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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가 있는 풍경… 이와이 슌지 '러브 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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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머니바이크 최건규 교사(군포 수리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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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2.17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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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십니까? 저는 잘 지냅니다" 이와이 슌지 '러브 레터'의 한 장면/이미지='러브 레터' 캡처
"잘 지내십니까? 저는 잘 지냅니다" 이와이 슌지 '러브 레터'의 한 장면/이미지='러브 레터' 캡처
기억한다는 것

프랑스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의 '죽은 자들의 집'(부제: 모리스 레날에게)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그들은 그토록 고결하게 살았나니
전날까지도 여전히 그들을
자신들과 동등한 사람이나 심지어
자신들보다 못한 어떤 것으로 여긴 이들이
그들의 힘 그들의 부 그들의 타고난 재능에
이제는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네
죽은 남자나 죽은 여자를 사랑했다는 것처럼
그대들을 드높이는 것이 있을까
그럴 때엔 누구라도 그토록 순수해져
기억의 빙하 속에서
추억과 하나가 되기에 이르고
누구라도 살아갈 힘을 얻나니
이제 어떤 사람도 필요 없노라

'죽은 자들의 집'에서는 죽은 자들과 산 자들이 삶과 죽음이라는 경계를 허물고 함께 먹고 마시며 즐겁게 소풍을 다닌다. 어디 그뿐인가. 산 자가 죽은 자에게 죽은 자가 산 자에게 사랑을 고백하기도 한다. 서로 다른 세계의 존재인 그들을 가로막는 것은 이미 결혼한 몸이거나 부러진 청혼 반지 때문이지, 삶과 죽음의 엄정한 경계 때문이 아니다. 시의 세계는 인과율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죽은 자들이 매장 직전의 잘 차려입은 상태로 돌아다닌다고 해서 이상할 것이 없다. 산 자와 죽은 자들이 내일 또 만나자는 인사를 하며 헤어지는 것도(물론 죽은 자들은 시체 안치소로 산 자들은 집으로 가겠지만) 얼마든지 가능하다. 현실에서는 어떨까. 현실에서는 죽은 자를 사랑하는 것이 불가능할까.

기억은 인간에게 무척 중요한 요소이다. 자기정체성도 그렇고 다른 사람을 인식하는 것도 기억이라는 작용 없이는 불가능해 보인다. 기억이라는 것이 없다면 도대체 인간의 의식 속에 무엇이라도 남아있을 수 있을까 의심스럽다. 어제 만난 그 사람이 오늘 만난 그 사람이라는 것. 자신이 사랑에 빠진 그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라는 것. 사랑에도 기억은 필수적이다. 기억은 사랑의 대상에 대한 것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감정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사랑이 끝나거나 사랑의 대상이 사라진 이후에도 기억은 지속된다.

기억은 기억의 대상과 기억하는 사람 사이에서 만들어진다. 때로는 강제가 작용할 수도 있겠지만 보통의 경우 기억은 기억하는 사람의 의지가 깊이 개입한다. 그렇기 때문에 왜곡이 일어날 수 있으며, 대상이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저장될 가능성이 있다. 죽은 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죽음은 기억의 추가나 변화의 종료를 의미하지 않는다. 새로운 정보의 추가나 오해의 수정 등은 대상의 죽음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 특히 대상이 사람일 경우, 게다가 사랑했던 사람인 경우 기억의 수정이 일어날 가능성은 더욱 크다. 물론 기억의 지속 시간이 매우 길 것이라고도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죽은 자를 사랑하는 것 역시 현실에서도 가능한 것이 아닐까. 직접적인 상호작용이 사랑의 필수 조건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기억과 그것의 수정을 통해 간접적이고 일방적이나마 감정의 흐름이 생긴다면 죽은 자에 대한 사랑은 현재 진행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기억을 유지하기에 적합한 다양한 표지를 남기고, 한편으로는 의미 부여를 통해 평범한 대상을 특별한 표지로 만든다. 굳이 산 자의 기억을 통해서가 아니라도 인간은 존재의 흔적을 완전하게 지울 수 없는 운명이기도 하다. 존재란 본질에 기대고 있다. 인간은 그 본질에 있어서 물질에 의존한다.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물질은 지구 생성 이후 지금까지 많은 존재의 몸을 구성했던 것이며, 일시적으로 특정한 존재의 일부일뿐 결국 다른 존재의 일부가 되어 가는 것이다. 한 인간의 사멸 이후에도 그를 구성했던 물질은 사라지지 않는 법이다.

