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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문화③] 기술 만능주의 질주에 제동을 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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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2.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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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시민권리 보호 공생하는 기술문화 만들어야

[편집자주] 모두 기술개발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기술을 통한 혁신만이 살길이라고 한다. 우리 사회와 기업의 문화는 기술이 꽃필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을까. 새로운 기술을 수용하고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역동적인 문화와 환경을 만들고 있을까. 사람들의 삶을 즐겁게 만들고 더욱 쉽고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돕는 기술을 만들어내려면 지금 우리의 생각과 생활의 스타일부터 바꿔야 하는 것은 아닐까.

[기술문화③] 기술 만능주의 질주에 제동을 걸자
정부가 1988년 ‘정보문화의 달’을 제정한 지 26년이 지났다. 과거 정부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한국의 정보화 국면들에 대한 구체적 성과들을 보고서나 백서 형태로 아카이브(문서기록·보관)화 해 명문화 했다. 그 속에서 대한민국을 ‘정보화지표 세계 1위’, ‘인터넷강국’, ‘디지털 천국’ 등으로 명명하면서 이를 현대 경제 발전사에서 몇 안되는 성공적인 국가 정책이라고 으스댔다. 우리 사회의 기술 성장은 줄곧 정보통신 관련 국책기관들이나 유관 과제 연구들에 의해 크게 홍보됐다. 우리의 기술정책에서 이들이 만들어내는 큰 문제점은 대체로 인터넷과 스마트기술 등의 진화 혹은 발달을 정보화 성공담으로 바라보고, 비판적 검토 없이 이들 기술의 도입 역사를 사회의 주류 패러다임으로 기정사실화하는 것이다.

기술문화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에 문제는 없을까? 무엇보다 여전히 기술이 중립적이고 순결하다고 믿는 ‘기술주의’에 기대는 이들, 정부의 불필요한 규제 정책에 투덜거리며 ‘시장주의’에 희망을 거는 기업가들, 더 후퇴해 ‘권위주의’ 국가 주도형 하드웨어 기술 정책을 추억하는 이들이 많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대개 합의적 기술정책, 합리적 시장질서, 소비자·시민 권리보호가 함께 공생하는 한 나라의 ‘기술문화’를 구성하는데 별 관심이 없다. 각자도생의 길만 눈앞에 보인다. 그래서 최근 대한민국 기술사회의 모습은 부상하는 기술에 대한 무조건적 열광과 찬사만을 일삼는 기술주의의 반사적 욕망이 가득하거나 이의 활용론만 얘기하면서 시장지상주의의 근시안적 폐해를 야기한다. 아니면 이를 통치 권력과 연계하면서 또 다른 신권위주의의 망령을 불러오는 수준이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는 사물정보화에서 ‘사물인터넷(IoT)’으로, 이제는 시스코가 만들어 낸 ‘만물인터넷(IoE)’까지 언급되는 첨단의 시대에 살고 있다. 사물과 사물, 인간과 사물을 언제 어디서나 연결시켜주고 소통하게 만든다는 똑똑한 미래 세상을 구상하는 최신 버전들이다. 이에 필요한 네트워크와 센서 기술, 법과 제도, 표준과 규약, 사회문화적 협약 등 다양한 테크놀로지 레이어 수준에 대한 분석들이 있지만 당장 시장성장 지표에 대해 계산기를 두드리기 바쁘다. 기술에 열광하기만 할 뿐 나머지는 장신구다.


빅데이터 기술은 어떠한가. 이명박 정부 말기에 최초로 언급되기 시작한 이후 빅데이터는 이제 정책 사업으로 본격화되고 있다. 말은 무성한데 현실에서 가시적인 변화는 없다. 어떻게 하면 소비자들이 끊임없이 쏟아내는 비정형 데이터들의 데이터 배출(data exhaust)을 국가 비즈니스화 할 것인가에만 집착한다. 그러다 보니 무리하게 빅데이터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지고 개인정보 보호법을 갉아먹어서라도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데 몰두한다. 소비자지만 사회적 삶을 영위하는 시민들의 정보 인권에 대해 무관심과 무지를 드러낸다. 카카오톡은 어떠한가? 기술은 저만치 가고 일상 삶이 되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권력의 구태가 기술 현실을 발목잡고 시민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기술문화를 좀먹게 한다.

