연구가 이뤄졌는데, 회사에서 여성을 동등한 동료로 인식하지 않고 여성은 남성보다 못하고 종속적이고, 성적 대상이라는 성 고정관념(gender stereotyping)에서 출발한다는 관점과 직장의 위계 구조로 인한 남녀간 힘의 불균형, 쾌락주의, 남성 중심 조직의 잘못된 직장 문화가 원인이라는 주장 등이 힘을 얻고 있다.

직장 내 성희롱 문제는 우리나라와 같이 경직된 조직문화와 서열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환경에서 특히 심각한데, 대부분의 기업들은 문제의식조차 없고 오히려 발생원인을 상대방 여성들에게서 찾는다거나 책임을 전가하려는 경우가 많다.

또 술자리가 유난히 많은 우리나라 조직문화에서는 성희롱이나 성추행문제가 시한폭탄과 같이 항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데, 이는 성희롱이나 성추행이 회식 장소에서 가장 많이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로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대부분의 기업에서 마치 성적인 농담이나 가벼운 접촉이 오히려 직장생활의 활력소라고 착각하기도 하고, 직장 내 성희롱을 사소하고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고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게 현실이다.

성희롱 행위자들은 상대방이 불쾌해하거나, 기분 나빠하면, ‘그냥 농담이야, 우리 사이에 농담도 못해?’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기도 한다.

성별이해지능(Gender Intelligence) 전문가에 따르면 남자들은, 여성과는 달리, 농담을 서로의 우정을 시험하고 확인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자들은 일단 친구가 됐다고 생각하면, 가볍게 서로를 비난하는 것쯤이야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으며 상대방을 놀려대며 유대감을 형성하기도 한다. 여성들은 남자들과는 달리 농담 대신 자신을 낮추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과 유대감을 형성하려 한다.

남자들은 농담을 주고받다가, 받는 쪽에서 농담을 아주 기분 나빠한다면 그리 가까운 친구나 속을 털어놓을 수 있든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냥 농담’이라는 말로 그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취소하고 무마해 버린다.

여자들과의 관계에서도 남자들은 다른 남자들한테 하는 것과 똑같이, 여자 동료들을 놀리고 성적 농담을 던진다. 하지만, 그런 종류의 유머와 농담은 여자들에게 그리 효과적이지도 않고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키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남자들이 장난스럽게 농담을 던질 때 여자들은 그게 자신을 폄하하거나 모욕하는 거라고 해석해, 그 남자를 무례하고 한심한 사람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남녀의 장점이 접목된 남녀 혼성팀이 조직에서 최고의 성과를 거둔다는 수많은 연구가 나오고 있다. 남녀는 서로가 서로의 다름을 진정으로 인정하고 농담이나 성희롱의 대상이 아닌 경제위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최상의 파트너다. 남녀 모두 서로에 대한 진지한 관찰과 세심한 배려가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