이렇게 본다면 세상은 수많은 기억의 표지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인간이 숨 쉬던 공기와 그를 이루었던 수분은 바람으로 또 비가 되어 그를 상기시킨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모두 사라진다고 해도 그의 존재가 완전하게 사라지는 법은 없다. 이것은 인간이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다.

자전거가 있는 풍경… 죽은 자에 대한 기억

영화 '러브 레터'(1995)는 죽은 자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산 자들의 현재와 과거가 정교하게 교차하며 진행된다. 사랑의 감정을 깨닫기에는 너무 어렸던 중학 시절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한 여자와 성인이 되어 결혼을 약속했던 사이였지만 남자의 죽음 이후 남자의 사랑에 의문을 가지게 된 또 한 여자.

이 두 여자는 서로 남자에 대한 기억의 촉매가 되기도 한다. 또 오해를 해소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면서 각자 다른 시기에 한 남자로부터 사랑받았음이 분명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추리와 회상이 주는 긴장감과 아늑함의 조화에 더해 편지나 워드프로세서, 폴라로이드카메라, 도서대출카드 등의 소재들도 영화의 치밀한 전개에 완전하게 녹아들고 있어 90년대 초반을 살았던 사람이라면 기억의 폭발을 불러올 만한 영화이다. 디지털네이티브들과 함께 이 영화를 본다면 구급차를 부르는 장면에서 답답함을 느끼는 그들에게 당시에는 휴대전화가 흔치 않았다고 알려주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자전거는 이야기를 끌어가는 핵심적인 소재는 아니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등장한다. 현실의 두 여자가 같은 시공간에 있게 되는 순간은 이 영화의 전개에서 큰 의미가 있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한 여자는 마치 나는 듯이 자전거를 타고 다른 여자를 지나쳐간다.

또 자전거는 중학 시절, 남녀의 서로에 대한 심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에서도 등장한다. 특별한 감정이 형성되기 전에 남녀가 탄 자전거는 서로 무심한 듯 평행하게 달려 화면 밖으로 사라진다.

중학 시절, 자전거와 포대자루로 남녀의 사랑 심리를 보여주는 장면/이미지='러브 레터' 캡처<br />
중학 시절, 자전거와 포대자루로 남녀의 사랑 심리를 보여주는 장면/이미지='러브 레터' 캡처
하지만 여자가 다른 여자의 고백을 남자에게 대신 전했을 때, 포대자루 같은 것을 쓰고 나타난 남자는 자전거 타는 여자에게 돌진하여 그의 머리에 포대를 씌워버린다. 평행하게 달리던 자전거의 동선을 서로 얽히게 함으로써 서로에게 향하는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한 이 장면은 개인적으로는 '러브 레터'에서 가장 재미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포대를 뒤집어씌운 뒤 휑하니 가버리는 남자와 깜짝 놀라 정지한 후 포대를 벗고 남자가 사라져가는 방향을 바라보는 여자의 모습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 군말
이십 대 초반부터 현재까지 이 영화를 적어도 대여섯 번은 넘게 본 것 같다. 이번에 다시 볼 때는 히로코와 이즈키가 번갈아가며 "잘 지내십니까? 저는 잘 지냅니다"라고 외치는 대목에서 눈물을 펑펑 흘렸다. 비로소 절제의 미학을 느꼈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나이를 먹은 것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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