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업, 사물인터넷 세상에서 헤엄쳐라

/캐리커처=임종철 디자이너

시간, 위치, 혈압, 맥박, 체온, 미세먼지 농도, 자외선지수, 소음, 온도, 습도, 음식물의 당도, 염도, 칼로리, 잔류농약 등등, 우리의 몸과 우리가 접하는 사물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공간과 환경은 수많은 데이터를 끊임없이 생성하고 있다. 인류의 역사는 이러한 데이터와 정보를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그 생존과 발전 및 경쟁의 결과가 결정되었으며, 우리가 쓰는 도구와 기술은 이를 위해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다.

과거에는 이런 데이터와 정보를 활용한 도구의 사용이 단발적이고 개별적으로 이루어졌다. 반면에,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IoT)이란 사람과 사물 및 공간이 모두 유무선의 네트웍으로 서로 연결되어 이에 대한 정보가 끊임없이 수집되고 공유 및 활용되는 세상을 말한다.


이미 지난 1월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국제 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는 우리 몸의 각종 신체정보를 활용하는 웨어러블 기기 뿐 아니라, 다양한 가정용 기구과 생활용품에 센서와 인터넷 기능을 장착한 스마트홈 기기와 무인운전 및 모바일인터넷 기능을 갖춘 스마트카 등 수많은 종류의 사물인터넷 기기들이 선보였다.

앞으로 사물인터넷이 세계 경제에 가져 올 영향은 엄청나다. 전세계적으로 2007년부터 작년까지 판매된 스마트폰이 50억개였던데 비해, 2020년에는 500억개의 IoT기기가 사용되고 그 시장규모는 수천조원에 이를 것으로 관련업계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내년부터 출시되는 대부분의 전자기기는 IoT 기능을 탑재하고 있을 것이며, 삼성전자 역시 2020년에는 자사의 모든 제품을 IoT기기로 출시한다고 천명했다. 머지않은 장래에 한 가정에 수십, 수백개의 IoT기기가 사용된다고 보면, 이제 모든 기업은 ICT(정보통신기술)를 활용하는 Tech 기업이며 사물인터넷 사업을 영위한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나라 기업과 한국경제가 사물인터넷 시대에서 또 한번 도약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그 성공방정식을 풀어보자. 먼저, 개별 기업 차원에서 필요한 첫번째 요건은 다양한 센서들이 수집하는 데이터를 분석하여 사용자에게 의미있고 유용한 정보를 뽑아내는 데이터 분석력이다. 예를 들어, 1세대 웨어러블 기기가 운동량 및 맥박수 등 사용자의 신체정보를 기록해서 보여주는 데 그쳤다면, 앞으로는 생활환경 및 식생활에 관련된 데이터까지 결합해서 분석함으로써 실질적으로 건강을 향상할 수 있는 코칭 솔루션을 제공해야 한다.

두번째는 이러한 정보와 솔루션을 쉽게 사용하도록 도와주는 사용자 인터페이스(U/I)이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전자기기는 버튼, 키보드, 터치 패널 인터페이스를 사용했다. 하지만, 웨어러블 기기와 스마트홈 및 스마트카의 경우에는 음성 및 동작 인식 인터페이스 뿐 아니라 상황에 따라 스스로 알아서 작동하는 앰비언트 인터페이스 방식이 더 중요해진다. 다양한 상황에서 그에 맞는 가장 자연스러운 사용자 인터페이스 설계가 사물인터넷 기기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세번째는 데이터와 솔루션 및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하드웨어(H/W) 요소들과 잘 엮어서, 일관되고 물흐르듯한 사용자 경험(Seamless U/X)으로 구현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S/W)이다. 다양한 기기간 연계를 통해 수집된 데이터와 그에 기반한 맞춤 솔루션을 사용자에게 가장 편한 방식으로 서비스하는 S/W 기술이야말로 사물인터넷에서 가치 창출과 경쟁력의 핵심이다.

이러한 기업 차원에서의 노력이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당연히 우리 경제 차원에서도 걸맞는 지원과 인프라가 필요하다.

첫째, 우리나라 대기업과 스타트업들 간에 선순환 구조의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대기업 조직은 새로운 기술 변화에 대응하는 속도와 위험 부담에 한계가 있다. 반면 스타트업들은 시장 개척과 마케팅에 필요한 자금과 인력의 한계를 갖는다. 스타트업이 개발한 기술과 사업모델을 대기업이 적절한 가치에 인수하는 방식으로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고 각자의 장점을 살린다면, 우리 경제에 새로운 활력소와 경쟁력의 원천을 제공할 수 있다.

둘째, 새로운 차원의 산학 협력을 활성화해야 한다. 대학 연구실에는 이미 다양한 분야에서 이론적 연구와 실험 결과가 축적되어 있다. 사물인터넷 기기가 수집하는 현장의 데이터를 이러한 학문적 연구성과와 접목한다면, 실생활 속에서 머신러닝 알고리즘에 기반한 사용자 맞춤 서비스가 가능해진다.

셋째, 정부의 규제정책도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사물인터넷을 이루는 정보통신기술이 없던 시대의 필요에 따라 도입된 규제들이 최근 여러 분야에서 시장과 소비자의 요구와 충돌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현행 규제 중에 소수의 기득권을 보호하면서 오히려 기술발전과 새로운 가치창출의 발목을 잡는 부분이 없는지 원점에서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글로벌 시장에서 다양한 기기 및 플랫폼 간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이 필수적인 사물인터넷 시대에 과거 WIPI와 같은 독자 기술표준의 도입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

사물인터넷은 또 한번의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을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이는 ICT 강국으로 자임하는 우리에게는 크나큰 기회이자 위협이 될 수 있다. ‘개방성’, ‘상호운용성’, ‘콜라보레이션’을 핵심축으로 하는 사물인터넷 세상이야말로 스타트업, 중소기업, 대기업이 상생하고 win-win할 수 있는 한국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이자 기회의 땅이다.

초기 스타트업을 위한 시드 펀딩과 액셀러레이터 업무에 종사하는 필자로서는, 한국 경제의 새로운 R&D 센터 역할을 하는 우리나라의 많은 스타트업들이 앞으로 사물인터넷이 풀어놓을 수 있는 많은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