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기보다 어려운 잘 죽기를 위하여

칠십을 넘기셨고 사회, 경제적으로 많이 성공한 몇 분들과 등산을 했을 때였다. 그 정도 세월을 살아보니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깨달음이 있으면 알려달라는 요청을 드렸다. 이거다 저거다 갑론을박 중에 큰 기업을 일군 ‘회장님’의 “건강한 놈이 이기는 놈”이라는 한마디에 논의가 끝나버렸다.

덧붙여 고령의 어르신들은 세 종류의 삶으로 나뉜다고 했다. 죽음보다 나은 삶, 죽은 것과 다름없는 삶, 죽은 사람보다 못한 삶이다. 대개 병에 걸려 자신의 몸을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고 간병에 의지해야 하는 경우 두, 세 번째로 가까워진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속담대로 고령의 부모가 간병에 의지해 연명할 경우 당사자는 물론 간병하는 가족들의 고통도 보통이 아니게 된다.


‘아버지는 그렇게 작아져간다’는 대학 강사에 소설가였던 중년의 아들이 정확히 1254 일(3년 4개월) 동안 병석의 늙으신 아버지를 간병하면서 써낸 말들이다. 아직 누구를 제대로 간병해 보지 않은 필자로서는 참 긴 기간이다. 하던 일을 멈추고 온몸으로 아버지를 간병했던 소설가 이상운은 ‘긴 병이 난 효자’였다.

간병을 하면서 비로소 깨달은 아버지(환자)의 심리, 간병해 나가는 자신의 심리, 주위의 가족들이나 지인들이 그 둘을 돕는 법, 병원과 요양원의 아쉬운 것들, 존엄사, 의료제도의 문제점 등을 꼼꼼히 기록했다. 단순한 시간대별 일지가 아니다. 워낙 아버지에게 밀착한 간병을 한데다 직업이 소설가인 탓에 인간과 죽음에 대한 성찰,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세, 삶의 중요한 가치에 대한 그의 속 깊은 언어들이 함께 버무려졌다.

필시 집안에 누군가의 간병이나 보조가 필요한 환자나 고령의 부모님이 있는 사람들에게 아주 구체적인 도움이 될 책이다. 저자는 ‘잘 살기보다 어려운 것이 잘 죽기’란다. 우리들 각자가 고독하게 홀로 대면해야 하는 맨 처음이자 마지막인 삶의 사건이 죽음이란다. 씨앗이 죽어야 식물의 싹이 튼다는 자연의 이치를 말해봐야 당사자에게는 전혀 위로가 못 된단다. 죽음은 아무리 고령일지언정 구체적이고, 외롭고, 고통스러운 과정이기 때문이란다.


누구나 겪는 일인데다 소설가의 간결한 문장 덕분에 금방 읽힌다. ‘환자’는 자신이 외면당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때 가장 기뻐한다. ‘간병인’에게는 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친절이 큰 힘이 된다. 이참에 환자 스스로 깔끔하게(?) 삶을 마감시킬 수 있는 방법도 진지하게 연구해 보는 것이 어떨지.

◇아버지는 그렇게 작아져간다=이상운 지음. 문학동네 펴냄. 254쪽/ 1만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