[기술문화③] 기술 만능주의 질주에 제동을 걸자
과잉화 된 기술 활용론 경계하기
기술주의, 시장주의, 신권위주의 등은 우리의 기술문화를 이루는 질곡들이다. 마치 현실사회의 학벌주의, 연고주의, 지역주의, 패거리주의, 마초주의 처럼 기술의 아키텍처를 뒤틀리게 만든다. 일단 기술주의의 망상을 머릿속에서 과감히 지워내려면, 우리의 마음 속 ‘기술 중립론’이나 ‘기술 순결주의’를 배제해야 한다. 이 기술은 순수하고 저 기술은 쓸 만하고 좋은데 이용하는 인간들이 문제라고 지적하는 순진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술과 기술문화란 온갖 컨텍스트들의 망 속에 놓여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휴대폰같이 복잡한 물건이 어디 있겠는가.

휴대폰은 하드웨어적으로 디자인 개발, 기술표준과 특허전쟁, 저임노동, 중국공장 노동자의 자살과 죽음, 통신사의 약정계약 종속 등의 문제가 엉켜있다. 소프트웨어 면에서 보면 앱 시장 경쟁, 운영체제 전쟁, 해킹과 탈옥 문제, 저작권과 로열티 배분 등의 문제가 있고 기술문화적으로는 신모델 출시와 상시 구매 욕망, 매순간 연결의 욕망, 기계-몸의 합일적 관계(포스트-휴먼), 상호 감시의 일상화 등이 작은 기계의 디자인 속에 압축돼 침범해 들어오고 있다. 어디 휴대폰뿐이랴. 단순한 로우테크 기술뿐만 아니라 만물의 기술체들도 그러한 복잡한 사회 체계의 망 속에 있다. 그래서 기술은 심히 불순하다.


기술들이 태생적으로 불순하다는 것을 인정하면, 세상의 모든 기술에 대해 먹었던 흠모의 마음과 장밋빛 낙관의 전망 자체가 과도하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다. 왜냐하면 기술의 생성과 디자인에는 어떤 기술을 막론하고 사회·문화적 맥락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술 활용론은 순진할 수 있다. ‘활용’이란 말에는 기술은 중립적이고 순백의 것이니 잘 쓰면 좋고 대박이란 전제가 깔려 있다.


과연 그러한가? 어떤 기술이건 순백의 기술로 등장하는 것은 없다. 이미 기술은 국내·외 시장 이권 관계, 정책 의도, 사회적 의제, 문화 수준, 노동 시장 등이 뒤엉켜 존재하기 때문이다. 같은 기술 또한 시간에 따라 급속도로 진화하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문화 층위와 관계를 맺으면서 불순도가 더 높아졌기 때문이다.


결국 현실주의적 혹은 현실 위상학적 기술 위치를 잘 바라보는 혜안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국가 주도형 정보화 정책의 특수성, 낙후된 정치문화의 수준, 통신 시장의 독과점 상황, 소비자 행동과 문화적 과열 상황 등을 꼼꼼히 따져보면서 특정 기술의 도입, 진흥, 성장, 발전, 효과 등을 논해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최근 하이테크 기술들은 대체로 시장과 국가 영역에서 직접적으로 이윤에 영향력을 끼치는 방식을 넘어서서 그 자체가 사회와 문화의 핵심 지층을 형성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인간 사이의 소통 커뮤니케이션 인프라와 아키텍처 혹은 사회 레이어를 구성하기 때문에 영향력은 시장을 넘어 사회적이다. 그만큼 오늘날 기술은 사회적으로 민감한 셈이다.


따라서 순진한 기술 활용론은 정보기술의 사회적 위기 상황으로 줄곧 나타난다. 장밋빛 전망의 득세가 오히려 기술의 위기관리 측면에서 위험 요인이 될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긍정과 부정의 양가적 가치 판단의 논란 한복판에 서 있는 기술의 경우에는 어느 한쪽으로 편중된 논의는 정보 위기와 파국을 낳을 수 있다. 기술적 측면에서 사물인터넷이 보편화되고 초연결사회와 연결과잉이 확대되면 위기 노출도 증가할 수밖에 없는데 기술 활용론만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다가 기술위기와 파국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애초 기술을 디자인할 때 이제는 총체적 ‘정보재난’ 관리기제가 요구되는 것이다. 이는 조직이론가 찰스 페로(Charles Perrow)가 얘기했던 ‘정상사고(Normal Accidents)’라는 개념에서도 볼 수 있다. 고도로 복잡하고 연결성이 높은 기술 시스템을 갖춘 사회일수록 사고가 일상화되며 이를 피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 주장의 연장선에서 오늘날 부상하는 각종 기술들을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페로와 비슷하게 ‘과잉연결시대’라는 책을 집필했던 윌리엄 데이비도우(William Davidow) 또한,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를 통한 과잉연결이 ‘고도연결(high-connected)’을 훨씬 지나쳐 각 주체들의 변화속도가 너무 빨라 주변 환경이 변화 속도에 대체하지 못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추측했다. 다시 말해 기술과잉이 되면 현실 변화와 연결성에 주체적 적응과 통제 능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단계가 올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우리가 LTE의 속도 향상에 매달리고 사물인터넷의 활용론에 빨려 들어갈수록 기술 통제 불능의 과잉연결 단계에 쉽게 이를 수 있음을 예견하는 고견들이다.

[기술문화③] 기술 만능주의 질주에 제동을 걸자
하이테크 시장 환상의 문제
기술의 순결함만큼이나 시장의 순수성을 말하는 이들이 많다. 누구보다 실리콘밸리 철학을 옹호하는 일부 하이테크 벤처기업가들과 자유주의 철학의 옹호자들이다. 그들 스스로 기술문화를 선도하고 심지어 사회적 적폐를 개선하는 민주주의와 혁신의 기수인 것처럼 착각하기도 한다. 중국 시장에 진출하고 있는 페이스북과 구글 등이 중국 공산당과 일정 부분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서 마찰이 생기면서 그와 같은 인상을 심어줬다. 과거형이긴 하지만 우리 또한 ‘안철수 현상’ 등을 통해 비슷한 후광 효과를 맛보지 않았던가. 하이테크 신기술이 줄 수 있는 혁신의 아우라가 마치 정치적 진보로 비춰지는 신기루 같은 것 말이다.

우리 사회에서 비춰지는 다음 포털이나 카카오톡의 이미지는 아마도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실리콘밸리의 보보스(보헤미안 부르주아지) 같은 신선한 느낌 말이다. 하지만 시장 내 합리성이 어디 업종의 문제일 것인가. 시장 윤리의 문제는 사업자의 도덕 수준에 달려있다.


이는 공장굴뚝 시대의 기업이나 하이테크 벤처 기업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거의 독과점적 플랫폼을 통해 이용자들을 끊임없이 머물게 하고 게임 등 서비스 개발자들과의 불평등 계약을 통해 과당 이득을 취하거나 소비자 메신저 서비스 관리와 외부 사찰에 속수무책인 기업을 혁신의 아이콘이라 보는 것은 어폐가 있을 것이다. 국내 정치의 퇴행성을 이유로 디지털 기업들에 면죄부를 주는 논리도 궁색하다. 적어도 시장의 환상을 지키려거든 미국식 소비자본주의의 기본 철학, ‘소비자가 왕’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철학에 의한 자사 소비자 정보관리의 윤리만 제대로 지켜도 될 터이다.


오늘날 기술문화는 점점 더 자발적 이용자의 놀이와 참여가 디지털 시장 행위로 직결되는 상황이다. 검색을 자주 할수록, ‘좋아요’ 버튼을 자꾸 누를수록, 구매와 위치정보를 계속해 알릴수록, 기업이 이윤을 생산할 수 있는 ‘인지자본주의’ 시대인 것이다. 아마존은 이용자들에게 1년 데이터 약정을 공짜로 제공하며 전자책 단말기 ‘킨들’의 형광펜을 쓰게 한다. 이용자들은 전자책을 읽으며 마음에 드는 대목에 밑줄을 긋고 그 내용은 바로 아마존닷컴 서버에 축적돼 빅데이터로 분석된다. 아마존은 이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맞춤형 광고를 한다. 하이테크 기업들이 현대인의 온라인 소비 심리를 관리하고 분석하고 실험하는 시대인 것이다.


오늘날 시장 이윤을 추구하는 디지털 기업들이 우리 기술사회의 미래를 책임지라는 얘기는 아니다. 최근 기술은 기업과 시장의 것이기 전에 사회문화적 속성을 지니게 됐다. 그만큼 기술의 사회적 파장과 영향력이 커졌다. 일상 삶을 영위하는 기술이 된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보이지 않는 손’을 바라며 국가로부터 무조건 사업의 자유를 외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오히려 사회적으로 기업 책임을 고민하는 하이테크 업체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대 기술, 정치사회 현실의 ‘거울’
마지막으로 기술주의와 시장주의만큼 위험한 것은 후진화 된 정치문화다. 우리에게는 구체적으로 ‘신권위주의’ 부활이 문제다. 한 국가의 기술문화는 그 나라의 정치·사회적 인권 수준과 결합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압축적 근대화’라 불리는 하드웨어 중심의 가시적 성과에 길들여진 구태 국가 시스템은 오늘날 시민들의 재기발랄한 기술문화를 기본으로 하는 현실에도 여전히 건재하다.

[기술문화③] 기술 만능주의 질주에 제동을 걸자
기술적 마초주의는 기본 설계에 뒤틀려 들어가 시장 정책화하면서 정보인권의 후진적 수준으로 드러나기 일쑤다. 빅데이터 시대에는 표적화 된 대상에 대한 정보 수집에서 인구 대상 전체를 향한 무차별 정보 수집이 국가와 기업 활동에서 이루어질 공산이 크다. LTE, 무선인터넷, 블루투스 등 통신 커뮤니케이션을 기반으로 개인들이 소지하는 다양한 모바일 기기들, 그리고 RFID, 바코드, GPS, 블랙박스 등 다채로운 센서 장비들을 통해 부지불식간에 정보 채집이 광범위하게 이뤄질 것이다.


주요 국가정보기관, 통신업자와 빅데이터 사업자들에 의해 수행되는 개인정보 수집과 저장, 정보 제공과 활용 등 윤리 문제와 소비자 사찰과 감시의 일상화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될 가능성도 농후하다. 유럽 등 오랜 공익성에 기반한 기술 전통국에서는 국가-기업이 나름 이용자와 시민 정보의 불법 수집에 법적 제제를 가하려는 노력이 이뤄져 왔다.


오늘날 한국에서의 기술 상황을 고려하면 서구 사회와 우리의 미래 빅데이터 기술문화의 전반적 환경이 크게 다르게 갈 조짐이 있다.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이 개별 인간의 특성을 촘촘하게 드러내는 비정형의 사물데이터는 오늘날 쇤베르거(Viktor Mayer-Schonberger)가 묘사했던 ‘잊힐 권리’(망각의 상실)의 문제를 끊임없이 발생시킨다. 사물 자체가 데이터를 만들어내면 기존 인간의 의지와 무관하게 자기정보 생산의 결정권이 유명무실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더 커진다.


이 상황에서 국가의 기술 권력 오남용을 막는 것은 만만치 않다. 우리에게 현실 정치의 문제가 한복판에 자리하기 때문에 더 근심이 큰 까닭이다. 정치문화의 선진화를 기술문화의 발전과 일대일 대응해서 논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좀 과할 수 있다. 하지만 필요조건인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 직관을 컴퓨터 알고리즘이 대체하고 있다. 빅데이터 시대 혹은 사물인터넷 시대에는 말 그대로 이제까지 인간의 직관으로 수행했던 일들에 대해 ‘사물들의 질서’가 절대적 가치가 되고 그저 족적에 불과했던 인간 움직임과 행위들이 데이터뱅크에 낱낱이 기록되고 관리되는 현실이 만들어진다.


오늘의 하이테크 기술들은 권력자들을 유혹할 것이다. 때문에 기술문화가 적정 수준에서 뿌리를 내리려면, 결국 이용자들의 집단적 개입과 공적 역할이 중요하다. 정보 오남용에 대한 소비자 행동은 물론이고, 정보권리와 정보인권에 대한 시민 가치 지향의 문제의식이 사회 구성원들에게 널리 퍼질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현실적으로 시급한 일은 우리 아이들만이라도 이제까지의 기술주의, 시장주의, 신권위주의의 적폐로부터 해방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개인정보보호와 관련해 가이드라인을 주거나 급변하는 기술 원리를 비판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기술교육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연령 세대로 보면 중·장년층은 이미 주민등록번호 등의 식별자와 결합해 광범위한 개인 정보 유출이 이뤄진 측면이 크다.

우리의 기술문화가 지닌 질곡을 어른들에 이어 아이들에게도 부담하게 하지 않으려면, SNS 등 자발적인 비정형 개인 데이터의 배출과 유출을 아이들 스스로 자기 방어할 수 있는 기술문화 교육이 필수로 이뤄져야 한다. 이는 국가와 기업의 흔한 태도로 견지되는 기술지상론, 시장활성화론, 교육비용론에 의해서 저어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아이들의 ‘잊힐 권리’에 대한 보장은 합리적 기술문화의 첫 삽을 뜨는 일과 같다.
글 이광석 서울과학기술대 IT정책대학원 교수

[기술문화①] 시키는 대로만 하면 창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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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문화③] 기술 만능주의 질주에 제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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